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해 불안해 불안하다구

24시간 카톡을 보내는 그대

by 권도연

카톡

카톡

카톡

카카톡

카카카캌카카카카캌카카카캌카톡



임팀장의 카톡이 시작됐다.



'어제 밤에 부서장한테 전화 왔는데'


라는 문장으로 시작된 카톡은

장장 20번 넘게 팀원 5명의 핸드폰이 요란하게 알람을 울려댔다.


사실 임팀장의 메시지는 짧고도 굵은 '카톡' 알림 한 번으로 끝낼 수 있는 하나의 문장이었다.


'분기별 매출 결과 분석 보고서를 만들라'


하지만 임팀장은 자신의 업무 지시가 얼마나 급박하고, 중요한지 그리고 동시에 자신의 상사에게 받은 지시가 얼마나 부당하고 짜증 나는지를 팀원들에게 고스란히 전달하기 위해 '문장 끊어치기' 기술을 시전 했다.

자신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모든 문장들을,

정리되지 않은 날 것으로,

아주 열심히,

카톡. 카톡. 카톡.


'그러니까'

'부서장에게 줄 보고서가 필요한 건데'

'표로 간단하게 요약해서 만들면 됩니다.'

'아, 첨부 자료는 따로 만들고.'

'출근하면 바로 작성해주세요.'

'아, 그리고 필요한 자료는 홍보팀에 전화해보고.'

'홍보팀 팀장이 누구더라?'


임팀장의 카톡이 물음표로 끝났다는 건 누구라도 대답을 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이른 아침, 카톡을 읽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 바람에 임팀장의 카톡 폭탄이 멈칫. 했다.


출처 : 조선일보


임팀장은 한 템포 기다리자는 마음으로 초조하게 기다렸다.

그것이 관대함이라 믿으며, 후배들을 향한 배려라고 믿으며.

하지만 카톡 메시지의 읽음 숫자가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자 임팀장의 마음에는 서운함과 괘씸함이 밀려왔다.


'아무리 아침이지만 카톡은 바로 봐야지. 아침에 부서장한테 전화받은 나도 짜증 난다고. 요즘 애들은 매사에 긴장하는 법이 없어. 나는 옛날에 자정까지도 전화받고, 새벽에도 일했다고.'


처음. 레벨 1의 분노.


'아무리 그래도 김 차장은 전화를 받아야 하는 거 아냐?!!!!'


레벨 10으로의 급상승.


임팀장은 참지 못하고 김 차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잠 기운이 가득한 목소리의 김 차장이 전화를 받았다.


"부서장이 보고서를 만들래서. 미리 말해두려고 전화했어요. 출근하기 전에 자료 준비해서 도착하면 바로 작성해서 올려줘요."

"네...."


김 차장은 무슨 소리인가.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하는 마음으로 전화를 끊자마자 카톡을 열었다.



안 읽은 메시지 32.


그러니까 이런 식




모두 임팀장이 보낸 것이었다.

김 차장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한 번 깬 잠은 다시 청하기 어려웠다.



'그냥 일찍 출근하자.'



김 차장은 무거운 눈꺼풀을 억지로 뜨며 거실로 나왔다.

창밖은 어두웠다. 설마 하며 시계를 올려다본 김 차장은

육두문자를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5시.


다시 눈을 비비며 봐도 시계는 분명

숫자 5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새벽이었다.





출처 : 연합뉴스




"김 차장 홍보팀장한테 전화했어요?"

"아... 아직."



김 차장은 앞뒤로 꽉 들어찬 사람들 틈에서 임팀장의 전화를 받았다. 평소보다 1시간 넘게 일찍 지하철을 탔지만 지옥철은 지옥철이었다. 마스크를 쓴 상태에서라도 밀폐된 공간에서 대화는 금지였다. 가뜩이나 확진자가 3천 명이 넘어서면서 지하철에서 전화를 받는 것은 눈치가 보이는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홍보팀장에게 전화를 하란다. 아침 7시가 갓 넘은 시간이었다.

'피해자는 나 혼자면 족해.' 하고 김 차장은 생각했다.



"좀 이른 시간이라 이따가 전화하려고 했습니다."



홍보팀장을 핑계 댔지만 사실 김 차장은 '좀 이른 시간'이란 점을 임팀장에게 어필하고 싶었다. 하지만.


