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우는 아니지만 목소리는 꾸밉니다

이미지 메이킹 8화

by 권도연


"응? 뭐라는 지 잘 안 들려요, 뭐라고요?"


이 차장의 질문에 민지는 얼굴이 홍당무처럼 빨개졌다. 그 바람에 민지의 목소리는 더 기어들어갔다.


"아 보고서에 지금 보니 오타가 보여서..."

"뭐? 오타? 어디?"

"제가 보고서 날짜를 어제로 착.."

민지는 죽을죄를 지은 것마냥 이 차장의 책상 옆에 서서 안절부절못했다. 처음 쓴 보고서였다. 최종본까지 꼼꼼히 몇 번이고 확인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놈의 오타는 꼭 상사 손에 들려 있을 때 툭 튀어나오곤 했다.


"벌써 세 번째 수정이죠? 오타 고쳐서 다시 해 올래요?"

"네에...."


민지는 이 차장이 건네주는 페이퍼를 손에 쥐고 자리로 돌아왔다. 그런데 하필이면 이때 전화가 울렸다.


"안녕하십니까, 로즐린 코스메틱 소비자분석팀 김민지입니다."


민지는 풀 죽음과 속상함과 억울함이 뒤섞인 감정으로 전화를 받았다. 그 바람에 목소리는 갈라졌고 쉰 소리가 새어 나왔다. 아니나 다를까 수화기 너머의 상대방이 못 알아들은 듯 소리를 질렀다.


"네? 누구시라고요?"

"네? 아.. 저는 소비자분석팀 김민지 사원...입니다."


목소리가 더 기어들어갔다.


"하아.. 거기 고 팀장 안 계신가요? 고영 팀장요."

"... 누구신지 여쭤봐도..."

"하아. 안 들려. 저기요 안 들리거든요."


개미 목소리


상대방은 안 그래도 울고 싶은 아이 뺨 때리듯 민지를 몰아세웠다. 저 좀 내버려 두실래요? 누구신데 당신까지 왜 그러는데..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민지는 돌려드리겠다는 말도 없이 고영 팀장의 직통 번호를 누르고 수화기를 내려버렸다. 평소의 민지 같으면 그 자리에서 일어나 고 팀장의 상황을 살피고, 팀장의 전화 연결 의향을 먼저 여쭈었을 것이었다. 하지만 민지는 그럴 정신이 없었다.


따르르 따르르, 몇 번의 울림 후 고 팀장이 딸각하고 전화를 받았다. 어쨌든 연결은 된 것이었다. 민지는 그제사 자리에 일어나 화장실로 뛰어갔다.



*



상사 꾸지람에 대한 신입사원의 회복 탄력성은 언제나 제로다.



입사한 지 6개월이 다 지나도록 민지가 적응을 못하고 있는 것이 하나 있었다. 바로 상사의 지적과 혼남을 유연히 대처하는 것이었다. 상사 목소리의 톤이 높아지거나 짜증이 섞이면 민지는 심장부터 두근거렸다. 안 그래도 작고 힘없는 민지의 목소리는 더 작아졌다. 그 바람에 상사는 더 크게 한숨을 쉬었고, 민지를 '기운 없고 의지 없고 개선의 여지없는' 사원으로 생각하는 듯했다.



민지는 그래서 자주 옆 팀인 홍보팀 동기와 자신을 비교했다.

그녀는 잘했을 때도 잘 못했을 때도 크고 당당한 목소리로 보고하고 표현하는 것 같았다.

발주 개수를 잘 못 넣은 큰 실수를 했을 때도 동기는

"잘못했습니다. 다시는 반복하지 않겠습니다."라며 큰 소리로 팀장님께 고개를 숙였다. 그녀의 행동에 홍보팀장은 화를 내지 않았다. 오히려 어깨를 두드리며 '신입이 그럴 수 있지'라며 위로했다.


'걔는 200만 원짜리 손해를 입혔는데 나는 고작 보고서 날짜 하나 틀렸어. 근데 왜 난 이런 대접을 받는 거야.'


억울했다. 민지는 화장실 변기에 앉아 꺼이꺼이 울었다. 회사에선 울지 않겠다던 자신과의 약속을 보기 좋게 깬 것이었다. 자신만 미운 오리 새끼가 된 것 같았다. 사직서를 쓸까 싶었지만 암울하고 우울했던 취준생의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다닐 직장이라면 인정을 하고 적응을 하며, 방법을 찾아야 했다.


10분 정도 지났을까.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이 차장이었다. 민지는 재빨리 옷을 추스르며 눈물을 닦고 세수를 했다.


"죄송합니다. 자리를 비웠습니다."

" 팀장님이 민지 씨를 찾아서요."

"저를요?"

"회의실에 가봐요. 팀장님이 거기서 기다린다 하셨으니."


아,,, 보고 없이 전화 돌린 것 때문에 그렇구나. 민지는 지레 겁을 먹었다. 회의실까지 걸어가는 동안 최악을 상상했다. 6개월 간 지켜보니 안되겠더라, 사원으로서 기본이 안되어있더라, 다른 직장을 알아보는 게 어떻겠느냐 하는 말들을 떠올리고 침을 꼴깍 삼켰다.

