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에는 형형색색의 식물이 주변을 장식하고 있고, 중앙에는 한 꼬마가 화분 하나를 들고 있는 그림이 있다. 바로 어린 찰스 다윈이다. 다윈이 관심을 가지고 연구한 식물에 관한 책이니 딱 어울리는 그림이다(그림은 다윈이 일곱 살 때 여동생 캐서린과 함께한 모습이다. 다윈이 안고 있는 화분에 있는 식물은 케이프카우슬립이다).
다윈은 평생 식물에 관한 책을 여섯 권 썼다. 모두 1859년 《종의 기원》을 출판한 이후다.
1862년 《난초의 수정》 (《영국과 외국에서 자라는 난초가 곤충에 의해 수정되는 데 관여하는 다양한 장치들과 상호교배의 이점들》)
1865년 《덩굴식물의 운동과 습성》
1875년 《식충식물》
1876년 《타가수정과 자가수정》 (《식물계에서 타가수정과 자가수정의 결과》)
1877년 《꽃의 다른 형태들》 (《같은 종에 속하는 꽃들의 서로 다른 형태들》)
1865년 《식물의 운동 능력》
그밖에도 수십 편의 논문에서 식물을 다루고 있다.
이렇게 보면 다윈은 식물학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동물에 관한 책을 더 많이 썼고(7권), 특히 《종의 기원》을 발표하기 전 자신의 연구자로서의 전문적인 능력을 쌓기 위해 따개비를 수년 동안 연구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렇게 식물에 관한 책을 쓰기 전에는 식물학자로서 자격이 없다고도 여겼다.
사실 다윈은 어린 시절부터 식물과 함께 하며 자랐다. 케임브리지 시절에는 헨슬로 교수와 식물을 채집하며 다니기도 했다. 하지만 비글호 항해를 하면서 식물을 채집하는 경우나, 항해 이후 채집한 식물을 분류하고 분석하는 데 전문적인 식견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식물을 아는 것과 이해하는 것은 달랐다. 아마추어와 프로와의 차이라고나 할까. 사실은 그것은 동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는데, 어떤 한 종류의 생물에 대해 전문적인 분류와 분석 능력을 갖추지 않고서 그저 두루뭉술하게 무언가를 알고 기술하는 것으로는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을 수 없었다. 그래서 (앞에서도 얘기한 대로) 따개비를 8년 동안이나 연구하고 그 결과를 내놓기도 했던 것이다.
그리고 《종의 기원》 발표 이후에는 동물 연구만 아니라 식물 연구에도 천착했다. 식물을 단지 호기심만으로 연구한 것은 아니었다. 변이를 관찰함으로써 자신의 진화 이론을 뒷받침하는 연구하는 것이었다. (비록 잘못된 것을 밝혀지기는 했지만) 동물과 식물이 공통의 조상을 갖는 특성을 연구하기 위해서도 필요한 연구라 여겼다. 그리고 진화가 오랜 세월에 걸쳐 서서히 일어난다는 자신의 이론에 어긋나는 현화식물의 갑작스런 출현이라는 ‘수수께끼 중의 수수께끼’를 풀기 위한 연구이기도 했다(물론 그가 이 수수께끼를 풀어내지는 못했다). 다윈은 동물에서도 그랬지만, 식물에서는 연구한 분야에 대해서는 극도로 세밀한 관찰을 했으며, 최선의 실험을 통해서 자신의 이론을 증명하려 했으며, 그것을 책으로 남겼다. 그는 연구자였다.
식물학자 신현철 교수는 이 이야기를 쓰고 있다. 식물학자로서의 다윈. 식물에 가까워졌다, 멀어졌다, 다시 가까워지고 하는 이야기. 무엇을 남겼고, 다윈이 의도한 바는 무엇이었나 하는 이야기.
나는 신현철 교수의 책을 《종의 기원 톺아보기》로 만났다. 가장 최근에 읽은 《종의 기원》 책이다. 앞으로도 다윈이 남긴 식물에 관한 책을 번역한다고 한다. 기대된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다윈에 관한 평전으로 데스먼스와 무어가 쓴 《다윈 평전》만을 인용하고 있는 점이다. 다윈 평전으로는 재닛 브라운의 두 권짜리 평전이 나와 있다. 다윈 연구자로서는 재닛 브라운이 더 인정받는 걸로도 알고 있다. 재닛 브라운의 평전도 함께 분석해서 이 책에 담았으면 좀 더 풍성한 논의가 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