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내내 소란스럽더니 오늘은 더 큰 소란함이 밀려왔다. 왜 우리 정치는 이토록 잔인하고 추악한
길로만 가는걸까.
출퇴근길 핸드폰으로 뉴스를 읽는 직장인도, 등원길 친구와 카톡을 나누는 학생, 새벽 일터에서 땀 흘렸을 상인들 모두 같은 표정으로 뉴스를 보고 있다. 그리고 얘기한다. 정치란 건 역시 몸서리치게 혐오스럽다고. 어떻게해서든 그들과 엮이고 싶지 않다고.
회의 도중 속보를 접한 국회는 괴상하리만큼 차갑게 얼어붙었다. 무고한 청년을 시퍼렇게 멍들도록 때려서 목숨까지 끊어버린 조폭이 대한민국에서 제일 큰 도시의 수장과 관련이 있다는 방송때문이었다. 그 기운이 채 가시지 않은 상태여서 분위기가 묘했다. 비통함과 애통함 그리고 간간이 섞여져 나오는 웅성거림과 탄식. 습도 높은 여름에도 건조하기만 한 국회 안에서 다들 갈길을 잃은 채 서성이고만 있다. 그러는 사이 키보드들은 여전히 음모론을 쏟아냈고, 누가 누구와 관련되어 있다는 추측과 의심섞인 활자들은 땔감이 되어 국회 주변으로 활활 불을 지폈다.
드루킹 수사, 정치인과 조폭 연루설 모든 것이 정치적인 게임이 된 지 오래다. 사건과 사고 사이에, 아들을 잃은 애비의 마음과 아비를 잃은 아들의 마음은 사라지고 없다. 사람의 행복을 추구한다는 정치가 서로를 비방하고 짓밟으며 누가 더 더러운가를 재는 진흙탕 싸움이 되어버린 책임을 누구에게 물을 수 있을까. 정치와 돈, 정치와 권력, 정치와 기업, 정치와 조폭. 여기에 밀폐된 공간과 녹음기와 돈가방과 술을 얹으면 한 편의 한국영화가 되는 풍토와 분위기를 언제까지 모른 척해야할까.
여의도에서 정치는 머릿수이고, 머릿수는 힘이며, 힘은 결국 돈이다. 모두를 잠재적 범죄자로 몰아버리는 돈 놓고 돈 먹기의 구조와 문화가 변하지 않으면 그 누구도 이재명이 노회찬이 될 수 있었다. 그런데도 아무도 나서질 않는다. 지금 모든 사태를 촉발한 원인에 대해, 구체적인 해결방안에 대해 알면서도 침묵한다. 대신 이 게임에서 어떤 패가 유리하고 득이 될지를 재고 따지는 시간으로 돌입한 느낌이다.
법에서 말하는 선의와 악의는 착하고 나쁨의 뜻이 아니라고 했다. 선의는 법률행위를 함에 있어 '어떤 사정을 알지 못했다'는 것이고, 악의는 '어떤 사정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 말대로라면 정치자금법은 인간의 본성과 정치의 속성을 몰라서 만들어진 ‘선의로 포장된 지옥으로 가는 법’이었던 셈이다.
2004년, 오세훈 의원은 @후원회 행사 금지 @법인 단체 후원 금지 @모금 한도 제한 등을 내용으로 한 정치자금법을 발의, 재개정했다.
그걸 알면서도 정치인들은 장장 15년 가까이 시간을 끌어왔다. 입으로는 그놈의 오세훈 법 때문에 죽겠다고 하면서, 진짜로 죽어나가는 선후배 동료들 뒤에 숨어서는 나만은 들키지 않아 다행이라고 안도하면서.
지금 누굴 감옥에 가두고, 처벌하고 죄를 묻는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정치인과 국민 모두 정치와 돈의 현실에 보다 솔직해져야 할 때가 왔다. 정치에 필수적인 자금을 필요악으로 규정해 논의 자체를 불가능하게 할 것이 아니라 정치자금제도 개선과 비용 절감 방안들에 대해 좀 더 진척된 논의가 있어야 한다.
의협심과 정의감으로 똘똘 뭉친 정치 신인들이 변질되고 더러워져야만 성공할 수 있는 여의도의 문법을 이제는 바로 잡아야 한다.
시작은 국가와 이웃, 작게는 가족을 위하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여의도는 몸서리치게 차갑고 냉정한 곳이다. 급류에 휩쓸려 숨막혀하며 헤엄치고 있는데 어떤 손이 눈 앞에 보인다면 누군들 잡지 않으려 하겠는가. 하지만 그 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누구의 손인지 알았다면 놓아버렸어야 했다. 그렇지 못했던 안일함과 게으름과 비열함은 결코 변명되어질 수 없다.
극한으로 비열해진 정치인,
극단적인 선택을 한 정치인.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듯 끝도 아닐 것이다.
언제까지 이 악순환이 되풀이되어야 할까.
여의도의 퇴근 길,
팔팔 끓는 아스팔트 위
일몰의 하늘이 핏빛으로 물들어가고 있다.
끔찍하리만큼 뜨거운 2018년
이토록 등골이 서늘한 지옥이라니
참으로 잔인한 여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