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 'CC에서 아이비리그로'
(Warnings: My words written here are always subjective; thus information may not be based on fact - if they're incorrectly articulated, please let me know by sending an email.)
저번에 얘기한 응급실 건의 영향으로 중간고사를 시원하게 말아먹었다. 응급실 간 날이 화요일 밤이었다. 의사의 권고대로 수요일 하루 종일 쉬었는데 도저히 당일 시험 보러 갈 체력도 컨디션도 아니었다. 어쨌든 그렇게 찝찝한 마음으로 시험을 망치고 돌아오는 다음 주 월요일 교수님을 찾아뵙고 사정을 설명하였다. 특별한 경우가 발생하면 (특히 의료 관련 시) 진단서 or 청구서같은 medical record 혹은 GP의 사인이 담긴 증명서를 발급하여 교수님께 제출하면서 재시험과 같은 요구 사항을 말하면 된다.
나 또한 관련 서류를 들고 교수님께 재시험을 요청드렸다. 교수님은 안된다고 하시면서 기말로 대체하겠다고 하였다. 네???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얄짤없었다. 이걸 좋아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교수님의 말은 학기 초에 관련 사항에 대하여 이미 실러버스(강의 요강)에 설명하였으니 그대로 처리하겠다는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실러버스를 다시 살펴보니 그렇게 언급을 해놓았다. 나의 실수(?)였다.
생각을 해보면 아팠던 게 나의 실수였나 싶기는 한데, 이미 지난 걸 어쩌나. 여러분들은 반드시 실러버스(강의 요강)를 꼼꼼히 살펴보고 수강신청을 하길 바란다. 성적 매기는 방법, 출석체크, 에세이 점수, 토론 점수, 특별상황시 제출해야 되거나 취해야 할 행동들. 교수님들마다 천차만별이다. 내가 들은 과목 중에서 제일 쿨했던 수업은 중간 30% 기말 40% PS (Problem Set) 30%이었다. 이 정도로 간단한 수업은 없다고 생각하면 된다. 혹시 한국대학교 수업에 익숙하다면 미리 염두에 두어야 하는데, 와서 보면 알겠지만 강의 채점 항목들이 6~7개로 나누어져 있고 하나당 15%~10%로 배분되어 있는 수업도 있는데 이럴수록 학생 입장에서는 학기 내내 긴장할 수밖에 없다.
Syllabus에는 또한 특별상황(시험 불참 혹은 미 출석 등)에 대한 점들도 자세히 적혀있는데 이 또한 교수님들마다 다 다르다. 이전에 이메일로 보내라는 둥, 중간에라도 연락을 하라는 둥, 그냥 연락을 하지 말라(?)는 둥 [기말로 대체], 진짜 별의별 사항들이 다 있다. 대게는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는 선에서 요구 사항들을 알려주지만, 그 요구 사항이 여러분의 성향에 안 맞을 수도 있고 위급한 일들이 발생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 될 수 있으면, thus, 그러한 점들도 어느 정도 고려해서 실러버스에서 미리 체크하고 수업을 택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내가 바로 그 '성향에 안 맞는 학생'이었다. 기말에 두 배로 몰아서 보라고...? 내가 제일 싫어하는 유형이다. 한 번에 몰아서 시험 보기. 제일 자신 없는 형태의 test. 그 압박감을 남은 학기 내내 느끼는 게 싫었다. 도저히 A로 끝낼 자신이 없었다. 아무래도 첫 학기인지라 더욱더 학점이 꼬이는 일이 발생하는 게 싫었다. 안 그래도 당시에 세미나 수업하고 ESL 수업 때문에 매주 에세이로 정신이 없었다. 따져보니 기말에 할 것도 너무 많아 보였다. 과감하게 W를 택했다. W란 Withdraw로 수업을 drop 시키는 것을 말한다. 총 학점과 성적에는 반영이 되지 않고, 여러가지 개인 이유로 학생 본인이 drop 시킨 것으로 academic record에는 표시가 된다. Grade인 A, B, C ... F 외에도 W, P등등으로 표기가 된다. 이는 꼬리표처럼 따라오므로 웬만해서는 W는 없는 게 좋다. W 하나 정도까지는 괜찮지만 두 개부터는 편입 상향 지원 시 그렇게 보기 좋지는 않다.
결국 W를 찍고 해당 과목을 철회(?) 하고 수업에 나가지 않았다. 이때 깨달은 점이라면, 1. 체력 관리를 하면서 공부해야 할 것 2. 수강신청 전에 실러버스 꼭 체크하기가 되었고 그다음부터는 더욱 꼼꼼하게 Syllabus를 보고 수업을 선택하게 되었다.
근현대 영화사 수업에서는 정말 영화만 봤다. 거의 2시간 내내 영화 보고 다 끝나면 교수님의 설명이 이어지고 그게 끝이다. 그런데 교수님의 설명이 매우 지엽적이었다. 교과서도 없고 해서 시험 준비하기가 안 그래도 어려웠다. 과제로서 자유롭게 영화 한 편 보고 에세이 쓰는 것이 있었는데 당시에 'Limitless'라는 영화를 보고 에세이를 제출하였다. 에세이에 대해서 교수님의 평가가 매우 좋았다. 그때 처음으로 글쓰기에 자신감이 들었던 거 같다. 그 자신감은 아마 essay의 방향을 어떻게 잡고, 어떤 느낌으로 쓰는 게 미국에서 먹히는지 개인적으로 알게 된 시점이었다. 그리고 다른 과목에서도 계속해서 비슷한 느낌으로 essay를 써왔고 대부분 A- 이상을 받아왔다. 확실히 원하는 포인트와 원하는 글의 맛이 다르다. 꼭 짚어 말하기 힘든데, 본인이 쓴 에세이를 들어서 나중에 좀 더 자세하게 다뤄보도록 하겠다.
혹여 상황이 발생해서 나처럼 W의 훈장을 받게 되더라도 좌절하지 말자. 본인이 겪어본바, transfer에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당시에 조금 마음에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 아무래도 수업이 하나 줄었으니, 심신이 안정이 되었다. 시작부터 급하게 달려가다가 좀 체한 게 아니었나 싶었다. 그렇다고 긴장의 끈을 확 놓은 정도도 아니었다.
잠시 몇 주는 그냥 그렇게 흘러가는 대로 편안한 마음으로 학교를 다녔다. 잠시 타지에 왔다는 감성에 젖어서 미국에 온 걸 다시 실감했다. 우습지만 주변에 사람들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그제서야 눈에 들어 오고, 주변에 나무들이랄지 심슨에서 봤던 하늘의 구름이랄지, 괜히 한번 스벜에서 커피도 마시면서 잠깐 시간을 흘려보냈다. 그렇다고 해도 나쁘지 않았다. 위로받는 느낌이랄까. 아직 마라톤에서 십분의 일도 안 뛰었지만 다시 달음박질 할 것을 알았기에 잠깐 걸었다. 결국 뛰어도 내가 뛰고 쉬어도 내가 쉬는 참가선수는 단 한명인 마라톤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