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에 관해 알기 위해 단 한 권의 책만 읽으라고 한다면, 많은 사람이 추천하는 책이 바로 레너드 코페트의 《야구란 무엇인가》다. 1966년에 처음 나왔고, 1990년에 새로 집필한 이 책을, 우리나라의 전설 같은 야구 기자 이종남씨가 번역해서 내놓은 것인 1993년, 1994년이었다(2권 분권 형태였다). 그리고 1999년 통권으로 다시 냈다. 1990년으로부터 따지더라도 벌써 30년도 더 지난 야구 이야기인 셈이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이 책 한 권!”을 외치고 있다. 야구란 스포츠의 불변성을 의미할 수도 있고, 이 책의 불멸성을 의미할 수도 있다.
선린상고와 경북고의 고등학교 야구 결승전을 보던 시기부터 나는 야구팬이다. 1982년 MBC 청룡과 삼성 라이온스가 프로야구 첫 개막전을 하던 순간부터 나는 프로야구팬이 되었고, 한 팀을 응원해왔다. 그 팀이 이름을 바꾸고도 여전히 팬이었다. 40년이 넘었고, 여전히 나는 그 팀의 우승을 염원하고 있다. 암흑기였던 시절엔 차마 외면하면 외면했지 응원하는 팀을 바꿀 순 없었다. 아니, 외면하다가도 다시 되돌아서 승패를 확인하고, 누군가의 활약상을, 누군가의 뻘짓을 지켜봤다. 야구란 어쩌면 생활과도 같은 것이 되었다.
그러면서 야구에 관한 책도 몇 권 읽었다. 그런데 이 책을 넘겨버렸었다. 몰랐었다고 할 수도 있지만, 야구에 대해 나도 참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한 자만심 때문도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얼마 전의 황당한 사태(심판 발 끝에 스치는 타구로 승부의 흐름이 바뀌어버린)를 지켜보고 황당한 마음이 들면서 야구란 스포츠에 대해 좀더 들여다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수소문했고, “이 책 한 권!”이라는 추천을 여기저기서 발견했다. 맞다! 한 권만이라면 이 책 한 권이다!
사실 레너드 코페트가 야구에 대해 썼던 시점과 비교해서 지금의 야구는 많이 바뀌었다. 팀 수도 바뀌었고, 규칙도 바뀌었다. 야구를 둘러싼 환경도 바뀌었다(코페트가 1990년에 낸 책에서 많이 바뀌었다고 했지만, 그 후로도 많이 바뀌었다). 그럼에도 이 책은 굳건한 생명력을 갖고 있다. 바로 야구란 본질이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며, 코페트가 바로 그 야구의 본질에 대해서 썼기 때문이다.
코페트는 책을 3부로 나누어, 1부에는 “야구의 현장”을, 2부에는 “막후에서 벌어지는 일”을, 3부에는 “위대한 일”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야구의 현장”에선 그야말로 야구라는 스포츠가 벌어지는 장소에서 중요한 10가지를 다루고 있다. 바로 제각각의 구장에서 투수가 던지고, 타자가 치고, 타자가 친 공을 야수가 수비하고, 주자가 달리고, 감독이 작전을 지시하고, 심판이 판정을 내리는 일들이다. 여기선 야구라는 현장을 생생히 느낄 수 있다.
“막후에서 벌어지는 일”은, 야구란 스포츠가 야구장에서만 벌어지는 삭막한 종목이 아니란 걸 보여준다. 미디어의 (점점 커져온) 역할, 프런트와 스타우트의 활동은 물론, 선수들의 이동, 통계와 기록의 가치와 의미, 구단주와 선수 노조의 갈등, 커미셔너와 에이전트의 역할 같은 것이다. 아마 야구를 직관하거나 TV로 시청한 후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위대한 야구”에서는 야구에 대한 레너드 코페트가 야구 기자로서 가지고 있는 여러 생각들을 펼치고 있다. 포스트 시즌과 훈련, 타격의 기록이 저하된 이유, 역사상 위대한 투수는 누구인가?(그는 월터 존슨을 꼽는다), 명예의 전당에 대한 생각, 야구를 재미없게 만드는 일, 혹은 더 재미있게 만든 변화 등이다. 그리고 장래의 야구상을 전망하기도 한다. 1990년의 전망이니 그후 그의 전망이 맞아떨어진 것도 있고, 전혀 반대 방향으로 전개된 것도 있다. 어쨌든 그의 야구에 대한 진실된 사랑이 듬뿍 담겨져 있다.
그는 야구란 ‘과학’이 아니라 ‘예술’이라고 하고 있다. 이는 야구라는 스포츠에 담겨져 있는 과학적 요소에 대한 무시가 아니다(실제로 야구는 과학적 요소가 가장 많이 담겨져 있는 스포츠 중 하나일 뿐 아니라, 가장 과학적으로 많이 분석된 종목이다). 인간이 도구를 가지고 벌이는 스포츠로서의 야구가 가진 예측불가성, 우연성 등에 대한 얘기이다. 잘 맞은 타구가 아웃이 되고, 빗맞은 타구가 안타가 되며, 멀쩡히 수비 잘하는 선수가 갑자기 에러를 하며, 아웃코스를 노리고 던진 공이 안쪽으로 들어가 우연히 타자를 속이고 아웃을 시키고... 야구는 그런 예측불가능 속에서 많은 경기를 통해 평균을 찾아가는 경기다. 바로 그런 예외성에 우리는 환호하고, 평균을 찾아가는 경향성에 안도한다.
그가 여러 번 강조하는 얘기 중 하나는 ‘어떻게’보다 ‘언제’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예를 들면, 10-0으로 이기고 있는 상황에서 친 홈런과 1-1 상황에서 9회에 친 홈런은 가치가 다르다는 것이다. 작전을 내더라도 어떤 작전을 내는 것이 아니라, 언제, 즉 몇 회에, 어떤 투수일 때, 어떤 볼카운트일 때, 어떤 주자일 때 어떤 작전을 내는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바로 야구가 ‘예술’인 이유와 일맥상통한다. 그만큼 야구는 변수가 많으며 생각할 것이 많으며, 그래서 우리는 다시 한 번 야구를 사랑하게 된다.
어떤 과학교양서보다도 더 띠지를 많이 붙이며 읽었다. 그저 야구에 대한 얘기가 아니다. 한 겹만 벗겨보면 인생 얘기다. 야구에서 인생을 읽는다고 얘기하는 것은 진부하지만, 어쩔 수 없다. 그게 진실인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