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나 아쿠아슈즈 있어요? 없으면 하나 사야할 것도 같은데요.. 아니면 오늘 신발가게 한번 돌아볼까요?”
그렇게 아쿠아슈우즈라는 '신문물'을 사기위해 동네 가게 유랑을 다녀보니, 가죽으로 된 것이 있네요. 아. 이건 안되요. 왜냐면, 물이 묻고 하니까 실내에서 신발에서 냄새가 너무많이 나더라구요. 그래서 이건 패스! 그리고는 또 돌아보는거죠. 이 기회에 아쿠아슈우즈라는 것도 구경해 볼 겸! 아.. 보다보니 이거 마음에 드네요. 이 가게의 이 아쿠아슈우즈. 어딘지 좋아보여요. 가죽도 없고, 그런데.. 값이 너무 비싸네요. 거의 10만원 돈이니.. 그냥 갑시다. 아쿠아슈우즈 치고는 너무 비싸네요. 신발은 다음번에 생각하기로 하구요. 집에 크록스 슬리퍼가 하나 있으니 그거 그냥 신으면 되지요. 아.. 그런데 아빠끼리 달리기도 해야하고 하니 벗겨져서 안될라나? 몇 번 신지도 않을 아쿠아슈즈를 사고 싶기도, 아깝기도 해서 주저주저 결정장애에 시달리다가 까맣게 그 일을 잊어버렸습니다.
그렇게 그냥저냥 지내다가 딸아이가 손꼽아 기다리던 부자캠프 날이 되었습니다.
‘여보, 나 아쿠아슈우즈 없지요? 어쩌지..?’
아내의 표정이 갑자기 밝아지네요. 항상 물건을 어디에 두고 못찾는 제 습성을 알기때문에, 이번에도 역시 거보라는듯이 말을 하네요.
“아이구, 그 정신머리.. 제가 다 찾아 놓았어요. 몇년 전에 사오신 샌들 있잖아요. 그거 찾았어요. 저어기 신발장 구석에 있는거 제가 찾았지요. 그거 신고 즐겁게 딸아이랑 놀다가 오세요. 잘 다녀오세요!”
“아! 역시! 그게 있었지! 그거 참 발에 잘 맞아 좋았는데! 역시 잘 찾았네요. 잘 신고 다녀올게요!”
역시 나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아내느님. 감사합니다! 아쿠아슈즈 따위, 이렇게 해결할 수 있는거지모! 그러고는 출발했습니다.
아빠들끼리의, 남자들끼리의 아침부터 운동복입은 첫 만남이란 참으로 어색합니다. 서로 말도 잘 못걸고, 말도 한마디 없습니다. 원래 수컷들이란 이렇게 서로 만나면 본능적으로 경계하는 습성이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여성호르몬이 이제 점점 더 분출되기 시작하는 주제에 으르렁대는 습성이라니, 역시 서먹서먹한 아빠들이네요. 말 수 적은 경상도 아자씨들을 상대로 제가 먼저 인사하고 분위기를 좀 풀어봐야겠어요..
아. 그리고 샌들. 그것은 오랜만에 옛 친구를 만난 것처럼, 새로 찾은 샌들이 발에 착 감기는 기분이 좋습니다. 냄새도 안나고 헐겁지도 않네요. 역시! 그 때 잘 샀어! 뛰어보자! 딸아이와 잔디밭 위에 운동장에서 여름 땡볕을 받아가며 아빠가 매트리스 들고 딸아이 태우고 이어달리기 등 많은 운동과 놀이 순서가 있었습니다. 관절은 좀 무리가 있었지만, 마치 젊은 척 있는 힘껏 뛰었어요. 우리조가 1등을 할 만큼! 그런데 뛰다보니 나의 샌들 밑창느낌이 좀 이상합니다. 인조잔디의 잔디가 발바닥에 그대로 뾰족뾰족 느껴지네요. 좀 그냥 걷기에도 뭔가 어려워진 것 같아요. 신발바닥을 살펴보니 샌들바닥이 부스러져 나가고 있었습니다. 딸아이가 나의 뒤를 걸어오면서 무언가를 계속 손에 주우며 말하네요.
“아빠, 아빠? 아빠 신발에서요. 토끼똥이 계속 나와요! 계속! 이거봐요! 얘들아! 이리와봐! 우리 아빠 신발에서 토끼똥이 나온다!”
아.. 생전 처음보는 학부형 아저씨들 앞에서 남자끼리 안그래도 서먹한데 오랜만에 창피한 기분이 좀 들었습니다. (제 병원 옆의 나이많으신 원로 치과 원장님들은 내가 복장이 자유분방한 것만 보아도 근엄하게 한마디씩 하셨는데, 지금 그 분이 옆에 계시지 않는게 다행이네요.) 이제 빨리 뛸수도 없고, 어딘지 걷는 것이 어기적 거리면서 뒤뚱뒤뚱 하네요.
다리를 다친 척, 어기적 어기적 걷다가.. (안그러면 바닥이 완전히 분리될 것 같았어요.) 드디어 해가 뉘엇뉘엇 질 무렵, 마지막 팀별 게임이 시작되었습니다. 사회자가 마이크를 잡고 말합니다.
“이제 가장 점수가 높은 마지막 게임입니다! 1조, 2조,.. 5조까지 모두 아빠들이 8명씩 있으시죠? 각 조가 나란히 동그랗게 서시구요, 제가 숫자를 부르면, 그 숫자만큼 아빠들이 누워서 다리를 드시는 겁니다. 알겠죠? 신발을 높이! 두다리를 드시는 분은 누워서 드세요!”
“나 : (흐음.. 이건 좀... 털썩!)”
이렇게 터져버린 샌들을 신고 있는 것도 곤혹스러운데, 이것을 누워서 높이 드는 게임이라니! 참으로 이제는 나이도 먹고 뻔뻔해진 저였지만 차마 다리를 들 수 없었습니다. (저와 같은 조원 아빠들.. 미안합니다. 엉엉~. 다리를 들지 못한 건 제가 숫자를 몰라서가 아니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