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 없는 선택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조수용 X 나발 라비칸트

by 김우혁

누구는 충분히 고민한 다음 신중하게 선택하라고 하고, 누구는 일단 정해놓고 나중에 천천히 생각해도 늦지 않는다고 한다. 대체 뭐가 맞는 걸까?


실리콘 밸리의 현자 나발 라비칸트(BZCF | 생각 좀 하면서 살자)와 매거진 B의 조수용 발행인(최성운의 사고실험 | 매거진 B 조수용 2부)이 '선택'이라는 문제를 두고 뭐라고 입을 모으는지 살펴보자.


(naval)
겉보기엔 좋은데 껍데기인 것들이 있고, 얻는 순간부터 새로운 문제를 일으키는 것들도 있죠.

(interviewer)
그래서 조심하지 않으면, 본인도 모르게 이상한 곳에 도달하게 되는 것 같아요. 원하지도 않았고, 가려고 한 적도 없는 삶의 위치에 도달해 있죠.

(naval)
생각을 하지 않고 살아가면 그렇게 되지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을 하지 못하며 살아가는 이유는 사회적인 기대나 남들의 시선을 바탕으로 살아가기 때문이에요. 혹은 죄책감이라든가, 아니면 모방 욕망(mimetic desire) 때문일 수도 있어요. 피터 틸이 르네 지라르(Rene Girard) 이론을 인용하면서 얘기했던 그 개념이죠.

우리가 원하는 것조차 사실은 남들로부터 배워 온 거라는 거예요. 사회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들이 그런 욕망을 내재화시키는 거죠. 예를 들면 '로스쿨 가야지', '의대 가야지', 'MBA 가야지' 같은 거요. 혹은 친구들이 하는 걸 보고 무작정 따라 하는 경우도 있고요. 어쩌면 부모님의 기대 때문일 수도 있어요. 사회의 목소리가 우리 머릿속에 속삭이는 거예요.

사회적으로 프로그래밍된 거죠.

그렇다. 우리는 사회적 프로그래밍에 무척이나 취약한 동물이다. 오늘날처럼 의사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은 시기는 인류 역사상 유례가 없을 것이다. 더욱 유례없는 것은 그들 모두 의사가 적성에 맞을 거라고 굳게 믿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의대 쏠림 현상을 보고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저건 사회적으로 프로그래밍된 거야.' 그러면서 경영 컨설턴트나 기술 창업가를 꿈꾸는 자신은 사회적 프로그래밍에서 자유롭다고 자신하고는 한다. 아니다. 우리 중 그 누구도 사회적 프로그래밍에서 완벽하게 자유롭지는 못할 것이다.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 학계는 자유롭지 않을까? 아니다. 뤼트허르 브레흐만의 저서 <휴먼카인드>에 그 예시를 볼 수 있다.

또한 우울한 책인 <이기적 유전자>는? 이것은 <뉴욕>이라는 잡지에서 자기 중심주의시대(me decade)로 칭송되던 1970년대의 사고방식과 맞아떨어진다. 1990년 후반 리처드 도킨스의 열렬한 팬이 도킨스의 아이디어에 대한 자신의 해석을 실천에 옮기기로 결정했다. 이 책은 CEO 제프리 스킬링(Jeffrey Skilling)에게 거대 에너지 기업인 엔론(Enron) 전체를 탐욕의 메커니즘으로 운영하도록 영감을 주었다.

... (중략)

리처드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 후속판에서 인간의 천성이 이기적이라는 기존의 주장을 수정했으며, 그 이론은 생물학자들 사이에서 신뢰를 잃었다.
1959년 인류학자 엘리자베스 토머스는 오늘날까지 칼라하리사막에 살고 있는 !쿵족에 관한 <The Harmless People>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이 책에 담긴 메시지는 1960년대의 시대정신과 일치했다.

