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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이념, 그리고 개인의 삶

밀란 쿤데라, 《농담》

by ENA

“낙관주의는 인류의 아편이다. 건전한 정신은 어리석음의 악취를 풍긴다. 트로츠키 만세!”


이 세 문장 때문이었다. 루드비크의 추락은 마음에 두었던 한 여대생에게 보낸 엽서 끝에 ‘농담’으로 적어 보낸 문구로 시작되었다.


1948년 2월 혁명으로 사회주의 국가가 된 체코에서 공산당 당원인 대학생 루드비크는 농담 하나로 자신이 누리던 모든 것과 미래에 전망마저 빼앗기고 만다. 농담일 뿐이며 자신의 의도가 절대 아니라는 호소는 자신과 많은 것을 함께 하고, 자신을 이해한다고 믿었던 이들에게도 받아들여지지 않고, 결국 당에서 축출되고, 대학교에서도 쫓겨나고 만다. 오스트라바 지역의 군부대에 배치되었고 광산 일을 하게 된다. 그야말로 추락이었다. 루드비크는 배신감에 좌절하고, 복수를 꿈꾸며 살아간다. 그 와중에 구원과도 같은 루치에를 만나 열렬한 사랑을 꿈꾸지만 결국은 그녀와의 사랑 역시 (정신적, 육체적) 결실을 맺지 못하고 파국을 맞고 만다.


십여 년이 지나고 우연하게 자신을 추락시킨 결정의 당사자 제마네크의 아내 헬레나를 만난다. 루드비크의 복수는 헬레나를 유혹하고 제마네크의 사랑을 배반하도록 하는 것이다. 제마네크에게 직접 향하지도 않고, 누구도 인지하지 못하는 복수가 과연 복수로서의 의미와 가치가 있는지와는 상관없이, 루드비크의 복수감은 제마네크 곁에 서 있는 젊고 예쁜 정부 브르조바로 산산조각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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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시점은 여러 인물을 오간다. 루드비크 말고도 헬레나, 루드비크의 어릴 적 고향 친구 야로슬파프, 그리고 루드비크를 떠나버린 루치에를 돌본 코스트카(그는 루드비크에게 여러 차례 도움을 받은 바 있다). 그러나 소설은 주인공은 분명히 루드비크다. 모든 인물이 루드비크와 관련을 맺고 있으며, 밀란 쿤데라가 소설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을 가장 적극적으로 구현하고 있는 것도 루드비크다. 루드비크의 농담 하나라는 작은 계기로 인한 인생이 완전히 다른 길로 접어든 이야기가 이 소설의 골자인 것이다.


이 소설은 밀란 쿤데라가 1965년에 발표했다. 아직 체코는 물론 전 세계 많은 지역에 사회주의 국가 건설이라는 이상주의가 건재하던 시기다. 그러나 이미 망명 중이던 밀란 쿤데라는 (당연히) 매우 회의적인 시각으로 체코라는 사회, 사회주의라는 이상을 비판하고 있다. 그 비판이 직접적인 언어로 표현되고 있지는 않지만, 한 사회와 체제 속에서 살아가는 인물들의 좌절과 부조리한 상황은 당연히 그 사회와 체제에 대한 비판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다시 한번 주목해야 하는 것은 밀란 쿤데라의 비판이 체제에 대한 비판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는 사적인 삶이 파괴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리고 운명에 대해서는 묻는다. 개인이라는 존재의 무력함도 짚어내고 있다. ‘역사’라는 거창한 주제와 그 무게에 짓눌린 개인의 좌절, 유연성 없는, 그러나 위선적인 신념이 무너뜨리는 개인의 삶. 밀란 쿤데라가 정말로 어디까지 생각했는지는 모르지만, 작가의 의도보다 더 넓고 깊게 읽히는 것이 훌륭한 작품이다. 이 소설은 분명 훌륭한 작품이다.


소설에서 내가 가장 오래 머문 대목은 다음의 부분에서다.


“우리가 맛보았던 도취는 보통 권력의 도취라고 불리는데, 나는 그러나 (약간의 선의로) 그보다 좀 덜 가혹한 말을 고를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니까 우리는 역사에 매혹되었던 것이다. 우리는 역사라는 말 위에 올라탔다는 데 취했고, 우리 엉덩이 밑에 말의 몸을 느꼈다는 데 취했다. 대부분의 경우 그것은 결국 추악한 권력에의 탐욕으로 변해 버리고 마는 것이었지만, 그러면서도 (인간의 모든 일에 여러 가지 면이 있듯) 거기에는 동시에 아름다운 환상이 있었다. 사람이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이제 역사의 바깥에 머물러 있거나 역사의 발굽 아래 있는 거싱 아니라 오히려 역사를 이끌어 나가는 그런 시대를 우리, 바로 우리가 여는 것이라는 그런 환상이 있었다.” (125쪽)


그런 것이었을까? 그런 것이었다면 그건 그저 ‘환상’이었을 뿐일까? 나의 청춘은 아름답지만 결코 도달할 수 없는 도전이었을까? 그런 도전은 이후의 삶에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하고, 아무런 의미도 없었을까? 나는 이런 지점에서 밀란 쿤데라와 서 있는 지점이 좀 다르다. 물론 그가 서 있던 그곳의 엄혹함과 좌절의 정도가 더 처절했겠지만, 나도 나의 지점에서 판단하는 것이다. 개인의 삶에 대한 적극적인 옹호를 절대 부인하지 않지만, 그래도 여전히 역사 속의 개인이라는 생각을 완전히 포기할 순 없다. 개인만 존재한다고 생각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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