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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오노 나나미, 르네상스의 인물들을 찾아

시오노 나나미, 《르네상스를 만든 사람들》

by ENA

시오노 나나미는 르네상스의 주역에 대한 이 책을 보통의 경우와 달리 성 프란체스코와 프리드리히 2세로부터 시작하고 있다. 왜 시오노 나나미는 종교인인 성 프란체스코와 구체계의 상징인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인 프리드리히 2세를 최초의 르네상스인으로 보고 있을까? 여기에 그녀가 생각하는 르네상스의 본질이 담겨 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녀는 성 프란체스코는 유럽 사회의 종교적 계급 관계를 허물었고, 선택의 자유라는 인간의 기본권을 인정하고 실천했다고 본다. 그리고 프리드리히 2세에 대해서는 현실적인 군주로 다양하고 현실적인 학문과 문예를 지원했다는 점에서 그를 르네상스인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시오노 나나미는 프리드리히 2세에 관한 책을 쓰기까지 했다).


두 최초의 르네상스인에 대한 이야기에 이어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르네상스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바로 그곳은 피렌체다. 피렌체는 메디치가(家)의 학문과 예술 지원이 이루어지고,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가 탄생한 토양이었다. 그런데 화려했던 피렌체의 르네상스는 메디치가의 몰락 이후 그 중심이 로마로 이동한다. 이에 따라 시오노 나나미의 시선과 발길도 로마로 향한다. 15세기 말에서 16세기 초 약 30년간 로마 르네상스의 원동력이 된 건 바로 로마 교황이었다. 즉 피렌체나 로마에서 모두 지배자, 혹은 권력자의 역할이 중요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시오노 나나미의 관점을 반영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리고 피렌체와 로마의 르네상스가 후세에 큰 영향을 끼친 것만은 사실이지만, 그곳에서 오래토록 지속되지 못한 한계가 있던 것은 권력자의 후원에 따라 운명이 정해졌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파르세네 교황을 마지막으로, 그리고 미켈란젤로를 끝으로 로마의 르네상스는 저문다. 로마를 떠난 시오노 나나미가 찾은 곳은 피렌체 인근 키안터 지방의 그레베라는 마을이다. 이 낯선 마을(나는 처음 듣는다)은 도대체 르네상스와 어떤 관계가 있을까? 여기의 ‘르네상스 인물’로 언급하는 인물은 그레베 출신의 조반니 다 베라차노이다. 역시 낯설다. 여기서 다시 시오노 나나미가 생각하는 르네상스의 의의, 가치가 드러난다. 베라차노는 프랑스 왕의 지원을 받아 아메리카 대륙 중에서도 북미 해안을 탐험한 사람이다. 시오노 나나미는 이 사람을 통해 르네상스의 본질, 정신이 ‘만족할 줄 모르는 탐구심’이라는 걸 강조한다. 따라서 르네상스는 종교개혁이 아니라 대항해시대와 더 깊이 관련되어 있다는 견해를 주장하고 있다. 피렌체인이면서 지리학, 천문학 등에 다채로운 관심과 지식을 갖고 있던 파올로 토스카넬리를 주목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그가 위도와 경도 개념을 처음 생각해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그러나 시오노 나나미가 그레베에 머문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그레베는 르네상스의 어떤 지점일 뿐이지 거점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레베에 이어 마지막 여정으로 삼은 곳은, 르네상스의 마지막 불꽃을 피운 베네치아다. 베네치아에 대해한 《바다의 도시 이야기》를 통해 자세히 살펴본 시오노 나나미다(내가 시오노 나나미를 처음 알게 된 게 바로 이 책을 통해서다). 베네치아에서의 르네상스는 피렌체나 로마의 르네상스와는 사뭇 다른 모양새다. 베네치아인의 정신세계 자체가 달랐기 때문이다. 현실적이면서 종교와도 거리를 두었지만, 그렇다고 종교와 완전히 갈라서지도 않았고, 성 유물 모으기에 열과 성을 다하기도 했던 게 베네치아다. 시오노 나나미가 베네치아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인물로 꼽고 있는 것은 티치아노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소묘에서의 아쉬움을 표했던 화가. 그러나 티치아노는 르세상스에 ‘색’을 입혔다.


시오노 나나미느 종교개혁이나 이에 반대한 반종교개혁이나 모두 서양의 기독교 세계의 일이지만, 르네상스는 그렇지 않다고 평가하고 있다. 과연 그런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여지도 있다고 볼 수 있고, 또 여기에 소개한 흐름이 모두 일관된 것이라 르네상스라는 게 실체가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살짝 의심이 가기도 한다. 그러나 여기의 인물들이 추구하고 만들어 간 세상, 그리고 그들의 정신세계가 오늘날까지 적지 않은 영향을 주고 있는 것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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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오노 나나마의 르네상스에 대한 견해 중 아마도 적지 않은 부분이 보편적인 것이 아닐 수도 있다. 또한 다른 저작에서와 마찬가지로 단정적인 평가가 거슬리는 점도 사실이다. 하지만 시오노 나나미의 이 르네상스에 관한 문답식 설명이 르네상스를 도시의 활력과 정신의 변화와 연관하여 이해하는 데 매우 친절하다는 것은 분명하다. 시오노 나나미가 읽혔던 것이고, 지금도 읽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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