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NA Jul 05. 2020

무한이라는 개념과 철학

무한이라는 개념은 지금은 매우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지만, 그렇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짐 홀트는 《아인슈타인이 괴델과 함께 걸을 때》의 “제5부 무한, 큰 무한과 작은 무한”에서 그 무한의 개념을 안심하게 쓸 수 있게 된 과정에 대해 쓰고 있다(제목의 ‘큰 무한’은 무한대, ‘작은 무한’은 무한소를 의미한다. 서로 방향이 반대인 셈이다). 


“형이상학적 무한은 그것을 숙고하는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일으키는 반면에 수학적 무한은 대부분의 서양 지성사에서 크나큰 의심, 심지어 조롱의 대상이었다.” (186쪽)


짐 홀트에 의하면 무한의 개념을 최종적으로 길들인 인물은 칸토어였다. 칸토어는 집합이론을 만들어낸 수학자이다. 그런데 그가 어떻게 무한의 개념을 길들였는지도 흥미롭지만(정확히 이해되지는 않는다), 그에 대한 책을 데이비드 포스트 월리스가 썼다는 게 더 흥미롭다. 데이비드 포스트 월리스는 소설가이자 에세이스트다. 난해한 소설로 유명하지만, 그가 쓴 에세이는 냉소적이면서도 아름답다. 소설은 아직 우리나라에 소개되지 않은 걸로 아는데, 에세이는 《재밌다고들 하지만 나는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일》이 나왔었고, 케니언대학 졸업식 강연문인 《이것은 물이다》도 번역되어 나왔다. 최근에는 《거의 떠나온 상태에서 떠나오기》가 번역되어 나왔는데, 아직 이 책은 읽지 못했다. 찾아보니 《끈이론》이란 제목의 책이 검색되는데, 혹시나 해서 들어가보니 정말 그 (물리학의) ‘끈이론’에 대한 책은 아니다. 그런 그가 무한에 대한 책(《모든 것과 그 이상: ∞의 간략한 역사(Everything and Moree: A Compact History of ∞)》을 썼다니 정말 흥미로운 상황이다(아직 이 책은 번역되어 나오지 않았다). 


그럼 무한소에 대해서는 어떤가? 무한소는 더 꺼렸던 개념 같다. 무한소는 미적분을 낳은 개념이지만 뉴턴도 라이프니츠도 확신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없는데, 있는 것처럼 생각한다는 게 정말 께름칙했던 것이다. 그런데 무한소에 대한 글(<무한소라는 위험한 발상>)에서도 흥미로운 이름이 나오는데 바로 카를 마르크스와 헤겔이다. 카를 마르크스는 거의 1,000쪽에 달하는 연구 자료를 남겼다고 하고(발표는 하지 않음), 헤겔과 추종자들도 무한소를 둘러싼 논란에 뛰어들었다고 쓰고 있다(수학이 자기모순적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그런데 이 무한소의 개념이 몇 수학자에 의해 이해되기 시작하는데, 그런 발전이 가져온 결과 중 철학적 관점이 흥미롭다. 


“세계에 관한 지배적인 철학적 관점을 변화시키는 데 이바지했다. 만약 무한소와 같은 것이 없다면, 러셀이 주장했듯이, ‘다음 순간’이라든가 ‘변화의 상태’와 같은 개념들도 무의미해진다. 자연은 정적이고 불연속적인 상태가 되는데, 왜냐하면 한 사건을 다음 사건과 이어주는 매끄러운 전환의 요소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221~222쪽) 


물론 무한소의 개념이 깔끔하게 이해되지 않더라도 우리가 다음 순간이라든가, 변화라든가 하는 것을 인식하지 못할 가능성은 없다. 하지만 철학적으로는 그렇단 얘기다. 철학적으로는...


http://www.yes24.com/Product/goods/90225942


http://www.yes24.com/Product/Goods/59563999?scode=032&OzSrank=3


http://www.yes24.com/Product/Goods/7526737?scode=032&OzSrank=4


http://www.yes24.com/Product/Goods/90035849?scode=032&OzSrank=2


http://www.yes24.com/Product/Goods/83557788?scode=032&OzSrank=1


작가의 이전글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바꾸는 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