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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관우 May 09. 2018

[ 딸 없는 사위가 해주는 틀니. ]

치과진료실에서 웃고 울다



 “원장님, 마 치료비 좀 작게 나오게 견적을 내주시라예. 딸 없는 사위가 해주는거라 내가 부담을 줄 수가 없어예.”


 이제 여든이 넘은 할머님이십니다. 윗니는 이미 모두 사라진 상태이고, 아랫니만 네 개. 마치 입안을 사대천왕처럼 떡하니 꼿꼿하게 서서 지키고 있습니다. 그래도 아래턱에서는 혀가 꿈틀대며 말도하고 음식을 휘젓는 역할을 하기때문에, 치아가 몇개 기둥처럼 버티면서 틀니를 지탱해 주어야 그나마 잘 쓸 수가 있답니다. 치아가 하나도 없는 상태에서 아래턱에 틀니가 들어가면, 물위에 떠다니는 배처럼 둥실둥실 틀니가 딩굴딩굴 혀에게 밀려서 놀거든요.

“마, 부담 주기 싫으니, 다 빼 주이소. 그래야 좀 돈이 쌀 꺼 아임미꺼?”


“할머니, 치아가 없어서 틀니가 입안에서 굴러다니고 붙어있지 않아서 일부러 임플란트를 심어서 틀니를 연결도 하는데, 멀쩡히 남아있는 치아를 뺀다던지 제가 양심상 그럴 수는 없고요.. 이를.. 어쩌죠..”


저 혼자 마음속으로 생각합니다. 


 딸 없는 사위. 그게 무슨 말이지? 아.. 손녀딸은 없고, 손자. 즉, 아들만 있다는 말인가? 그래. 그렇다면 딸을 낳고 싶었지만 못 낳은 사위가 맞겠구나.


 “그런데 딸 없는 사위가 무슨 뜻이에요? 제가 말을 잘 못 이해해서요.. 죄송합니다.”


 “응, 원장님, 3년 전에 내 딸이 하늘나라에 갔어요. 그래서 딸 없는 사위라고 말하는거야.”


 “......”


 할머님의 치아가 나온 엑스레이 사진을 유심히 보는데, 그 엑스레이 모니터 안에서 그 사위의 얼굴이 보이는 것만 같습니다. 결혼 한 후 아내가 사망하게되면, 장모님과의 인연도 끝나는 것이 아닌가 생각도 들텐데, 아마 세상이 꼭 그런 것은 아닌가 봅니다. 인정이 남아있나 봅니다. 아내를 잃은 사위가 장모님의 사라진 신체의 일부를 회복해드리려는 아름다운 계획에 제가 참여하게 되었으니 저로서도 감사한 일입니다.

 불없는 화로, 딸없는 사위라는 말이 있답니다. 불이 없는 화로란 무슨 소용이며, 딸이 없는 사위란 무슨 소용이냐는 뜻이랍니다. 사위도 자식이나 다름 없다지만, 어디 딸이 사라지면, 그 전 같을 수야 있겠어요. 시간이 나서 뒤적여보니, ‘움딸’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움’이라는 말도 잘 몰라서 찾아보니, ‘움’이란, 나무나 풀에 새로 돋아나는 싹‘을 말한답니다. 또는, ’나무를 베어낸 뿌리‘에서 나는 싹’을 말한답니다.


 그러니 ‘움딸’이란, 하늘나라에 간 딸의 남편이 다시 다른여자를 만나 현실에서 재혼하게된 여자를 말합니다. 장인장모님 입장에서는 새로 돋아난 딸이 되겠지요. ‘움딸’이자, 기존의 아이들에게는 새 어머니이자, 새 아내가 되겠지요. 참으로 애틋한 말입니다.

..........


사위.


 저는 장인어르신과 함께 삽니다. 뇌졸중으로 인해 언어중추에 손상을 입으셔서 말씀을 못하시지요. 다 알아듣는데 말을 할 수 없으니, 본인스스로도 너무 힘이 드십니다. 인내하고 재활을 하셔야하는데 쉽지 않습니다. 어쩌면 그런 모든 판단을 하는 뇌의 일부조차 망가지셨는지 모르죠. 참 좋은 분이신데...

 평소에 하루를 마치고 퇴근하면 장인어르신은 장모님의 눈치를 보며 밍기적 밍기적 구석의 냉장고에 숨겨둔 보물같은 막걸리 한 병을 꺼내오십니다. “그.. 아.. 저.. ” 이렇게 말씀하시는 어르신과의 대화는 쉽지 않습니다. 그저 알아듣는 척. 이해하는 척 행동을 하면서 맞장구를 치는 실력이 저도 참 많이 늘었습니다. 지난 60년 넘게 잘 듣고 말하던 시절에 감사하면서, 반쪽짜리 대화에도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을 가져주시면 좋겠는데, 아마도 그런 감사의 판단을 하는 뇌의 중추 역시도 뇌졸중의 후유증으로 파괴 되었나봅니다.