"전화해. 보고서 빨리 만들어야 하니까. 그리고 아까 표로 만들라고 한 거 그거 서브 자료도 만들어줘."


불안한 임팀장에게는 그 어떤 어필도 효과가 없었다.





ver. 12


김 차장은 보고서를 만들면서 한숨을 푹 내쉬었다.

벌써 12번째 수정이었다.

임팀장의 지시대로라면 가장 먼저 만든 ver.1을 조금만 손 보면 되는 거였다.


매번 이런 식이었다.

임팀장의 지시는 불명확했다.

김 차장이 문서를 가져가면 임팀장은 그제야 이것저것 지시하기 시작했다. 부서장의 요구가 무엇인지, 말을 전달하는 임팀장조차 몰랐다. 그러니 임팀장의 말은 늘 허공에 떠돌았고 결론도 없었다.


게다가 임팀장은 늘 메인 자료 말고도 자신이 부서장에게 설명할 서브 자료까지 지시하곤 했다.

일명 '자기 학습용' 문서였다.

그곳에는 보고서에 담긴 용어의 유래부터 사진까지 있어야하는, 마치 모자란 학생을 위한 과외 선생님의 '해설서' 같은 문서였다. 임팀장을 위한 '가외의 과외 보고서'를 만드느라 팀원 4명이 쩔쩔맸다.


임팀장은 11시가 다 되어서야 부서장에게 보고를 한다며 일어났다.

눈앞에서 임팀장이 사라지자 팀원들의 파티션 안에서 곡소리가 나왔다.

그제야 그들은 아침에 먹지 못한 커피를 마셨고, 참았던 화장실을 다녀올 수 있었다.



아침 5시부터 시작된 긴 여정이었다.



1분이라도 지체하면 안 될 것 같던 보고서는

6시간이나 지나서야 보고되었지만

그 누구도 문제제기하지 않았다.



오직 임팀장만 시간에 쫓겼고

임팀장의 팀원들만 숨이 찼다.









특징


이들을 지배하는 가장 큰 심리는 '불안'이다.

무엇인가를 판단하거나 결정하는데 액션보다 불안이라는 감정이 앞서기 때문에 상황을 모면하거나 책임을 피하고 싶은 '회피 심리'가 강하다. 하지만 동시에 완벽주의 성향이 있다. 단 '내가 만족할 때까지'가 아니라 '상대가 만족할 때까지'가 기준이다. 그래서 그 '기준'은 자주 바뀐다.

과거, 상사로부터 아주 크리티컬 한 부정적 피드백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특징은 더 크게, 더 강하게 발현된다.



정신분석학에서는 이들을 '의존성 성격장애'로 진단한다.



1. 다른 사람의 지나친 조언과 재확인 없이는 일상적인 결정을 내리기 어려워한다.
2. 삶의 중요한 영역을 대부분 다른 사람이 책임지기 바란다.
3. 지지나 승인을 잃을 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다른 사람의 의견에 반대하기를 어려워한다. 보복을 두려워하는 게 아니다.
4. 동기나 능력이 부족하다기 보다는 판단력 혹은 능력에 대한 자신감이 부족해서 어떤 일을 시작하기 어려워한다.
5. 남들의 보살핌과 지지를 얻고자 노력한다. 심지어 불쾌한 일을 떠맡기도 한다.
6. 누군가가 자신을 돌봐주기를 바라고 자신을 돌봐주는 사람에게 순종적, 의존적이며 그 대상과 분리되는 것을 두려워 한다.
7. 자신을 돌볼 수 없다는 과장된 두려움 때문에 혼자 있을 때면 불안하고 무기력하다.
8. 가까운 관계가 끝났을 때 자신을 돌봐주고 지지해줄 사람을 절실히 찾는다.
9. 자신의 일을 스스로하는 것에 대한 비현실적인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다.

-출처 : 내 주변의 싸이코들, 두에인 L 도버트, 황소걸음





대하는 법


이들은 실패나 거절이 두려워 사소한 일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한다.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조차 잘 표현할 줄 모른다. 이들은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할까를 생각하기 전에 의지하는 사람에게 도움을 청한다. 이때 도움을 주기보다는 자신의 생각이 어떤지 물어 스스로를 생각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실패해도 괜찮다고 격려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스스로해내서 자신감을 회복하게 해야지 친절하게 도와주었다가는 의존성만 키워주는 꼴이 될 것이다.






이전 04화닥쳐! 내 말이 정답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