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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A Sep 18. 2023

모비 딕, 문명 비판으로 읽다

허먼 멜빌, 《모비 딕》

허먼 멜벨의 《모비 딕》을 줄거리만을 위주로 읽는다면 단 몇 십 페이지에 불과할지 모른다. 실제 열린책들 번역본 끝에는 줄거리를 정리하고 있는데, 단 7페이지다(반면 역자 해설은 11페이지다). 서점에 축약본으로 나와 있는 《모비 딕》을 보더라도 매우 얄팍하다. 《모비 딕》은 소설로서의 줄거리만으로 그 진가를 얘기할 수 없는 책이다. 고래에 관한 생물학적, 생태학적 연구와 함께 고래잡이에 관한 문화사적, 산업적 고찰을 담고 있으며, 삶과 자연에 관한 철학적, 종교적 상징과 사유가 가득하다(그래서 마치 과학+인문 교양서로 분류하더라도 하등의 문제가 없을 듯 보이기도 한다). 또한 역사와 문학을 자유로이 인용하고 있다. 거기에 허먼 멜빌 자신의 경험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 이 모든 것을 함께 바라보아야, 이 소설 《모비 딕》의 진가를 파악하기 시작할 수 있다. 




그건 단지 시작에 불과하다. 다양한 해석이 나오는 소설이기에 그 해석들에 대해 비평할 수 있을 때 이 소설에 대한 본격적인 이해가 이뤄진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나는 거기에 이르지 못한다. 다만 ‘모비 딕’이라는 흰 향유고래를 중심으로 한 무궁무진한 상징 가운데 어떤 부분들에 조금 천착하면서 읽었을 뿐이다. 그 얘기만 조금 하겠다.


모비 딕은 분명 실체가 있다. 커다란 몸집에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으며, 고래로서는 사악하리만치의 지능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단순히 에이해브 선장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허상의 악마를 쫓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실체를 가지고 있는 모비 딕이 자신의 실체에 상응하는 만큼만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일부 사람들의 경험과 함께 신화가 되어 더욱 커다란 존재가 되었다. 흰 고래는 단순히 생존을 위해 최선을 다했을 뿐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대하는 인간에게는 사악한 실체가 되어 (대부분에게는) 피해야 만 하는 존재, (일부에게는) 반드시 정복해야 하는 존재가 되었던 것이다.


피해야 하는 존재로 여기든, 정복해야 하는 존재로 여기든 흰 고래, 모비 딕이 의미하는 바는 다를 바가 없다. 인간의 세계에 들여놓을 수 없는 타자(他者)의 존재인 것이다. 그것이 광대무변한 자연으로 보든, 사악한 악마로, 혹은 인간 세계에서 야만인 집단으로 보든 상관없다. 어쨌든 내(內)집단으로 들일 수 없는 존재인 것이다. 그것에 대해 에이해브의 태도는 광적이다. 내가 저것으로부터 당했으니, 나는 그것을 정복해야 만한다. 반면 스타벅은 피한다. 중간은 없다. 피쿼드호의 선원 대부분은 한쪽에 환호하기도 하고, 두려움에 반대쪽으로 몰려가기도 할 뿐이다. 오히려 냉정한 것은 야만인이자 식인종인 퀴퀘그뿐이다. 그래서 소설은 강렬한 문명 비판이 된다. 

일단 나는 이렇게 읽었다.


분명한 게 있다. 만약 이 소설을 다시 읽으면 또 다른 것을 찾으리란 것이다. 고전이란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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