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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리스 Apr 22. 2021

화를 잘 내고 싶다.

화를 잘 내고 싶다.


화를 내야 하는 상황일 때

상대를 보기 좋게 납작하게 만드는,  흠칫하며 깨갱하게 만드는 스킬을 배우고 싶다.

빈틈없는 논리, 정확한 전달력, 적당한 흥분감이 뒤섞인, 강렬하고 정돈된 '화 내기' 하고 싶다.


하지만 난 상대가 목소리를 높이거나
생각지도 못한 논리를 들고 나오면 긴장하기 시작한다.

두근두근. 얼굴이 붉어지고 말을 더듬으며 급기야는 삐죽 새어 나오는 숨소리를 막아버리고 싶을 정도로 목소리가 떨린다.

오늘도 그랬다.

난 오늘, 또 화를 내지 못했다.





거금을 들여 볼륨 매직과  염색을 했다.

했는데.

했는데.

 머리에 진짜. 매직이 이루어졌다!


꼬불꼬불, 곱슬곱슬.

다 탔다.

선천적 생머리인 내 머리카락이 매직 한 방에

악성 곱슬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나는 머리 상태를 확인하고서도 화를 내지 못했다.

그러다 집에 와서 눈물을 뚝뚝 흘렸다.


출근했더니 다들 눈을 동그랗게 뜬다.

나는 눈빛으로 말했다.



아무 말도 하지 마세요.



고맙게도 아무도 묻지 않았다.

일에 파묻혀 있다 고개를 들어 거울을 보다 울컥 화가 치솟았다.


안 되겠어. 이대로는.


큰 마음을 먹고 미용실에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남자 원장의 목소리에 괜히 심장이 두근거렸다.


머리 상태가 심각해서요. 다시 가서 복구 시술이라도 받아야 할 것 같은데요.


원장은 기분 좋게 듣는 듯했다. 하지만 기승전 안돼요다.  하려면 추가 비용 지불. 환불은 노노.

화가 치밀어 오르려는데 그의 말이 불을 붙였다.


손해배상 청구해봤자 이기지도 못해요.


그의 앙칼진 말에도 논리정연한 분노의 신은 나에게 오시지 않으셨다.

내게 온 것은 대책없는 울보 신과 나약한 소심 신뿐.


그럼 전 어떻게 하나요. 이런 레게 머리로는 다닐 수가 없는데요. 엉엉엉


내가 너무 한심하더라. 그래서 더 울었다.


나 다시는 거기 안 가. 안 가.

 

(속으로) 부르짖었다.

분함이 하루 이틀을 갔다.

이 말을 했어야, 저 말을 했어야. 하며 이불을 찼다.

그렇다고 다시 전화를 할.. 턱이 없다. 난 나를 너무도 잘 아니까.


가성비만 따져 찾은 미용실이었다.
돈 몇 푼에 자존심도 자존감도 날아가버린 기분이었다.



그래. 일이나 하자.

회사일 더러워 못해먹겠다고 때려치우고 싶다고 한 말 취소다.



돈 열심히 벌어 비싼 미용실 간다 내가!!
난 또 이런다.

늘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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