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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관우 May 09. 2018

[ 택배. 반갑고도 미안한. ]

치과에서 울고 웃다.

택배기사님께 드릴 크리스마스카드를 준비했습니다.

“마, 다 그리 보냄미더. 놔 두이소.”

제게는 병마와 싸우는 누나가 있습니다. 사이좋은 누이동생 사이에 병마가 끼어 든 뒤로는 가끔, 하늘은 저에게만 노랗게 변합니다. 제 앞에 놓여진 잘 차려진 밥상을 대할 때마다 마음 한켠이 늘 시리고, 걸리고 하는 것은, 아마도 내 가족이 모두 안녕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겨울에서 봄으로 가는 듯한 제 인생에서 누나마저 건강하기를 바란다면 욕심일까요. 혼자맞는 봄은 그리 큰 감흥을 주지 못합니다.


 요즘, 김장철인가봅니다. 할머니 환자분들의 옷에서 젓갈냄새가 종종 납니다. 그럴때면 나의 어머니 몸에서 나던 김장철 젓갈냄새가 떠오릅니다. 만약에 아직 제 어머니께서 살아계시다면,


 “이번 김장에는 관우야, 젓갈을 그 집 것을 썼더니 맛이 좋더라. 너 굴 좋아하니까 굴도 좀 넣어주련? 요즘 배추값이 너무 싸다니 큰일이다. 농사짓는 분들도..”


하면서 김장을 하셨겠지요. 평생 나의 혀를 길들여온 내 어머니의 김치. 그 맛을 다시 만날 수는 없겠지요. 이제 어머님이 안계시니, 김장은 그저 남의 집 일이 되었습니다.


친한 동생의 전화가 옵니다.


 “행님, 제가 김치 좀 담갔습니다. 마늘도 까고, 양념도 치대고, 저희 어머니가 집에 와서 도우라네예. 일손이 모자라다고예. 사실, 저희 집 김치는예, 좀 맵고 맛이 없심미더. 근데, 우리집 김치는예, 청각을 넣어서 맛이 좀 달라예. 다들 좀 김치가 시고 나서 김치찌개 끓일때는 우리집 김치가 참 맛있다고 하더라고예. 제가 시내 나가는 길에, 김치 좀 들고가서 드릴께예.”


 까맣게 그 일을 잊고 진료를 하는데 직원이 부릅니다. 나가보니, 자그마하지만 영롱한 빛의 아이스박스 한 통이 대기실에 놓여 있습니다. 그 바쁜 동생이 급히 두고 갔네요. 끝없는 저의 욕심보다는 한없이 작은 아이스박스. 너무 반가웠습니다. 발끝으로 툭툭. 건드려보니 제법 묵직하네요. 반갑다. 김치야.

이 김치를 몸이 불편한 누나에게 보내야겠다.

 
 문득 아이스박스를 어머니가 내게 보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택배를 불렀습니 다. 생각해보니, 김치 국물이 흐르면 택배기사님께 피해가 클 것 같아, 김치를 꺼내 비닐봉지로 싸고 또 싸서 다섯겹으로 묶고 테잎을 붙입니다. 옮기려고 손으로 들어보니 아주 무겁네요. 아이스박스도 행여 깨질까 싶어 청테이프로 칭칭 감쌉니다. 이윽고 주차도 어려운 곳에 치과 앞에 차를 대고 허겁지겁 택배기사님이 올라오십니다. 달갑지 않은 물품인 김치를 보낸다는 말씀을 드리기가 어딘지 죄송스럽습니다.


“기사님, 김치 보내는 사람 저 말고도 있나요?”


“네, 있심미더. 요즘 김장철이자나예.”


“아.. 그럼 다행이네요. 저는 또 걱정했어요. 저만 보내서 폐를 끼치는 거 아닌가..해서요.”


가운 윗주머니에 손을 넣어보니 달랑 2천원이 있습니다. 머쓱하지만, 어디선가 택배 한 건 보내봐야 기사님 손에 쥐어지는 돈은 500원이라는 말이 생각납니다. 그래서 용기를 냅니다.


“기사님, 제가 2천원 더 드릴게요. 우린 엘리베이터도 없고, 또 무거운 김장김치이니까요.”


“네? 와이러심미꺼? 괜찮심미더, 마, 다 그리 보냄미더. 놔 두이소.”


“에이, 그러지 마시고요.”


“하.. 참.. 마, 다~ 그리 보낸다니까예. 뭐할라꼬 더 주심미꺼?”


 억지로 주머니에 넣어드리고 나니 마음이 좀 낫습니다. 내 마음 편하자고 드린 돈인데, 아마 이 욕심많은 속을 기사님은 모르실겁니다.


