뚱뚱하지만 날씬하게 입습니다
이미지 메이킹 4화
옷이라고는 화이트와 블랙이 전부였다.
패션에는 관심도 재능도 없었다. 그래서 민지는 벌써 몇 주째 연수 때부터 입었던 까만 재킷과 까만 슬랙스, 그리고 하얀 U티를 챙겨 입었다.
"민지 씨는 얼굴이 하얘서 화사한 걸 입으면 이쁠 텐데."
점심 시감, 이 차장이 민지에게 말했다. 민지는 자신에게 제일 잘 어울리는 색은 블랙이라며 나름의 방어막을 폈다. 하지만 패션과 브랜드에 관심이 많은 선배들은 민지에게 충고 같은 조언을 해주고 싶어 했다.
"옷 같은 거에 관심 없죠?"
"네.. 예전엔 있었는데 고시 공부하면서 다 없어졌어요."
"퇴근하고 나랑 IFC 갈래요?"
"..."
"내가 여동생이 하나 있는데 내가 민지 씨 동생 같아서 그래. 쇼핑하는 거 도와줄게요. 우리 예쁜 옷 한 벌 사자."
선배의 제안이나 명령에 거절 거부는 죽음이다.
신입사원 연수 기간 동안 귀가 따갑도록 들은 말이었다. 민지는 마지못해 미소를 띠며 알겠다고 수긍을 했다.
퇴근 후의 쇼핑몰은 회사일에서 해방감을 느끼고 싶어 하는 직장인들로 미친 듯이 붐볐다. 민지와 이 차장은 패스트패션으로 알려진 여성복 매장으로 들어갔다.
"신입이 비싼 걸 사는 건 아닌 거 같고. 여기 매장 옷들 가격이 리즈너블 하긴 하거든."
"네. 리즈너블..."
"어머 이거 이쁘다. 이거 한 번 대보자."
이 차장은 화려한 무늬의 스커트를 민지 허리춤에 갖다 댔다.
오 마이 갓. 민지는 그 누구보다 자신의 체형을 잘 알고 있었다. 어깨가 좁고 하체가 퉁퉁한 '서양배 체형'
출처 : pixtastock그런 그녀에게 패턴이 있는 하의는 쥐약이었다. 타이트하거나 주름치마(개더, gathers)는 허리통이 굵고 엉덩이 골반이 큰 민지의 신체적 단점을 부각할 뿐이었다.
개더. 출처: 네이버 패션전문자료사전"어... 예쁘긴 한데. 저랑은 맞지 않을 것 같아요. 차장님."
"그래? 여성스럽고 상큼해 보이지 않아? 어려 보일 거 같기도 하고."
"차장님 이거 보세요. 이건 어떠세요?"
민지는 이 차장에게 펜슬 스커트를 추천했다. 민지의 판단으로 이 차장은 모래시계형 몸매였다. 아주 오래전이지만 이미지 메이킹 자격증을 위해 공부하면서 나름의 눈썰미를 키워 온 덕분이었다.
"이거? 너무 올드해 보이는데...."
"아니에요. 차장님 제가 보기엔 차장님은 이런 말씀드리기 뭣하지만... 글래머러스하잖아요... 그럼 이런 스커트나 랩 스타일 같이 몸매가 드러난 게 좋아요. 상의는 싱글 브레스티드(single breasted) 같은 것을 입구요."
싱글 브레스티드. 출처: 네이버 패션전문자료사전그랬더니 이 차장이 동그란 눈으로 민지를 쳐다봤다.
"패션 전공했어요?"
"아뇨. 그냥 좀 관심이 있어서 공부했어요."
"근데 왜 자긴 만날 슬랙스에 재킷을 입어요?"
"그게 저의 두꺼운 허리와 짧은 다리를 보정해주니까요."
"아?"
"평범한 거 같아도 밑단이 너무 길지 않고 아주 조금 퍼진 슬랙스, 원 버튼의 재킷을 입어요 전. 엉덩이가 붙고 발목이 좁아지는 일자형 슬랙스나 투버튼은 입지 않아요. 그러면 전 아마 데굴데굴 굴러가는 검은 솜뭉치 같아 보일 테니까요."
그날 이 차장은 민지가 추천해 준 스커트와 재킷을 샀다.
그리고 그 다음날 빅마우스가 되어 민지의 능력을 사방팔방 알렸다.
"담엔 나랑 같이 가자 민지 씨."
고 팀장의 말을 민지는 기쁘게 받아들였다. 업무 능력을 인정받은 건 아니지만, 잡다한 지식으로 상사들과의 심리적 거리감이 줄어든 것은 분명 반가운 일이니까.
패션 중에서 의상은,
타인에게 자신의 이미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중요한 도구이다. 그것은 옷이 인간의 시각 특히 '착시' 현상을 이용할 수 있는 유용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착시를 통해 사람들은 자신을 더 아름답고 멋있게 '보이게' 할 수 있다.
그래서 자신의 체형을 파악하고 시각의 원리를 활용하는 것은 불필요한 꾸밈의 행동이 아니라 지혜로운 노력의 행동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
예를 들어 수직선의 패턴이 그려진 옷을 입어 날씬해 보이게 한다던가 사선의 패턴으로 운동감과 활동성을 강조하는 것,
완만한 곡선의 패턴으로 신체의 곡면을 강조하는 것이 그렇다.
그렇다고 단순히 수직선만을 선택하면 문제가 생긴다. 예를 들어 주름치마는 수십 개의 수직선이 있는데, 하나의 수직선이 아닌 다수의 수직선은 시선이 옆의 수직선으로 유도되기 때문에 수직 효과가 수평으로 분산될 수 있다. 즉, 자신이 키가 작고 뚱뚱하다고 주름치마를 입어 길어 보이겠다고 한다면, 오히려 자신의 단점을 더욱 강조하게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만약 수직선으로 인한 날씬 효과를 기대한다면 세로 방향의 디자인이 들어가거나 앞 트임, 하나의 주름, 솔기, 장식선을 택하는 것이 맞다. 하나의 세로선이 면을 분할하는 효과를 가져와 넓은 면적을 좁게 보이게 하는 원리다.
또한 상하의를 동일한 색상으로 입고 저명도, 저채도의 어두운 색을 택하는 것이 가늘고 길게 보이게 하는 효과를 준다.
민지는 자신의 체형이 키가 작고 뚱뚱하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그녀는 상의의 경우, 차분한 단색으로 위로 내어 입고
하의는 짙은 색으로 입는다. 단 다리를 길어 보일 욕심으로 부츠컷을 입는 것은 금물, 나팔바지는 상체와 같이 극대화되면서 다리를 더 굵어 보이게 한다.
그녀가 절대 입지 않는 옷은 크고 굵은 패턴과 광택이 있는 소재, 튀는(비비드 한) 컬러다.
민지는 그렇게 공부하고 실천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