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어디쯤에 쓰여 있듯, 어느 사회든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은 스스로 살아가지 못한다. 농부가 지은 것을 먹고, 공장에서 만들어낸 물건을 쓰며, 이동하는 수단에, 심지어 문화 활동 등등 모든 것을 다른 이에 의지하며 살아간다. 생각해 보면, 현대인의 삶이 그렇다. 고도화된 분업 사회에서 살아가는 것은 각 분야의 전문가들에 의존하는 삶일 수밖에 없다.
조선은 어땠을까? 우리는 조선이라는 사회를 들여다볼 때, 주로 왕과 양반들을 중심으로 보게 된다. 하지만 그 사회가 유지될 수 있도록 하는 데는 수많은 전문가들의 손길이 필요했다. 이른바 중인(中人)이라는 신분의 인물들을 중심으로 하는 이들이다. 규장각한국한여구원에서 엮은 《조선 전문가의 일생》은 바로 그런 조선이라는 사회를 유지하고 움직일 수 있게 했던 전문가들을 조명하고 있다.
열두 가지 전문가 직업을 소개하고 있다. 교사, 천문역산가, 의원(의사), 광대, 승려, 음악가, 궁녀, 집짓는 사람, 화원(화가), 역관, 책을 팔고 읽어주는 사람, 금융업자. 가만 보면 현대 사회에서 대체로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직업에 해당하는 것들이다. 이를테면 의사가 그렇고, 연예인이 그렇다. 그러나 그들은 조선 사회에서 그리 주목받지 못했다. 분명 사회를 유지하고, 국가를 운용하는 데 필수적인 일들이었으나, 지배 계급으로부터는 하찮은 일이라 천대받았다. 가끔 높이 평가받고, 또 높이 인정받는 인물이 기록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건 그야말로 어쩌다 한번 나오는 시혜의 결과였다. 대부분은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고통에 몸부림치기도 했다.
이런 전문가들의 일생을 살펴보면서 조선이라는 국가가 더 입체적으로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여기의 내용들을 바탕으로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런 이들을 잘 관리하면서 조선이라는 나라가 500년을 유지되었던 것이라 걸 깨닫게 된다. 높은 지위를 주지 않으면서도 어느 정도 인정해주고, 가끔씩 살 길을 내어주면서 그런 직종을 관리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직종의 사람들을 나름대로 통혼(通婚)이나 가업 승계 등을 통해 기득권을 유지하기도 했다. 한 사회가 유지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정말 많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서울대 규장각에서 마련했던 강의를 바탕으로 엮은 책이라 저자에 따라 서술 방식이 천차만별이다. 개인적으로는 달문이라는 광대, 보우라는 승려, 즉 한 사람의 삶을 추적하면서 그 직업의 삶을 보여준 형식이 좀 더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