인류학에 새로운 세대의 좌파 과학자들이 등장해 우리의 조상을 루소(장 자크 루소)적인 모습으로 치장하기를 간절히 바라던 시대 말이다. 그들은 과거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살았는지 알고 싶다면 오늘날까지 여전히 수렵과 채집을 하는 유목민들을 자세히 관찰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사회적 프로그래밍이 이처럼 강력한데, 우리는 어떡해야 할까? 라비칸트는 'going on autopilot'이라는 표현을 썼다. 그로부터 완전히 벗어나라는 것이 아니다. 자율주행차에 탄 것처럼 '아무런 생각 없이' 시대의 흐름에 몸을 맡기지 말라는 것이다. 생각이 있어야 한다.

(naval)
그런데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가장 좋은 인생의 결과는 스스로 깊이 생각해서 내린 결정에서 나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 '결정'에 거의 시간을 안 써요.

(... 중략)

인생에서 얻는 많은 깨달음은 본인이 선택한 길에 따라 결정돼요. 어떤 길을 선택했느냐가 다음에 어떤 걸 만나게 될지 좌우하죠. 한 번 방향을 정했다면, 그 방향이 아주 멀리까지 영향을 미쳐요. 사람들은 어떤 도시에 살지 깊이 고민하지 않고 쉽게 결정하는데요. 결국 본인의 인간관계, 직업, 기회, 날씨, 음식, 공기의 질이나 삶의 질가지 좌우하게 돼요. 정말 중요한 결정인데도, 사람들은 결정을 고민하는 데 거의 시간을 쓰지 않죠. 만약 4년짜리 결정을 하려면, 1년은 고민하세요. 정말 깊이 있게 말이죠.

결정이 영향을 미치는 시간의 최소 25%는 결정을 고민하는 데 할애하라. 그러면 신중하게 고민하고 결정하라는 말이 결국 맞았던 걸까? 라비칸트가 이야기하는 핵심은 그것이 아니다. 그가 이야기하는 '고민'이란 책상 앞에 앉아 온갖 정보를 캐내며 저울질하는 것이 아니다.


(naval)
연애에도 적용이 되는 이론이고, 직업이나 커리어에도 적용돼요. 사실 거의 모든 선택에 해당됩니다. 그리고 이 이론에서 중요한 건 시간이 아니라 횟수예요. 몇 번 시도했는지가 핵심입니다. 몇 번을 시도했는가? 몇 명의 후보를 만났는가? 이게 핵심이죠. 그래서 빠르게 많이 시도해야 해요.

(interviewer)
빠르게 판단하고, 안 되겠다 싶으면 바로 바꿀 수 있어야 하군요. 기회가 왔을 땐 빠르게 잡고, 아니다 싶으면 빨리 바꾸는 것이요.

(naval)
정확해요. 실패한 연애를 돌아봤을 때, 사람들이 가장 많이 후회하는 것은 끝난 걸 알면서도 계속 사귀었던 시간일 거예요.

(interviewer)
맞아요. 이미 끝났다고 느꼈다면 헤어져야죠.

(naval)
그 순간에 헤어지는 것이 더 나았을 겁니다. 이런 점에서 보면, 말콤 글래드웰이 '10,000 시간의 법칙'을 대중화시켰는데요. 1만 번의 '단순 반복(repetition)'이 아니라 1만 번의 '반복 수정(iteration)'이 진짜 중요해요. 정확히 1만 번이 아닐 수도 있겠죠. 핵심은 얼마나 많이 반복했느냐가 성장 곡선을 만든다는 겁니다. 여기서 반복은 단순 반복과는 다릅니다. 단순 반복은 같은 걸 계속 똑같이 하는 것이죠. 반복은 빠르게 하고, 배우고, 수정해서 다음 버전을 다시 시도하는 거예요. 피드백과 수정이 포함된 것이죠. 1만 번의 오류 수정이 쌓이면,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될 수 있어요.

해 보고, 수정하고. 해 보고, 수정하고.

이것을 아주 오랫동안 반복하면서 사회적 프로그래밍의 손이 닿지 않는 영역을 알아가는 것. 그것이 라비칸트가 이야기하는 고민이다. 일단 무조건 들이받아보고 생각하라는 조언은 아마 이런 맥락에서 파생되지 않았을까. 그리고 여기서 또 하나의 핵심이 등장한다. 끝난 것을 알았을 때 바로 헤어질 줄 아는 것. 바로 '매몰비용'을 과감히 무시할 수 있는 판단력이다. 그것이 현명한 선택의 핵심이라고, 조수용이 이야기한다.

