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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관우 May 09. 2018

[돌아가신 어머님께 드리는 편지 ]


 어머니. 늦은 가을입니다. 벌써 이 세상을 떠나신 지가 10년여가 되어가네요. 돌아가시고, 한 3년간은 계속 꿈에 나오시더니, 요즘은 꿈속에서나마 자주 뵙기가 어렵네요. 세상에 두고가신 우리 형제들은, 만나면 누구 꿈에 어머니가 더 많이나오는지 서로 시샘도 하고, 부러워도 하면서 어머니를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특히나 욕심이 많은 형님은, ‘야.. 왜 너 꿈에 더 많이 나오지? 내가 뭐 살아계실 때 섭섭하게 해드린게 있나?’ 하는 말까지하며, 그런 형을 누나와 나는 다독거려가며, 어머니 이야기를 나누곤 합니다.

 형의 아들들은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습니다. 걱정하시던 누나도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딸을 낳아 잘 키우고 있습니다. 조카들끼리도 우애있게 잘 지냅니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전, 당부하신 말씀이 생각나네요. "죽는 날까지 형제간에 우애가 있어야만 한다" ... 무엇보다, 맏며느리로 한 평생을 일만 많고, 잘하네 못하네 평가만 받으며사시느라 고생하신 어머니께서 잘 아실테지만, 장남인 형과 형수가 큰 어른 위치인지라, 가장 고생이 많습니다. 보고 자란 그런 문화 덕에, 저는 어떤 상황에서도 큰집을 비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유없이 씌워진 맏며느리와 장남이라는 감투를 안쓰러워 할 따름입니다.  

 어머니, 제 아이들을 못보고 돌아가셨지요? 
자식을 키워보니, 부모님 마음을 알게되고, 
사람을 치료해 보니, 의사의 마음을 알겠습니다. 
수모를 당해보니, 힘없는 사람들의 마음을 알겠고, 
원장이라는 완장을 차 보니, 이쑤시개만한 권력이라도 놓지않으려고 발버둥치는 사람들의 마음도 조금 알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러운 욕망은 씻어내고, 내가 경험한 불행과 고난이 결코 의미없는 불평거리가 아니라, 좀 더 스스로를 성찰할 수 있는 거름이 되도록 매일 되새기려 애쓰고 있습니다.

 올해 초에 왼쪽 아래 갈비뼈에 금이 갔었습니다. 심한 통증에 시달려보니, 환자의 마음또한 알겠습니다. 다행히 나을 수 있는 병이었으니, 깨달음을 주는 고마운 통증입니다. 유별난 성격에, 불편하였지만 진통제 없이 통증을 한달간 느껴보았습니다. 아직은 회복이 잘 되는 내 몸에 스스로 감사하고 있습니다. 말기암의 3년넘는 투병을 어머니는 어찌 겪으셨는지요. 그 당시 제가 모시고 살면서, 끔찍한 얼굴의 변화에, 통증으로 가득한 몸에서 차라리 빨리 나오시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도 많이 했었습니다. 제가 열달동안 그 안에서 잉태되었던 몸인데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어쨌든, 이번에 저도 좋은 공부를 하였지요. 늘 저에게 치과진료는 아프다고 짜증을 내던 환자분들 심정을, 저의 통증을 통해서 어렵사리 알았는데, 부디 제가 이것을 훗날에도 잊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이렇게 편지를 쓰게 된 이유는 어머니께서 반가워 할 이야기가 있어서 입니다. 40년 전, 이웃에 살던 혜정이네와, 윤정이 누나의 전화 때문입니다.

 연락이 온 이유는 윤정이 누나네 가족이 예전부터 어머니를 찾았는데, 이제 겨우 인터넷으로 연락처를 알게되어 연락하였다고 합니다. 40년 전에 서울의 우리 아랫집에서 살면서 장사를 하시고, 우리집이 이사를 가면 따라서 같이 우리 아랫집으로 이사를 올 정도로 관계가 좋았는데, 그것이 어머니 아버지께서 늘 신경 써 주시고, 여러모로 생활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셔서 그런 것이었다고 윤정이누나가 40년만에 전화를 치과로 해서 제게 말씀하시더군요.

 "관우 너가 기억이 안난다면, 내가 칠순이 넘은 우리 어머니를 모시고 너가 사는 곳에 가서 한 번 지난 너희 부모님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네게 전해드려야겠다. 얼마전 칠순잔치에서도 우리 엄마가 친척들 모두에게 너희 부모님께 감사한다는 말씀을 하셨단다. 우리 친척들도 40년 전부터 너희 부모님 고마운 이야기를 다 알거든. 그 때 신세도 참 많이졌지.."

 수십년만의 받는 감사 전화란 참으로 감격스럽고, 그것이 제가 아닌 부모님에 대한 것이라고 하니, 한편 흐뭇하기까지 합니다.

 어머니 돌아가시고 남겨진 동영상이 하나도 없어서,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동영상을 좀 찍어두었는데, 잠시라도 켜면 눈물이 나서 도대체 틀어 볼 수가 없습니다. 살아계신 듯 생생하여, 어쩔땐 무서울때도 있습니다.

어머니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이메일도 제게 보내시고, 인터넷에 어머니가 주부님들이 모이는 까페에도 가입하여 글도 남기시고 하셨었죠? 돌아가시고 일년 정도는 남아있는 그 글들을 하나씩 찾아보며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었는지요.. 병원에 오시는 환자분들 중에, 챠트 생년월일이 어머니와 비슷한 분을 뵐 때면, 때론 반갑고, 때로는 먼저가신 어머니 생각에 억울하여 말문이 막혀 진료를 멈추고 멍하니 있을 때도 있습니다. 한번은, 어떤 분이 치과진료의자에 앉은 뒷모습이 어머니와 너무 닮아 숨이 막혔습니다.

 어머니가 안계시니, 어머니 소식을 전해주는 이가 어머니만큼이나 반갑습니다. 이 이야기를 장모님께 말씀드리니, 전화를 40년만에 주신 분도 참 감사하신 분이다.. 하시네요. 밤에 자려고 누워서, 나는 어릴때부터 받은 은혜들을 하나 둘 잘 갚아가며 살고 있는가..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저승에서 어머니께서 제 소망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도와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또 40년 후에, 우리 자식들에게 이렇게 고맙다고 전화라도 한 통온다면, 그것이 금덩어리를 주는 것보다 좋은일이 아니겠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거울을 보면 제 반쪽 몸은 어머니고, 또 반쪽 몸은 아버지입니다. 그렇게 반씩 섞여서 제가 되었겠죠. 제 딸아이는 어머니가 환생하신 것으로 생각하고, 아들놈은 아버지가 다시 태어난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나름대로 열심히 키우고 있습니다. 어머니 숨이 완전히 멈추시고 나서도 한참동안 온 가족이 어머니 귀에 대고, 한명씩 "어머니, 사랑해요. 좋은 곳으로 가세요" 를 소리쳤는데, 잘 들리셨나 모르겠습니다. 오늘 밤에도 잠들기 전에, 두 손을 모아 부모님 저 세상에서 평안 하시라는 기도를 드리고 잠 겠습니다. 

평안하세요. 여기는 비가 옵니다. 

좋은 곳에서 편히 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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