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잃은 보수를 위한 안내서(1)

당신은 혼자가 아니에요.

by 권도연

오랜만에 서점을 찾았다. 자연스레 사회 정치 분야쪽으로 갔다가 길을 잃었다. 베스트셀러, 스터디셀러뿐 아니라 신작들마저 모두 진보 서적들뿐이다. 현실이 암울하니 머리라도 채워볼까하여 어렵게 시간 내 찾았는데 실망스럽다 못해 이제는 화가 난다.



공부 좀 하겠다는데 아무도 도와주질 않는다. 개인의 자유, 그리고 법치, 자유주의에 관한 사상과 이념의 궤적들을 찬찬히 보고 정리하고 싶었다. 그 잘난 학자들, 앵무새처럼 하나마나한 소리를 반복하는 정치 평론가들, 소위 우파 지식인들은 책 한권 안쓰고 뭐하는지. 스스로를 어용 지식인이라 칭하는 유시민, 푸른 지붕의 장하성의 책은 불티나게 팔리고, 진보주의자들의 영원한 고전 마르크스 책은 초등학생 버전, 중학생 버전 등 다양한 소비자 맞춤용으로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거기에 페미니즘, 환경 운동, 반세계화, 성소수자 등 입에 담기만 해도 왠지 지적인 냄새를 풀풀 풍기는 진보쪽 이슈들도 알록달록 표지를 입고 포진 중이다.


그런데 보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이러니 정신적 무장이 안되는 나약한 보수들이 자칭 타칭 ‘샤이보수’란 우스운 이름을 달고 숨죽여 살 수밖에.


앞으로가 더 큰일이다. 대한민국 남녀노소 누구나 즐겨보는 영화와 텔레비전 프로그램은 과거 8년간의 보수 정권을 물고 뜯고 맞보고 즐기느라 신이 났다. 그걸 즐기는 사람들, 그저 틀어놓고 설거지를 하던 사람들 모두 자연스레 이 분위기와 문화에 적응되니 이를 바로잡으려면 강산은 몇 번이나 변해야 할까.


한국 영화들에 나오는 자본가, 정치인, 법률가, 대기업은 모두 악이다. 하나같이 야비하고 더럽고 음흉해서 절대 구제받지 못할, 분노 게이지를 상승시키는 절대 악.


아이러니한 것은 그러면서 모두가 그 ‘공공의 적’이 되고 싶어한다는 사실이다. 20대는 대기업 인적성 검사를 본다고 독서실에서 청춘을 소비하고, 30대는 부동산, 주식 투자에 하루에도 수 백번 울고 웃고, 40대는 자식만은 나보다 좋은 계층(?)으로 올라가길 바라며 유학과 학원에 수천을 쏟아붓고, 그러느라 50, 60대는 비참한 노후에 더 심한 꼰대가 되어가는 악순한.


그러니 정치인들은 무너질때로 무너진 약하고 순진한 사람들을 꼬득여 국가가 다 책임진다며 공짜 마케팅을 펼치느라 경쟁이다. 가진 자가 더 내야 한다, 권력자의 것을 빼앗아라, 규제하라 등, 그런데 우리는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국가가 개인에, 시장에 간섭해서 인류가 진보해왔던가? 인류 역사는 금융시장의 탄생과 시장경제를 통해 발전해왔고 성장해왔다. 그러는 과정에 부작용이 있으면 조금씩 변화를 주고 고쳐나가면 되는거지, 절대적인 악으로 규정해서 분노하라 부추기니 이보다 더 악한게

어디에 있는가.


세상에 공짜는 없다. 국가가 내게 뭐든 것을 해주고 내 인생을 책임져 줄 거라고 기대하다가는 큰 코 다친다. 청년수당, 아동수당, 노인수당 만든다고 이미 국고는 바닥났고 그 놈의 국가는 당신의 지갑을 노리고 있다.


보수는 자신을 탓하지만, 진보는 이 모든 게 국가 탓이다.



그래도 아직 보수가 사라지지 않았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어렵게 찾은 온라인 카페나 오프라인

모임에서 지적 욕구에 목마른 보수주의자들이 끊임없이 우물을 찾아 헤매고 있으니 희망은 있다.





정당은 이 목마른 사람들에게 무엇을 해줄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아직 끈을 놓지않은 보수주의자들이 지레 포기하지 않도록, 보다 자신의 삶에 집중하고 보다 정의롭고 공정한 사회에 살 수 있도록 대신 말하고 대신 싸워줄 수 있는 신뢰할만한 정당이 필요하다.


하지만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 모두 보수의

가치를 결집시켜 정치적, 정책적으로 올바른 목소리 내는데 무능했고 무지했다. 아니, 실력의 문제보다 ‘인간적으로 쪽팔리는’ 당이 되어버렸다. 안보와 경제를 포함한 모든 이슈에서 ‘인간적으로 배신감’을 느끼게끔 만들었다.



너희들을 찍은 내가 바보지.


게다가 잘못했다고 반성하면서 내놓은 방책이라는 것이 중도우파로, 중도로 좌클릭하는 것이라니 번짓수를 잘못잡아도 한참 잘못잡았다.


중도표를 껴안아야 한다며 영국 보수당도 좌클릭해서 정권을 잡았다는 근거를 대지만 그건 하나만 알고 열은 모르는 소리다. 1945년 이후 보수당은 노동당의 국유화, 복지국가 노선을 받아들이는 바람에 모호한 정체성으로 전패한 전력이 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바른미래당의 말로를 보면 답이 나오지 않은가? 정치와 안보는 보수, 경제는 진보라며 국민들의 간을 보던 안철수, 유승민 말이다.



한강의 기적은 보수가 만들었다. 그걸 잊어서는 안된다. 우리는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왔고, 정직하게 꿈꿔왔다. 헬조선이라는 패배감에 젖어 살기에 세상은 할 일이 많고 맛있는 것도 많다! 분노하며 소리 지르고 부수기엔 내 정력이 아깝지 않은가. 스스로를 학대하며 자기연민에 빠지기에는 인생이 너무나 짧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세상을 긍정하고, 자신을 계발하며, 오늘도 서점을 찾아 기웃대는 보수주의자들이 바로 당신 옆에 있다.


지방선거 직전 여론조사와 실제 득표율의 차이 <출처: 한국경제>

**지방선거 직전에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와 실제 득표율 차이. 진보 후보들에 대한 여론조사 지지율과 실제 득표율은 거의 비슷하지만, 보수 후보들에 대한 것은 차이가 매우 크다. 이는 보수 성향 유권자들이 진보 성향 유권자들에 비해 잘 응답하지 않는다는 것, 즉 여론조사에서 잡히지 않아 과소표집되었다는 증거이다.


그러니 지금은 숨고르기하며 이론적 무장을 해야할 때다. 서점 안 구석에 먼지 쌓여진채로 방치된 이론가들의 지혜는 아직, 그리고 영원히 유효하니 말이다.



#추천도서


노예의 길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자유론 <존 스튜어트 밀>

선택할 자유 <밀턴 프리드먼>

열린사회와 그 적들 <칼 포퍼>

법 <바스티아>

1984 <조지 오웰>

이기적 유전자 <리처드 도킨슨>

자본주의는 어떻게 우리를 구할 것인가 <스티브 포브스>

나는 왜 자유주의자가 되었나 <복거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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