그리고는 회의실 문을 열었다.





"어, 들어와요."

고 팀장이 민지에게 손짓했다.

질끈 감았던 눈을 뜨니 고 팀장이 있었다. 그것도 얼굴에는 사람 좋은 미소를 띠고 테이블에는 민지가 즐겨 마시는 핫 코코아를 놓은 나의 상사가.

민지는 그 두 장면에 긴장감이 탁 풀렸다.



*



민지는 또 눈물을 쏟고 말았다.

힘들었지?로 시작되는 고 팀장의 말들은 그간 마음 졸이고 자존심 구겨졌던 민지의 6개월을 다시금 회복시켜주었다. 신입사원이라면 누구나 겪는 사수와의 갈등, 사회초년생으로서 적응해야 하는 수많은 조직의 룰들에 대해 고 팀장은 오랜 시간 공감해주었다. 그리고는 민지에게 따스하게 말을 건넸다.



민지씨, 목소리를 바꿔보는 건 어떨까



"그래서 말인데,,, 난 민지 씨가 회사에서 잘해보려고 헤어 스타일도 가꾸고 옷도 신경 쓰고 하는 거 기특하게 생각하거든. 근데 또 하나 신경 썼으면 하는 게 있어. 목소리. 민지 씨 목소리가 너무 작아. 힘도 없고. 민지 씨 나한테 쿨톤 칼라 추천하면서 했던 말 있지? 쿨톤의 옷을 입어야 단점이 커버되고 장점이 살아난다고. 난 민지 씨의 목소리 때문에 민지 씨의 장점이 가려진다고 생각해요. 아이디어도 좋고 보고서 쓰는 능력도 출중한데, 보고하는 툴 그러니까 도구가 문제야. 스킬은 하면서 실력이 느는 거지만, 도구는 스스로 찾아 바꾸는 거거든. 조금만 노력해서 목소리 좀 크고 힘 있게, 자신 있게 할 수 있을까. 이미지 메이킹 자격증 땄듯이 조금만 노력하면 바꿀 수 있을 것 같거든. 해보자. 천천히. 코치가 필요하면 내가 도와줄게요. 이래 봬도 나 아나운서 시험도 준비했던 사람이야."


민지는 고 팀장의 말에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머리가 나쁘다고 지적하면 남은 건 절망뿐이었다.

하지만 고 팀장은 민지에게 노력만 하면 바꿀 수 있는 걸 지적해주었다.


민지는 그것이 고마웠다. 그리고 희망을 떠올렸다.








목소리의 크기나 깊이는 성대의 길이와 두께에 의해 결정된다. 그렇다면 가느다랗고 힘이 없는 목소리를 가진 사람이 목소리를 좋게 하겠다고 성대를 두껍게 하고 길게 늘여야 할까?



이에 대해 Brett & Kate McKay와 *toastmasters에서는 이렇게 조언했다.

*toastmasters : 대중 연설과 리더십 기술을 가르치는 비영리 교육기관



1. 검지를 입술과 코에 댄 채 말을 해보라. 혹시 진동이 울리지 않는가? 그렇다면 울릴 때까지 찾아라. 그것이 굵고 풍성한 목소리다.

2. 말하는 동안 배에 힘을 주고 횡격막으로 호흡하라. 깊게 숨을 쉬는 연습을 하라.

3. 앉아 있을 때나 서 있을 때 턱을 들고 어깨를 펴라.

4. 자신에게 맞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부드러운 피치를 연습하라. (하나의 멜로디를 허밍으로 불러 연습.)

5. 정확한 발음을 위해 입을 벌리고 입술에 힘을 빼라.

6. 자주 목과 어깨를 돌려 근육을 이완하라.

7. 얼굴과 턱 근육 마사지로 긴장을 풀라.

8. 평소 크게 읽는 연습(발음&속도&크기 연습)을 하라. (뻔한 말이지만) 크게 말하고, 천천히 말하며, 명료하게 말하라.

9. 목소리를 녹음해 들어보라. 충격적이지만 익숙해져야 한다.




출처 :

1. https://www.artofmanliness.com/skills/how-to/masculine-voice/)

2. https://toastmasterscdn.azureedge.net/medias/files/department-documents/education-documents/199-your-speaking-voice.pdf


그래서 민지는 거울 앞에 자주 섰고,



얼굴을 만져 긴장된 근육을 자주 풀어줬다.


그 방식은 민지의 목소리뿐 아니라 스스로에 대한 마음 가짐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거울 앞에 서 움츠렸던 어깨를 피면서 스스로를 다독일 줄 알게 됐고,

얼굴을 만지고 목을 풀어주면서 잔뜩 얼어붙은 자신에게 셀프 위로를 건넬 수 있게 됐다.



'잘하고 있어.'

'잘할 수 있어.'



그렇게 민지는 변해갔다.

아주 천천히, 조금씩.

그러면서 민지의 회사 생활도 조금씩 편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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