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구치 슈, 구스노키 겐 <일을 잘한다는 것>
인상 깊게 읽은 일화가 있다. 사과하는 승무원에 관한 이야기이다.
저는 비행기를 타고 자비로 출장을 가야 할 때에는 대개 이코노미석을 이용합니다. 이코노미석에는 주로 두 가지 기내식 선택지가 주어집니다. 카레라이스나 치킨 덮밥, 이런 식이죠.
식사 시간이 시작되면 승무원이 앞쪽 좌석 손님들부터 순서대로 주문을 받습니다. 저는 뒤쪽에 앉아 제 차례가 되면 카레라이스를 주문하겠다고 마음을 정하고 순서가 되기를 기다렸죠.
그런데 몇 줄 앞에서 카레라이스가 동이 나고 말았습니다.
“카레라이스는 이제 없나요?” 하고 묻자 승무원은 “정말 죄송합니다, 손님“이라고 말하며 너무나도 미안해하는 표정과 어조로 사과를 하더군요. 사과하는 기술이 뛰어난 승무원이었습니다. 저는 ”아뇨, 치킨 덮밥도 괜찮습니다 “라고 말하고 얼른 식사 트레이를 받았습니다.
무슨 생각이 드는가?
프로 승무원이다. 저 항공사는 좋은 직원을 두었구나. 이런 인상을 받은 상태로, 글을 더 읽어 내려갔다.
그러고 몇 개월 후, 출장을 가느라 같은 노선의 비행기 이코노미석을 또 이용할 일이 있었습니다. 여느 때처럼 카레라이스와 치킨 덮밥 중에 선택해야 했죠. 그리고 또다시 제 차례가 오기 직전에 카레라이스는 품절 돼버렸습니다.
승무원은 몇 개월 전과 토씨 하나 다르지 않게 ‘프로의 사과’를 합니다. 저 또한 “치킨도 괜찮아요” 하고 트레이를 받았지만, 이번에는 의아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과연 사과의 기술이 이처럼 뛰어난 승무원은 지금까지 똑같은 일로 몇 백 명의 손님들에게 몇 백 번이나 머리를 숙여왔을까요? 사과를 되풀이할 때마다 사과하는 기술이 갈고 닦인 게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승무원은 왜 이 같은 품절 상황을 반복하는 걸까요? 사과하는 기술을 연마하기 전에 사과할 일을 없앨 수는 없었을까요? 왜 좀 더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지 않고 상황에 대응하는 사과의 기술만을 능숙하게 사용하는 걸까요?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기술을 숙련하는 것은 분명히 가치가 있다. 하지만 무엇을 위해 그 기술이 필요한지, 어떤 성과와 결과로 연결되는지를 잊는다면?
일본 최고의 경쟁전략 전문가로 소개되는 구스노키 겐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그러나 목적을 잊고
기술 단련에만 집중하는 경우가 많죠.
기술이 향상되면 성취감이 있으니
그날의 불안이 해소되는 겁니다.
대학의 학점, 회사의 KPI(Key Performance Index), 학계에서 사용하는 벤치마크들, SWOT과 같은 분석 체계, 각종 인증 시험 점수들, 프로그래밍 능력.
모두 사과하는 기술에 해당하는 것들이다. 요리로 따지면 재료들이다.에이슬립의 박세헌 COO님께서 HR전문가로 활동하시던 시절, 조언을 구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전하셨던 한 마디가 떠오른다.
온갖 최상급 재료를 모으는 것보다도
내가 어떤 요리를 만들 것인지가
진짜 핵심이거든요.
어떤 요리를 만들지는 모르겠는데, 괜히 불안하니 일단 좋은 재료들부터 모으고 보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진짜 중요한 문제와 대면하는 것을 피하고, 하찮은 부분을 파고들어 숨는 것이다.
불안할수록 지표에 속기 쉽다.
불안할수록, 눈을 부릅뜨고 내 손 위에 놓인 나침반을 자꾸 살펴봐야만 한다. 진짜 본질과 마주해야 한다.
누군가는 왜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물을 수도 있겠다. 그냥 나에게 맡겨진 일과 그 성과를 측정하는 지표에 최적화된 기술만 연마하며 편하게 살면 안 되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당연히 상관없다. 오히려 누군가에겐 그런 사람들이 더 필요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한 ‘부분’에 최적화되어있다는 말은 곧 다른 곳에서는 무용하다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세상이 변하고 시장이 변하는데, 좁디좁은 구석에 단단히 닻을 내려놓고는 그곳이 마르지 않는 샘이 될 거라 기대하지만 않는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저자가 승무원 일화를 마무리하며 남긴 코멘트와 함께 글을 마무리하겠다.
실무자인 승무원은 임기응변의 기술만 능숙하게 쌓고 있는 것이죠. 물론 실무자에게 일이란 부분으로서 최적화한 업무를 수행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일부분의 업무에 최적화한 기술을 쌓고 발휘하려고 하는 것이고요.
하지만 전체를 아울러 통합하는 능력, 총체적으로 문제를 조망하는 능력이 없다면 일을 제대로 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