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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관우 May 09. 2018

[막냉이가 해 준 틀니]

진료실에서 웃고 울다.

고가의 틀니가 부러지면, 아무래도 난감할 수 밖에 없습니다.


"막냉이가 암으로 죽고 남은 게 이 틀니 아이가."






  익숙한 치과 진료실에서 할머니 환자분을 뵙습니다. 원장실 문을 삐걱 열고 나가니,  저를 기다리고 앉아계신 할머니의 뒷모습이 보입니다. 그리고 그 옆으로 두동강난 틀니가 보입니다. 아이쿠. 이걸 어쩌나.


“안녕하세요? 할머니. 틀니가 부러졌어요. 놀라셨겠어요. 큰일이네요.”


 불안한 듯 두 손을 연거푸 만지작거리시더니 서 있는 저를 올려다보며 할머니께서 의외의 말씀을 하십니다.


 “원장님, 이 틀니, 이거이 막내가 죽기전에 해주고 간 틀니 아이가.. 그때 막냉이랑 같이 먹을 때, 내가 밥을 먹다말고, 잇몸 틀이 틀니랑 맞지 않아서 아프니까 자꾸 틀니를 뺐다 끼웠다 했었제. 아픈데 우찌 밥을 먹겠노. 그래서 빼고 다시 끼우고 했제. 막내아들 놈이 그걸 유심히 보더니만 내 손을 잡고 새로 틀니를 해준게 이거 아이가. 틀니가 오래되니 이 틀이 변해서 안맞더라고. 다른 할매들에게 물어보니 잇몸살이 빠져서 그렇다던데, 옆에서 나를 보다못한 아들이 새로 해준 기라. 근데 부러져서 이를 우짜노.”


 챠트를 보니 2014년. 제가 만들어드린 틀니입니다. 할머니의 얼굴이 어둡습니다.


 '틀니를 새로하시려니 막막하셔서 그러신가보다.'


 어딘지 예전보다 더 작아진 체구에, 더 야위신 듯 합니다. 노쇠하셔서 더 그렇겠지요. 틀니를 만들어드린 입장에서는, 혹여 틀니가 불편하여 잘 못 씹으셨나 싶기도 합니다. 


 “우리 막냉이, 그렇게 이 틀니 내게 해 주고, 나이 오십도 안되어서 암으로 갔다 아이가, 세상 버렸제. 이게 막냉이가 해준 틀니라서  아까바서 끼도 몬하고, 외출 나갈 때만 고이고이 아껴서 썼다 아이가..막냉이 죽고 남은게 이 틀니 아이가.."


 할머니께서 보시기에도 이것을 수리로 다시 고치기는 어려울거라는 생각이 드셨는지, 한숨에 땅이 꺼질 것만 같습니다.


 원장실에 돌아와 기공소 소장님께 전화를 합니다. '잘 좀 수리해주세요. 막내자식이 돌아가시기 전에 유품처럼 선물로 남기고 가신 틀니라고 하네요. 각별한 틀니이니 잘 부탁드립니다.'


  “네 할머니, 잘 수리해봐 드릴게요.”


 수리하는 며칠간 할머니께서는 무엇으로 음식을 씹으실까. 오히려 틀니가 없으니 막내 생각이 더 나실까. 잘 수리된 틀니를 보면 다시 막내를 만난 듯이 기쁘실까. 집에 좋은 믹서기가 있으면 좀 나으실텐데.. 작은 것으로 하나 사드릴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원장실로 들어옵니다.


“막내자식보듯 이 틀니를 보고 살았는데, 오늘 이게 딱 부러지고 얼매나 가슴이 아프던지..”


   그만큼 많은 사랑을 받았던 틀니입니다. 틀니가 깨끗한 것을 보니 그동안 얼마나 애지중지 음식물 묻은 틀니를 세척하셨는지 새것처럼 반짝반짝 합니다. 막내분이 살아계셨다면 한번쯤은 정성껏 닦아드리지 않았을까 상상도 해 봅니다. 부러진 틀니를 이리저리 조각맞추듯 맞춰 보았을 할머님의 애타는 심정을 헤아려봅니다. 막내의 사랑이 가득담긴 부러진 틀니는 오늘 기공소로 갑니다. 수리하는데 하루이틀 걸리겠죠. 틀니가 사라진 허전한 입 속을 혀가 왔다갔다 할겁니다. 어딘지 공허하고 자유로워진 혀가 무언가를 더듬으며 찾게될것입니다.  틀니가 없는 오늘은 식사하기 어려워 하루는 죽만 드셔야 할 터, 높은 연세에 한끼  식사를 부실하게 드신다는 것이 참으로 더 염려스러운 일입니다.


   아들이 눈을 감기 전에 이  틀니를 해 준 것이니, 자식이 세상을 떠나면서 자신을 꾸깃꾸깃 구겨서 어머니의 주름지고 텅 빈 입 속으로 들어가 있던 것은 아닌가 하는 동화같은 상상을 해봅니다. 몸은 사라졌지만 그 안에서 효도를 하고 계셨던게 아닌가 싶습니다.


 할머니께서 말씀하십니다.


“이제 내 나이 구십이야. 밭에 갔다가 오는 길에, 수돗가에 앉아서 잘 씻어볼끼라고 씻는데, 손이 어주발라서 떨어뜨렸지뭐야, 바위 위에 떨어졌으니 안깨지면 이상한거 아이가. 반으로 두동강이 나데.”


 손톱 주위가 까맣게 노동일을 한 흔적이 있는 주름진 할머니의 손을 보니, 그동안 쉬지 않고 90년이 되도록 일한 인생이 한 눈에 보입니다. 그리고는 그동안에 저에게 무수히 많은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틀니를 해 가셨는데, 다들 노쇠하셔서 손은 떨리지 않으시는지, 행여 또 다른 분들도 이렇게 당신마음과는 다르게 흔들리는 손이 틀니를 내팽겨쳐서 두동강나며 부러져버리지는 않을지, 이래저래 야속한 마음입니다. 이렇게 진료실에서 하나의 숭고한 인생을 만나고, 저도 점점 어른이 되어가는 것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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