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접했던 뉴스 중에 도시에 사는 전 세계 인구가 50%를 넘었다는 소식이 있었다. 그때 느낌은 이제야? 그런 것이었지만, 이 뉴스를 전하는 해설에서나, 또 이를 인용하는 책에서나 세계 역사의 전환점이라고 전했다. 이제 도시는 인류의 일상이 되었다는 얘기였다.
도시야말로 창조성의 원천이라고 한다. 가까이 모여 있을수록 서로의 의견이 소통되고, 그러면서 새로운 생각이 나온다는 얘기다. 사람들이 모여 살면서 전문적인 기술과 지식만으로도 살아갈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즉, 분업이 가능해졌고, 부가 축적되기 시작했다. 도시는 역사의 발전이었다.
그래서 도시는 욕망의 산물이기도 하다. 어찌 되었든 도시에서, 아니 도시 자체가 정체는 퇴보와 같은 것이라 여겨졌다. 그래서 확장을 거듭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미 그곳에 존재하는 무언가를 없애고, 새로운 건물을 짓고, 길을 내야만 했다. 나무를 자르고, 잡초를 베고, 동물을 내쫓고, 강의 방향을 바꾸거나 메워야 했다. 그렇게 수천 년을 도시화의 길을 걸었고, 그게 진보의 길이라 믿었다. 우리 인류는.
그게 그렇지 않다는 걸 깨달은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자연을 내몰고, 인공적인 것만으로 채워진 도시가 기후 변화에 취약하다는 것이 밝혀졌고, 온갖 사회 문제도 증가시켰다. 도시에 살면서도 자연을 즐기고자 했고, 자연을 도시의 풍경에 들여오고자 했다. 물론 그럴 수 있는 여유가 있는 사람들의 얘기이긴 하다. 그렇게 도시와 자연의 관계는 다시 정립되어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다.
《메트로폴리스》를 통해 도시의 형성과 도시에 사는 사람들 얘기를 풀어냈던 벤 윌슨이 이번에는 도시가 나아갈 바, 그것도 자연을 어떻게 접목시키며 나아갈 것인지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사실 “어반 정글(Urban Jungle)”이란 제목만 봤을 때는 ‘정글’을 상징, 은유적으로 해석해서 콘크리트 도시의 복잡함에 대해서 얘기하는 것으로 짐작했었다. 하지만 여기서 정글은 말 그대로 정글, 도시 속에 식물과 동물로 이루어진, 그리고 거기에 인간이 함께 살아가는 상황을 의미한다. 이른바 ‘정원 도시’를 넘어서 ‘야생 도시’와 같은 의미인 셈이다.
도시가 콘크리트로만 이루어져 삭막하기만 한 것 같지만, 실제로는 상당한 녹지를 포함하고 있고, 거기에는 시골보다 더 많은 종류의 생물들이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가 원하는 종류의 식물과 동물만을 들여놓고 있어, 여전히 도시의 자연은 우리 인간의 욕망의 발현일 뿐이다. 그래서 도시의 녹지는 잔디와 같이 인공적으로 만들어낸 것인 경우가 많으며, 그것을 자연이라 부르기에는 꺼려진다.
벤 윌슨은 도시에 자연이 축출되어온 과정과 함께, 다시 자연을 도시 속에 심어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도시가 확장되어가며 자연과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과정, 도시 속에 공원이 세워지는 과정과 그 의미, 건물과 건물 사이를 비집고 생명력을 티워내는 식물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그리고 도시에 캐노피를 이루는 나무들의 가치를 이야기하고, 도시에서 반드시 필요한 물이 부족해진 상황과 그것을 해결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또한 도시 자체에서 농산물을 수확하는 것의 가치를 이야기하고, 여러 동물들이 도시를 삶의 최적지 삼아 살아가는 모습, 그리고 우리가 그들과 어떻게 어울려 살아가야 할지를 이야기한다.
이 이야기들은 우리가 어떻게 도시를 만들어 발전을 거듭했으며, 그 과정에서 우리가 무엇을 잃었는지, 그리고 어떤 위기를 겪고 있으며, 어떤 위험이 있는지에 대한 역사이며, 나아가 우리가 이러한 역사를 통해서 어떻게 도시 속에서 자연의 삶을 화해시켜 나갈지에 대한 이야기다. 이미 여러 도시들이 각성하고 시도하고 있는 것들이며, 비록 벤 윌슨은 그것을 ‘기적’이라고 했지만, 반드시 필요한 ‘기적’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