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잃은 보수를 위한 안내서(2)

by 권도연


영국병을 고친 대처가 그랬다.


“모든 인간은 불평등할 권리가 있다.”고. 보수는 이처럼 다름을 인정하고 옹호한다. 너와 나의 배경이 다르고 실력이 다르니 승리자, 패배자로 나뉘는 건 당연하다고 여긴다.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에 대처는 없다. 그 자리에 떠도는 건 손에도 잡히지 않는 긍정의 유령들이다. 우리 모두 부자가 될 수 있고 사장처럼 대접받을 수 있고, 노력만 하면 1등할 수 있다고.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희망은 결국 절망을 가져온다. 잘 될거라 기대했으니 실망감은 더 크다. 마음의 상처를 이겨내지 못하는 사람들은 결국 분노하기 시작한다.


“분노하라! 당신에게 그럴 권리가 있다.”


다른 한 편에서는 선구자같은 존재가 등장한다. 괜찮아요 토닥토닥, 걱정말아요 토닥토닥. 나라가 너를 책임져 줄거예요. 당신의 분노를 청와대 청원게시판에 써보세요.. (응?)


당신이 보수라면 그들에게 이렇게 말해 줘야 한다. 현실에 파랑새는 없다고. 당신에게 대가없이 해준다는 사람은 반드시 피해야한다고. 그 사람은 분명 사기꾼이거나 마술사일 거라고.


아프니까 청춘이다? 무책임한 어른들의 위로가 마약처럼 청춘들을 중독시켰다.


감성에 빠진 진보주의자들에게 현실을 직시하도록 하는 것이 보수의 역할이다. 세상은 공평하기보다 불공평하고, 따뜻하기보다 냉정하며, 원래 인간은 이성보다는 본능에 충실할 수밖에 없으니 당신이 고개를 젓는 저 사람을 그냥 인정하라고 해야한다.


그러면서 보수의 보편 가치를 말해줘야 한다. 평등은 결과의 평등을 만드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결코 정의로울 수 없으며 '평등사회 구현'이라는 환상적 가치, 집단적 가치는 결국 당신의 현재와 미래 모두를 망치게 될 것이라고.


대신 자유와 공정을 말해야 한다. 인간의 자발적이고 자유로운 선택이 제한되는 곳에는 비효율과 시장 경제의 왜곡만 나타난다는 지난 역사 사례를 되짚어주면서.


만약, 당신의 눈에 자유의 가치가 낡고 고리타분한 것처럼 보인다면 이는 다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 탓이다. 보수 정당이라면 자신들의 정치적 이념과 사상을 구체화 시켜 정책 구현에 사활을 걸었어야 했다. 당의 강령에 들어 가 있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원칙'을 지키는 데 최선을 다했어야 했다.



<<자유한국당의 강령 첫머리>>

자유한국당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원칙의 헌법 가치에 기반하여 대한민국의 지속적인 발전과 평화통일을 지향함으로써 현재와 미래의 모든 세대가 공정하고 부강한 국가에서 더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한다. 국가안보, 자유와 책임, 공동체 정신, 국민통합, 미래세대를 위한 책임 등 신(新)보수의 가치와 시대변화에 따른 새로운 가치를 국민과 공유하고 확산시켜 나가며, 능력과 도덕성 및 애국심을 갖춘 인재들과 함께 이를 실천하여 국민의 신뢰를 얻는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정당이 된다.
1. 헌법가치와 법치주의 존중/ 2. 국가안보와 국민안전 우선 /3. 자유와 책임의 조화 / 4. 공동체 정신과 국민통합 지향 / 5. 긍정의 역사관과 국가 자긍심 고취 / 6. 지속가능성 중시 / 7. 열린 자세로 변화·혁신 추구


※이 참에 더불어민주당의 강령도 살펴봤다. 사실 알고보면 더불어민주당이 진짜 보수라는 친구의 말이 생각 난 탓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정말 '자유'와 '시장경제'를 수호하는 보수집단일까?


<<더불어민주당의 강령 첫머리>>

우리는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항일정신과 헌법적 법통, 4월혁명·부마민주항쟁·광주민주화운동·6월항쟁을 비롯한 민주화운동을 계승하고, 경제발전을 위한 국민의 헌신과 노력을 존중하며, 노동자·농어민·소상공인 등 서민과 중산층의 권리 향상을 위해 노력한다. 우리는 민주정부 10년의 정치·경제·사회 개혁과 남북 화해·협력의 성과를 계승하되 반성과 성찰로 새로운 시대를 열어간다.
첫째, 정의가 숨 쉬는 사회를 만든다./ 둘째, 국민이 안전한 사회를 만든다./ 셋째, 모든 국민이 함께하는 통합된 사회를 만든다./ 넷째, 새롭게 번영하는 나라를 만든다./ 다섯째, 평화로운 대한민국을 만든다.


판단은 여러분께 맡기겠다.