 저의 장인어르신.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열심히 살아오신 지난 일평생의 날들이 있었지만, 이제는 집에서 그리 반가운 입장이 아니고, 대화는 되지않는 곤란한 입장이 되셨습니다. 그 비위를 맞추느라 장모님 역시 힘이 드십니다. 그나마 넉살좋은 사위인 제가 껴안아도 드리고, 반찬도 입에 넣어드리면서 지난 일생에 대한 훈장을 드리고는 있지만, 처연한 마음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어제였습니다. 장인어르신의 몸에 이상징후가 있어서 대학병원 진료를 예약을 해두었는데, 마음이 변하셨나 봅니다. 장인어르신께서 말씀하십니다.


“나.. 아.. 안... 가!”


 오전진료를 마치고 점심시간에 집에 들어가서 억지로 장인어른을 차에 싣고, 저도 잘 말씀드려서 진료실로 밀어넣어드렸습니다. 하루를 입원하고 방금 진료를 마치셨다고 하네요. 의사선생님 말씀이,

“ 혈관이 터지기 일보직전이었습니다. 스텐트를 추가로 몇 개 더 넣었구요. 안오셨으면 큰일날뻔 하셨습니다. ”

그렇게 하루가 지나갔습니다.

인생도처 유상수.


......


 장인어른이 계신 입원병동의 문을 열고 나서는데, 차가운 새벽공기가 얼굴을 때립니다. 치과로 출근 하려고 병원 입원실에서 씻지도 못하고 나왔습니다. 어제 장인어른이 혈관에 스텐트를 삽입하는 시술을 받으시고 회복중이시거든요. 6인실 입원실 베드 옆 간이의자에서 보호자는 누워서 자며 간병을 합니다. 하루는 장모님께서 간병을 하셨는데, 어딘지 오래전 저의 아버지를 제가 간병할 때 기억이 났습니다. 몇 주 간병을 하다보니 병실에 같이 있으면서 기운도 축 쳐지고 마음도 가라앉고 했던 시간들이 생각이 났어요. ‘병동의 병실은 정말 사람의 기운을 빨아들이는 것 같아.'


“장모님, 제가 장인어른 옆에서 잘테니 들어가 집에서 주무세요. 이러다 장모님도 병이 나십니다.”


 그러고는 어제 장인어른 침대 옆에서 쪽잠을 잤습니다. 자는 둥 마는 둥 하였지만, 그래도 젊은 내가 낫지.. 라는 생각에 새벽공기를 마시면서 출근을 하려고 병동에서 나왔습니다. 부지런히 새벽에 다니는 택시를 타니, 나이 지긋한 택시기사님이 물어보십니다.


“손님, 병원에 누가 계슈?”


“네. 장인어른이요.”

(제 스스로 어딘지 대견한 마음이 좀 섞여있었던 것 같아요.)


“음.. 그렇군요. 내가 맏사위에요. 내가 택시기사 하기 전, 직장에 다닐 때, 나의 장인어른도 병원에서 3개월 입원생활을 하시다가 돌아가셨죠. 내가 장인어른의 대소변을 다 받아냈어요. 맏사윈데 어쩔 수 있나. 사정이 그리 되었으니 그냥 제가 했어요. 처음엔 장인어른도 어색해서 허락을 하지 않으시더라구요. 하지만, 내가 장인어른 문병오시는 친구분들 밥도 계속 사드리고 하면서 결국 다 해냈지요. 그 때 밥값이며 병원비며 해서 몇달치 월급이 고스란히 날아갔어요.”


“.....”


인생도처유상수.


인생을 살아가다보면, 여기저기 도처에 나보다 훨씬 뛰어난 고수들을 만나게 된다.

 역시, 단 하룻밤 장인어른을 간병하고 푸석한 얼굴로 나서는 저의 모습이 부끄러워졌습니다. 새벽부터 택시를 운전하시는 기사님에게 차비를 몇배 더 드렸습니다. 아니 손님? 뭘 이렇게 더 주시는거에요?

 

 아직 내 삶에서 천 명 이상의 사람들에게 선한 일을 해야겠다는 버킷리스트의 소망을 이루려면 멀고 또 멀었습니다.


 다시 오늘의 오전진료를 봅니다. 틀니를 하시러 어떤 할아버님이 들어오십니다. 그래. 이분도 어떤 사연으로 우리 치과에 오셨을까. 아침에 진료비로 가족과 다투다가 오셨을까. 나이든 딸이 등을 떠밀어서 오셨을까. 수많은 사연과 함께 누추한 치과의 문을 열고 들어오시는 각각의 환자분들의 사연을 제가 다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 치과의사 참 쌀쌀맞더라‘하는 이야기를 듣지 않으려고, 어색하지만, 거울을 보면서 한 번 웃는 연습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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