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2년 수나라 군대가 고구려 땅에서 몰살당한 시기부터 676년 나당전쟁에서 신라가 버텨내어 삼국통일을 이뤄낸 시점까지 동아시아에서 벌어졌던 피비린내 나는, 전쟁들을 다루고 있다. 단순히 어떤 나라가 있었고, 누가 황제, 혹인 임금이며, 어떤 장군들이 활약해서 결과가 어떠했다는 식이 아니라, 싸움이 벌어진 현장에서 먼지가 휘날리고, 피가 흐르고, 시체가 산더미처럼 쌓이는 모습을 보는 것과 같은 느낌을 주면서 그 60여 년의 전쟁사를 유려하게 그려내고 있다.
궁금했었다. 좁은 한반도에서도 가장 구석에서, 가장 늦게 국가 체제를 갖추고, 힘도 약했던 신라가 어떻게 삼국을 통일했는지. 아주 어릴 때에야, 김춘추와 김유신의 활약, 화랑도 정신 등등이 그 답이라고 알고 있었고, 좀 큰 이후에는 나당연합과 백제 의자왕의 실정, 고구려 지배층의 분열 때문이었다고 알게 되었었다. 그런데 그런 나름의 답에 균열의 종종 생겼지만, 여전히 세부는 모자랐다. 나당연합은 어떻게 해서 이루어지게 되었는지, 백제 의자왕의 실정의 정체는 뭔지, 고구려 연개소문 사후 삼형제의 분열은 어떤 형국이었는지 등등. 더 궁금했던 것은 백제, 고구려의 멸망 이후 신라가 나당전쟁에서 당을 한반도 밖으로 밀쳐낼 수 있었던 동력, 혹은 이유였다. 아마도 중국 역사상 최강의 제국이었던 당이 정말 마음을 먹었다면 신라쯤은 완전히 밀어붙일 수도 있었을 텐데, 신라는 어떻게 해서 당에 대항할 생각을 하게 되었고, 또 어떻게 이길 수 있었는지 궁금했다.
서영교의 《고대 동아시아 세계대전》은 그런 여러 가지 궁금증과 더불어 당시의 여러 상황들에 대한 세부를 채워준다. 당시 동아시아의 세력 균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당이 처해있는 상황이었다. 당은 서쪽으로는 강력한 유목민 국가였던 토번을 두고 있었고, 동쪽으로는 수를 멸망에 이르게 하고, 군사 천재였던 당 태종을 물리친 고구려가 있었다. 토번을 비롯한 북쪽과 서쪽의, 이른바 오랑캐 국가들과의 관계가 고구려를 비롯한 한반도에 대한 정책을 결정했고, 반대로 고구려와의 상황이 토번과의 대결에 영향을 줬다. 당은 강력한 국가였지만, 양쪽을 동시에 상대할 수 없었던 것이다.
신라가 당에 손을 내민(정확히는 고개를 숙인, 더 정확히는 납작 엎드린) 이유는 생존을 위해서였다. 고구려와 백제의 공격에 국가의 존망이 위태로웠고, 하는 수 없이 당에 도움을 청할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는 동아시아의 정세를 파악하는 냉철한 이성도 함께 했다. 토번을 견제하는 세력이 존재하고, 또 토번과의 관계가 어느 정도 안정적이라면 당은 백제와 고구려를 칠 수 있다고 여겼고, 그것을 혼신의 힘을 다해 이뤄냈다. 그리고 백제, 고구려의 멸망 이후에는 수모를 참으며 견디다 토번과 돌궐에 의해 당의 서쪽이 위험해지자 대당 전쟁을 벌일 수 있었던 것이다.
서영교는 국가의 흥망성쇠가 강력한 국가, 혹은 지도자의 의지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물론 중요하다), 국가가 처해 있는 조건, 즉 국제 정세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7세기 동아시아의 격변은 바로 그 정세에 따른 것이었다.
이 책은 그 내용뿐만 아니라 저자가 이 책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현장을 다니며 찍은 사진(혹은 얻은 사진)으로 빛을 발한다. 지금은 평온해 보이는 현장들이지만, 거기서 벌어졌던 처참한 살육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