독일의 철학 사상가 한나 아렌트(H. Arendt)는 보수에 대해 유래와 정의에 있어서 논쟁적인 개념이라고 규정하면서


- “보수주의라는 상표 붙인 병에 넣은 것은 공기를 액체로 만들려는 시도와 같다”

-" 보수주의는 어떤 총체적 이념이나 하나의 기원을 갖는 이론에 의해 ‘교리’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각 나라의 특수한 역사적 조건 하에서 특정한 정치적 사회적 가치와 태도의 구성물로 구축된 것이다


라고 덧붙였다. 즉, '나라의 숫자만큼 많은 보수주의가 있다'는 결론이다. 즉, 우리의 언어로 보수를 정의하려면 우리의 역사와 현재를 찬찬히 훑어봐야 한다.


지금 우리가 보수주의자들이라고 여겨지는 이미지- '권위주의적', '부패한'-와 진보주의자들이라고 여겨지는 이미지- '정의로운' '민주화 운동에 헌신한'-는 1960~80년대에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다. 그 당시 한국의 보수-진보의 구분은 근대화 세력이냐 민주화 세력이냐로 구분지어졌다.


이 말인즉슨 반 세기 전에 그랬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까지도 유효하게 사용되고 있다. AI가 나의 기분까지 예측해주는 21세기에, 여전히 민주-반민주의 대결이 펼쳐지는 중이다.



호랑이 잡던 시절의 용기로.


진보는 과거 운동권 시절의 '민주' 프레임을 끌어와서 현재 벌어지는 모든 사회적 문제들을 절대적인 사회악으로 싸잡아 비판하느라 정작 진보의 존재 이유인 '발전'에는 손을 놓고 있고, 보수는 지금이 탈냉전 시대임을 망각하고 ‘반공’을 고수하느라 껴안아야 하는 진보적 가치들을 파괴하고 훼손함으로써 결국 ‘수구꼴통’으로 전락해버렸다.


문제는 그 피해가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전가되고 있다는 것다는 것이다. 정체성 없는 정당에서 탄생한 정부는 좌우를 가리지 않고 “좌회전 깜빡이 켜고 우회전” 혹은 그 반대라는 비난을 늘 받아왔다.그런데도 여전히 정당들은 "탈이념 정당, 민생정당하겠습니다!!"라는 말을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하면서 불분명한 맹물정당임을 자인하고 있다.


우리당도 마찬가지다. 지금 해야할 것은 탈이념 선언이 아니다. 자신의 ‘지적(知的) 빈곤,’ 혹은 ‘이념적 빈곤' 대해 고백해야 한다. 영국의 보수당 대표 마이클 하워드가 했던 것처럼 자신의 신념과 정체성을 당당하게 선언하고 공인받아야 한다.


* 마이클 하워드(Michael Howard) 전 대표는 자신의 보수주의에 대한 신조(What Michael Howard believes)를 신문 광고(2007년 11월 2일)를 통해 공개했다. 그는"서로를 헐뜯는 데 익숙한 정치권에 염증을 느낀 유권자들에게 진정한 보수당의 가치를 알리기 위해서"라고 게재 이유를 설명했다.

나는 믿는다.

1. 자신은 물론 가족의 건강과 부·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라고 나는 믿는다.
2. 국민이 인간 본연의 야망을 추구하지 못하도록 막는 장애를 제거하기 위해 헌신하는 것이 정치인의 의무라고 나는 믿는다.
3. 국민은 그들이 삶의 주인이고 간섭과 지나친 통제를 받지 않을 때 가장 행복하다고 나는 믿는다.
4. 국민은 커야 하며 정부는 작아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5. 관료·형식주의, 갖가지 규정과 조사관, 각종 위원회와 독립적인 정부기관이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인간 행복에 기여하지 않는다고 나는 믿는다.
6. 모든 국민은 잠재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7. 책임없는 자유는 없으며 스스로 돌보지 못하는 사람들을 돌보는 것은 우리의 의무라고 나는 믿는다.
8. 불공평은 우리를 분노하게 하며 기회 균등이야말로 중요한 가치임을 나는 믿는다.
9. 부모는 자녀에게 자신들이 받았던 것보다 더 나은 교육을 제공하기를 원한다고 나는 믿는다.
10. 모든 어린이는 노후에 자신들의 부모가 평안하기를 바란다고 나는 믿는다.
11. 영국인들은 그들이 자유로울 때만이 행복하다고 나는 믿는다.
12. 영국은 언제나 영국의 자유를 수호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13. 행운과 타고난 재능·노력, 그리고 부의 다양성을 통해서만이 섬나라인 영국이 고귀한 과거와 약동하는 미래를 가진 위대한 사람들의 고향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나는 그들의 종이 되는 것이 행복하다.

나는 믿지 않는다.

14. 누군가 부자이기 때문에 또 다른 사람이 가난해졌다고 나는 믿지 않는다.
15. 누군가 지식이 있고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또 다른 사람이 무식해졌다고 나는 믿지 않는다.
16. 누군가 건강하기 때문에 또 다른 누군가가 병들게 됐다고 나는 믿지 않는다.



만약 지금 당신이 그의 신조를 읽고

고개를 한 번이라도 끄덕였다면,

혹은 마음으로부터 강한 자극을 느꼈다면,

당신은 보수주의자다.


자각은 고행의 시작이다.

보수는 늘 자기 존재를 증명해야만 했다.

하지만 결코 그 길이 헛되진 않을 것이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택했으므로.

그리고 세상은 늘 돌고 도는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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