치과 스텝과 제가 함께 카드와 작은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제 마음 속에 담겨있는 바윗돌이 있습니다. 2008년, 제가 유무선 전화기를 인터넷으로 구입했습니다. 물건은 오지 않고, 제품은 발송이 되었고, 결국 택배기사님이 책임을 지게 되었습니다. 적지 않은 금액이라서 받고나서도, 8년이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죄송한 마음이 있습니다. 그 때 손해를 봤더라면 마음 속에 바윗돌이 없을텐데, 손해보기 싫은 마음이 문제였습니다. 택배기사님, 대신에 치료받으러 오시면 그만큼 제가 치료비를 덜 받을께요. 아프시면 꼭 오세요.. (하지만 아직 오지 않으시네요.)


 택배 한 건에 천원이 남는다고 해도, 15만원이 넘었던 그 제품을 배상하려면, 150군데의 집에 배달을 가야 만회가 되는 금액입니다. 500원이 남는다면 300군데가 되겠지요.


 엘리베이터가 없는 5층 빌라에 살면서 생수를 수십통 주문한 사람도 있다는 이야기가 있고, 그것이 소비자의 당연한 권리가 아니냐는 말도 있습니다. 매너없는 택배기사는 전화도 걸지 않고 아파트 경비실에 던져두고 그냥 내뺀다는 험담들도 있습니다. 자기물건처럼 소중하게 다루지 않아 속상하다는 소비자도 있습니다.


 택배기사님들이 택배회사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고, 12시까지 일하고 다시 새벽 6시에 분류를 하러 나가는 형편에, 소비자인 우리가 친절까지 요구하는 것은 좀 무리가 아닌가 싶습니다. 아파트 경비하시는 분과 택배기사님이 실갱이가 많으시다지만, 역시 ‘을’와 ‘을’끼리의 다툼일 뿐입니다.



택배기사님께 드릴 크리스마스용 와인이에요.
환자분께서 장보고 사오신 새우젓. 냄새가 날까봐 밖에 세워두셨습니다.

.......

마침 오후에 진료를 받으러 오신 할머니가 계십니다.


‘할머니, 오늘 시간이 좀 오래걸려요. 2시간정도요. 괜찮으세요?’


“아니.. 내가 얄궂은 새우젓을 좀 사와서.. 그게 상할까 걱정이야 원장님..”


“아.. 할머니 그거 제 원장실 냉장고에 넣었다가 가실 때 드릴께요. 새우젓이 저기 할머니 발밑에 가방에 있어요?”

“아니.. 냄새날까봐 치과 문 앞 계단 밖에 두고 들어왔어요. 걍 놔 둬요. 상하면 또 사지모.”

 

 아마도 김장을 담그시려고 장을 보셨나 봅니다. 계단을 두리번 거려보니, 할머니의 시장가방이 현수막 뒤에 다소곳이 서서 할머니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마도 치과에 젓갈냄새가 날까 미안스러우셨나 봅니다. 싱싱해보이는 새우젓을 꺼내 원장실 옆 냉장고에 넣으니 제 마음이 다 의기양양해지네요. 뭔가 슈퍼맨처럼 큰 일을 해낸 것 같았어요. 사실 큰 일 아닌가요. 할머니의 걱정을 덜어드렸으니..

.......


 와인을 즐기는 선배님이 가성비가 괜찮은 와인이 있다고 권합니다. 택배기사님이 이런 와인을 즐기실지는 모르지만, 그저 마음이라고 생각하고 크리스마스 선물로 드리려고 몇병을 구입합니다. 어색하지만 (조금은 강제로 ^^;) 직원이 감사의 마음이 담긴 카드를 하나씩 쓰고, 제가 감사하다고 인사를 드리면서 와인을 드리면 그래도 소비자에게 치이고, 추위에 치이시는 택배기사님의 마음이 조금은 데워지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핸드폰이 어디있더라..' 원장실 책상위를 더듬습니다.


문득 누나 생각이 나서 전화를 겁니다.


 “누나, 김치 택배 잘 받았어?”


 “응”


 “김치냉장고에 넣을 자리 있었어?”


 “응. 고마워. 나는 건강 때문에 못먹지만, 너희 매형 식사 차려줄때 좋아하니까...보내줘서 정말 고마워. 너희한테 자꾸 신세만 져서 어쩌냐..”


......


 퇴근하여 고단한 아내가, 역시 유치원에서 치이다가 돌아온 딸아이의 밥을 먹입니다.

제 딸아이는, 어른들이 맛있게 먹는 김치를 따라서 먹게되면, 자기도 어른이 되는 줄 아는가 봅니다. 딸아이가 용기내어 김치를 아주 조금 베어먹습니다. 맵다며 입을 하마처럼 쩌억 벌립니다.


'엄마, 아직은 안되겠어요.'


그걸보며 배시시 웃는 아내의 표정을 보며, '내 아내는 오래 살아야 할텐데..' 하는 생각을 합니다.

아내는 먼 훗날, 지친 딸아이의 마음이 쉬어갈, 소중한 친정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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