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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현 Oct 25. 2022

사과하며 사는 삶

어른의 태도

1. 어제 카페에 갔다가 커피를 받아 놓고 잠깐 화장실에  사이에 커피가 엎어져 내가 앉은 자리 옆에 놓아  새로  가방과 아끼는 자켓이 커피에 젖게 되었다.


2. 화장실에 갔다 와 보니 직원분이 자리를 치우고 계셨고, 상황 설명을 듣고 커피가 묻은 가방을 내가 닦으며 가방에 커피가 많이 묻어 오염이 심해 사고를 내신 분께 세탁비를 요청 드렸다.


3. 그 분은 미안하다는 사과 한마디 없이 알겠다고 했고(적어도 내 기억엔), 영수증 처리를 해달라고 했다. 나는 알겠다고 했고 자리에 돌아와 속상한 마음을 가방을 닦으며 달래고 있었다.


4. 그런데 몇 분 후 그 분이 나에게 다가 와 "영수증 처리 가방만 확실하게 해서 보내주셔야 되요." 라고 다시 한번 사과 한 마디 없이 본인 말만 하고 가는거다.


5. 나는 그 분의 그 태도가 어이가 없어서 바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그 사람한테 가서 가방 위에 청자켓을 올려두었는데 청자켓도 같이 세탁해주셔야 겠다고 말했다. 사실 청자켓도 커피에 묻은 건 알고 있었지만 내가 처리를 하려고 했던 부분이다. 그런데 그 분의 따지는 듯한 그 태도에 화가 나서 청자켓과 가방 모두의 세탁비를 요청한 것이다.


6. 그러자 그 분이 흥분을 하며, 청자켓도 묻은게 확실하냐며 나에게 확인요청을 했다. 내 자리 바로 위 cctv를 보시거나 청자켓의 냄새를 맡아보시거나 입어보시라고했다. 어두운 색상의 청자켓이라 커피 흔적을 직접적으로 입증할 수 없으니 cctv를 보면 될 것 같다고 했다. 무엇보다 나는 가방 위에 청자켓을 올려둔 게 확실한데 가방만 젖었다고 하시는 그 분의 태도가 이해가지 않았다. 당연히 cctv를 보면 모든 게 확실할거라 생각했다.


7. 그러자 그 분과 그 분 일행의 태도가 바뀌며 가방도 젖은 게 맞느냐며 그리고 쟁반을 그렇게 두고 간 나에게도 일정 정도의 책임이 있는 거 아니냐며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하시기 시작했다.


8. 나는 너무 어이가 없었고, 가방이 묻은 걸 만져보시라고 가방이 있는 곳에 접근하자 그 일행분이 "그렇게 다가 오시지 마세요. 위협적이에요" 그러시더라. 갑자기 내가 "위협을 가하는 자"가 되었고 그 사고를 친 분과 일행은 "위협을 받는 자"라는 역프레임을 걸고 있었다.


9. 나는 이 모든 상황이 도저히 내 상식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커피를 엎지르는 일은 실수로 발생했고, 그러면 그 부분에 대해서 사과와 함께 "책임"을 지는 태도만 보여주면 더 이상 일이 커질 것도 아닌데 그 분들의 그 무책임한 모습은 이게 과연 성인들의 모습인가 싶었다.


10. 어제 일이 있고 나서 오늘 오전에 그 분과 통화를 하는데 그 분은 그 분의 쟁반을 두고 간 나의 책임이라는 부분과 내가 위협을 가했다는 역프레임에 대한 사과를 하기 보다는 사고 자체만을 사과했다. 내가 화가 났던 건 그 이후에 보여 준 당신들의 태도이며, 그것때문에 왜 내가 화가 났는지의 맥락을 아주 자세하게 설명했다.


11. 그 분은 끝까지 그 부분은 나에게도 책임이 있기에 사과할 수 없다며, 또 다시 나를 진흙탕 속으로 끌고 가려고 시도했다. 나는 그 시도를 칼같이 끊으며, 아니 왜 사고를 본인이 내놓고 그리고 뒤이어 보여준 당신들의 태도와 무례함에 대한 사과보다는 그 무례함이 나에게도 책임이 있느냐고 하시냐, 이건 교통 사고로 치면 책임이 본인에게 백프로의 과실 비율이 있는 것이다. 그러면 사고 피해자 입장에서는 사고를 낸 사람에게 화가 날 수도 있는 거 아니냐. 그리고 사고에 대한 책임과 사과만을 지면 되지 왜 계속해서 피해를 입은 사람에게도 책임을 물으려고 하시냐고 하자 그 분이 잠깐 입을 다물더니 그 부분도 죄송하다고 마지못해 하시더라.


12. 나는 이 일련의 사건을 경험하며 우리가 얼마나 자신의 감정에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는지를 돌아보았다. 자신이 느끼는 죄책감과 미안함을 상대에게 투사하며 상대를 잘못한 사람으로 만들며 감정을 배설하는 일이 우리 주위엔 얼마나 많은가. 자신의 감정에 정직하고, 그것을 수용하는 일 우리는 그것을 어른의 태도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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