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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A Sep 01. 2023

동업과 경쟁으로 유지한 제국, 고구려

서영교, 《고구려, 전쟁의 나라》


고구려라는 나라에 대해 우리는 잘 알고 있는 것 같으면서도 잘 모른다.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라곤, 고주몽에 의해서 세워졌다는 것, 광개토대왕의 위대한 정복 사업, 정말 오래 살았다는 장수왕, 을지문덕의 살수대첩, 양만춘의 안시성 싸움, 그리고 연개소문과 멸망. 이 정도가 아닌가 싶다. 드문드문 우리가 기억하고 싶은 것만 알고 있다. 고구려라는 나라가 어떻게 어떻게 세워졌고, 어떻게 버티며 나라의 형태를 만들어갔으며, 어떤 고난을 겪었으며, 그리고 그것을 극복했는지..., ... 우리는 잘 모른다.


우리나라 고대사학자 가운데 드문 전쟁사 전문가라는 서영교가 쓴 《고구려, 전쟁의 나라》를 읽으면서 든 생각이 그런 것이다. 우리가 위대하다고 칭하는, 혹은 믿고 싶은 고구려라는 나라에 대해 아는 것도 없이 그렇게 여겨왔구나, 하는 것. 그래서 이 책은 소중한데, 고구려에 대해서 몰랐던 것, 알면서도 그 의미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하지 않았던 것들을 깨우치고, 다시 생각하게 한다. 그런 것들을 나름대로 몇 가지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고구려는 작은 나라였다. 어떤 국가는 한꺼번에 일어나는 경우가 있는데, 고구려는 그렇지 않았다. 주몽이 부여 왕실을 탈출하여 천신만고 끝에 산골에 작은 나라를 세웠다(처음엔 나라라고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아마 그 세력을 주목하는 이는 주변의 부족들을 제외하고는 거의 없었으리라. 고구려는 수렵 국가였다. 스스로 조달하기보다는 외부와의 싸움과 타협을 통해(주로는 싸움) 필요한 것을 얻어냈고, 세력을 키운 국가였던 것이다. 번듯한 국가의 틀을 갖추는 것도 꽤 오랜 시간이 걸렸으며, 그 과정에서 주변 세력과 끊임없이 싸움을 벌여야만 했다.


2.

고구려가 국가로서 틀을 잡으면서, 아니 잡기 전부터 늘 중국 대륙의 힘센 세력을 의식해야만 했다. 특히 북방 유목민과의 관계가 중요했다. 북방 유목민, 즉 돌궐, 거린, 말갈, 선비 등은 경쟁 상대이기도 했지만, 고구려라는 나라를 지키는 데 필요한 세력이었다. 그들이 고구려를 위협하는 중원의 세력을 견제함으로써 고구려는 생존할 수 있었다.


3.

광개토왕 직전 고구려는 치욕스러웠다. 백제에게 대패해서 수도를 유린당하고 왕(고국원왕)이 전사하기도 했고, 여러 세력들 틈에서 기를 펴지 못하기도 했다. 그런 가운데 젊고 지략을 갖추었으며 용맹한 광개토왕이 등장했다. 광개토왕의 업적은 단순히 국와의 자질에만 힘입은 것은 아니었다. 국제 질서가 광개토왕이 활약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준 것이다. 이를 보아도 고구려라는 나라가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고구려라는 나라 자체의 힘만으로 가능한 것은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그러나 역시 광개토왕의 전쟁 전략을 놀라운 것이었다).


4.

수 양제와 당 태종은 왜 그렇게 고구려를 잡아먹지 못해 안달이었을까? 수는 여러 차례에 걸친 무리한 대고구려 전쟁으로 말미암아 나라가 망했다. 당 태종도 안시성에서 처절한 실패를 맛보고, 이후 얼마 없어 세상을 떴다. 그 이유 역시도 동아시아 전체의 구도를 봐야만 이해할 수 있다. 수나라나 당나라나 국가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데는 북방의 유목민을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중요했다. 그런데 고구려는 끊임없이 북망의 유목민을 이용해서 중원의 국가를 괴롭혔다. 그 이유는 앞서도 얘기했듯이 고구려는 그렇게 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래서 수와 당은 고구려가 목을 겨누는 가시처럼 여겨졌던 것이고, 그래서 없애고 싶었다. 수와 당의 침공으로부터 고구려가 살아남았던 것은 물론 을지문덕과 양만춘을 비롯한 고구려 장군과 군사들의 힘이 있어서였지만, 거기에 대해 역시 북방 유목민의 움직임이 수와 당을 견제했기 때문이었다.

이후 고구려의 멸망 역시 연개소문의 죽음과 그 아들들의 다툼으로 국가의 질서 자체가 무너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북방의 유목민 세력이 약화되면서 당이 고구려 공략에 집중할 수 있었던 까닭도 있다.


이 책의 제목이 “고구려, 전쟁의 나라”이면서 부제가 “7백 년의 동업과 경쟁”인 이유가 있다.


서영교는 고구려라는 나라를 그리면서 우리 선조의 위대한 제국, 이런 식으로 그리지 않는다. 그 국가가 성립하고, 유지되고, 고난을 겪고, 또 이겨내고, 발전하고, 망하는 과정에서 자체의 동력과 외부의 영향을 고루 고려하면서 전체적으로 보고 있고, 그렇게 전하고 있다. 그래서 고구려의 역사를 알기 위해서는 중국의 역사, 중국 주변부의 역사도 상당 부분 이해해야 한다는 것도 보여주고 있다(그래서 비슷비슷한 민족과 세력의 이름, 지도자의 이름 들은 넘어야 할 벽 같기는 하다). 역시 넓은 시각이 깊은 관점을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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