(조수용)
세상에 아이디어가 부족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디어는 늘 넘쳐나고, 많은 아이디어 중에서 옥석을 가리는 게 중요한 일이고, 옥석을 가렸으면 그 가려진 아이디어로 계속 진행하는 게 관건인데 옥석을 가리는 행위와 계속 지속하는 일에 대해서는 평가절하하고 자꾸 아이디어만 조명해 버릇하니까 앞의 일들이 오히려 인정을 못 받는 것 같아요. (... 중략)

그 아이디어들 중에서 무언가를 골라내는 것은 다른 것들을 안 고른다는 의미와 같아요. 하나를 선택한다는 건, 나머지 선택지들을 지운다는 건데 그건 엄청난 용기거든요. 생각보다 많은 경우에 선택을 해 놓고 미련이 남아서 선택에서 떨어진 걸 부여잡고 있는 경우가 많거든요. 뭘 골랐든 하나로 밀었으면 괜찮을 수 있는데, 하나를 집어 들었는데 마음이 불편해서 다른 것들도 좀 합치려고 하는 경우. 그래서 결과가 안 좋은 경우가 더 많거든요.

무언가를 선택하지 않으려면 굉장한 용기가 필요한데, 그 용기를 가지기 위해서는 훨씬 더 근본적인 나의 확신이 필요해요. 도대체 내가 뭘 하고 있는 건가. 하려고 하는 일에 이게 정말 필요한가 필요가 없나. 엄청 단순한 질문에 내가 답을 할 수 있을 정도의 확신이 있지 않으면 못 버리거든요. 불안해서. 못 버린다는 얘기는 선택하지 못한다는 얘기고, 그럼 다 짬뽕시킨다는 얘기고, 짬뽕시킨다는 얘기는 그냥 아이디어가 막 구겨졌다는 얘기잖아요. 그러니까 그건 아무것도 아닌 거죠.

(최성운)
그러니까 그만큼 매거진 B도 어쩌면 좀 다른 아이디어였더라도 오래 했다면 잘 됐을 수도 있는 거네요?

(조수용)
그렇죠, 그 당시에는 대단해 보이지 않아도 계속하면 뭐라도 되어있기 마련이고. 그렇게까지 버티려면 본질적으로 내 생각이 아니면 안 되는 거죠. 내 생각으로 출발해야만 되고, 내 생각으로 출발해야만 버틸 수 있고, 버텨야지 구현이 되는 거니까요. 그러니까 남의 얘기 듣고 무언가를 하면 안 되는 거죠.


라비칸트와 똑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지는가? 뭘 골랐든 하나로 밀었으면 괜찮을 수 있었는데, 다른 것들을 애매하게 한꺼번에 챙기려고 하는 우유부단함이 실패의 진정한 원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잘 버리는 데 필요한 과감함과 꾸준함은 결국 자신의 확신에서부터 온다고 했다. 이 확신, 과감함이 바로 라비칸트의 'iteration'에서 오는 게 아닐까.


결국 연결되어 있다. 요약하자면, 일단 실험적인 반복 수정을 통해 내 관점에 확신을 갖자. 그 확신에 따라 확실하게 선택하자. 즉 확실하게 덜어내자. 덜어내고 나서는 다시 반복 수정에 들어간다. 또 다음 단계를 위한 확실한 선택을 한다. 다시 반복한다. 이걸 오래 하면, 시간의 복리에 힘입어 사회적 프로그램이라는 물살 속 우뚝 서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선택이 중요한 게 아니라 과정이 중요하다고 하는 사람들도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선택 하나만 놓고 보면 결과가 좋지 않을 수 있지만, 그로부터 배움을 얻고 계속해서 더 나은 선택을 하는 과정이 수반되면 좋은 결과가 생길 수밖에 없으니까.


다 똑같은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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