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에 관한 생각들을 모아...

오카다 하루에, 《세상을 뒤흔든 질병과 치유의 역사》

by ENA

우연찮게 발견한 책이다. 별 기대 없이 읽었는데, 꽤 괜찮다.

제목만 보면 질병에 관한 역사를 일관되게 다룬 것 같지만, 실제로는 주로 2개의 잡지에 연재했던 글을 모았다(1부는 대부분 <HEALTHIST>, 2부는 모두 <예방의학 저널>). 그래서 일관된 구조를 가지지는 않고 있고, 저자의 상념이나 느낌 등이 많이 들어가 있는 글 모음이다. 말하자면 에세이 모음인 셈이다.


그런데 감염질환과 관련해서 오히려 이런 글을 거의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서 신선하다. 유럽 마르부르크에서의 유학 경험과 여러 도시에의 여행 경험을 바탕으로 감염질환과 사투를 벌였던 사람들의 흔적을 돌아보고 있으며, 그것을 현재의 상황과 연결시키고 있다. 주로는 페스트, 매독, 한센병이다. 그리고 여러 문학 작품과 영화 등을 통해서 감염질환이나 당대의 시대상을 엿보고도 있다. 감염질환과 전혀 상관없는 내용의 글도 있다. 이를테면, 어릴 적 교과서에 나왔던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에 대한 얘기라든가, 러일 전쟁 전에 일본군의 동계 산악훈련에서 몰살당한 이야기 등등. 하지만 그런 글도 꽤 읽을 만하고 의미도 있다. 그래도 저자가 중심에 두고 있는 것은 감염질환임에는 분명하다.


특히 저자는 과거에 환자들을 치료하기 위해 병원 용도로 쓰였던 건물들, 환자들을 헌신적으로 보살폈던 이들을 기리는 건물들과 동상들에 짙은 애정을 가지고 방문하고, 그들에 대한 글을 썼다. 그러면서 ‘치료’보다는 ‘치유’라는 말을 많이 하고 있는데, 감염질환에 대한 치료법이 거의 없던 시절에 더 중요했던 것은 질병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질병에 걸려 죽어가는 사람들 마음의 치유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파울 에를리히와 함께 매독치료제인 살바르산을 개발한 하타 사하치로에 대한 글이나, 제멜바이스에 관한 글에서는 잘 모르던 내용도 포함하고 있어 내가 책을 내기 전에 읽었더라면 내 책에도 포함시킬 수 있었을 것 같다는 아쉬움도 든다.


저자는 주로 바이러스 감염병 전문가로서 조류인플루엔자를 매우 우려하고 있다. 2015년에 일본에서 출판되었고, 우리나라에는 2017년에 나왔으니 코로나-19는 예상할 수 없었다. 나도 당연히 조류인플루엔자를 우려하고 있었고, 지금도 다음은 그게 아닐까 하는 얘기를 하곤 한다. 그만큼 코로나-19는 뜻밖의 사태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뜻밖의 감염질환에도 대비를 해야 한다는 교훈도 주고 있는 셈이다. 무엇이 올지 모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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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아쉬움도 있다. 아마 편집이나 교정의 문제가 여러 군데서 본다. 그 예로, 매독균의 학명(Treponema pallidum)을 여러 차례 쓰고 있지만 단 한 차례도 정확하게 쓰질 않았다. 또 선천성풍진증후군을 다룬 아가사 크리스티의 소설 《깨어진 거울》을 쓰면서, ‘깨진 거울’과 ‘깨어진 거울’을 함께 쓰고 있고, 이 작품의 영화 제목도 ‘거울 살인 사건’과 ‘크리스털 살인 사건’으로 왔다갔다하고 있다. 일차적인 번역이야 그렇다치더라도 교정 과정에서 충분히 바로잡을 기회가 많은 실수가 많이 눈에 띤다. 그대로 충분히 감안해서 읽을 정도이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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