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나를 다독이는 문장들

by 권도연


뒷자석에 앉자마자 깊은 한숨을 내쉬니 기사 아저씨가 백미러로 흘낏 보다 말을 건넸다.


“많이 힘들죠? 눈 좀 부쳐요.”


출근한 지 꼬박 13시간이 흘렀다. 바쁠 때마다 찾아왔던 손목 증후근이 또 재발한 모양이다. 가방 앞 섬을 여미는데 시큰거려 나도 모르게 신음 소리를 냈다.


오늘은 무척이나 힘이 들었다. 매일 매일의 일상이 쳇바퀴처럼 굴러가는 것도 견디기 힘들지만 순간 순간 긴장감이 몰려오는 시간들이 버겁고 숨가쁘다.


잠시 눈을 부쳤더니 실수했던 장면들만 떠오른다. 어떤 작가가 그랬지. 산다는건 언제나 뒤통수를 치는 거라고. 인생이란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어서 절대로 우리가 알게 앞통수를 치는 법이 없다고. 그러니 억울해 말라고.


근데 억울한 걸 어떡하냐. 이럴려고 공부한 거 아니고, 대학 간 거 아니고, 시험 본 거 아니고, 열심히 산 거 아닌데. 행복이란 것, 성공이란 것 별 거 아니라고 누구라도 말해줬더라면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나는 달라졌을까.


‘.... 진짜 너무 힘들어.’


친한 친구가 장문의 카톡을 보냈다. 힘들다는 문장 앞에 어떤 많은 글들이 잔뜩 붙여져 있었지만 읽지 않았다. 감성에 빠져서 출렁거린다고 친구의 마음이 사소로워진 것은 우울한 일이다.


아무 것도 보고 싶지 않아. 질끈 감은 눈 사이로 자동차 불빛이 찬란히 들어온다. 그 바람에 또 한번 핸드폰을 켠다. 메모장을 열었다. 허전하고 불만스럽고 결핍감이 느껴질 때마다 여는 나만의 문장들.


차곡차곡 쌓아놨더니 양이 제법이다. 옮겨 적다가 울컥하고 말았다. 나는.. 잘 하고 있는걸까.





1. 감정 소모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과 거리를 두어라. 너를 존중하고 대등하게 인정해주는 관계를 많이 만들어라.

2. 가만히 있지말고 너의 뇌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매일 매순간 선택하라. 지금 듣는 음악, 입에 넣는 음식, 대화를 나누는 상대. 무기력에 빠지지 마라.


3. 가족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회사 사람들과 보낸다. 그렇다고 착각은 놉, 그들은 철저히 남이다.


4. 왕따를 주도하는 사람은 평화를 참지 못하는 종특이다. 당신이 타깃이 되었는가? 참아라. 그(녀)는 또다른 타깃을 찾을 것이다. 무시가 최고다.

5. 내가 느끼는 것은 나만이 느끼는 것이 아니다. 자만하거나 속단하지 마라.

6. 마음 터놓을 진짜 내 사람 한 명 정도는 두자. 그(녀)는 벼랑 끝에 섰을때 정신적 지지와 위로가 되어 줄 것이다. 하지만 100% 기대는 금물. 당장 내일이라도 상황이나 관계에 따라 틀어질 수 있다는 생각은 하자. 님도 가족도, 남이 웬수가 될 수 있다.

7. 주변 사람들과 적당한 친분을 유지하고, 그들에 대한 객관적인 태도를 견지하자.

8. 최선을 다 하자. 그렇다고 나를 갈아 넣는 어리석음은 범하지 말자. 알아주는 사람 없다.


9. 성실함이 최고다. 지각만은 하지 말자. 일찍 출근해 손해보는 사람 못봤다.

10. 갚아야 할 돈은 알람을 걸어서라도 갚고 받아야 할 돈은 받자. 말하자니 쩨쩨하고, 숨기자니 옹졸해지는 기분이겠지만 이게 내 정신 건강에는 최선이다.

11. 지시 받은 일은 하는 시늉이라도 해라. “안된다” “불가능하다” 라는 나의 판단을 받으려고 시킨 게 아니다. 이후에 나의 차선책을 들이미는 게 낫다.


12. 말은 적을수록 좋다. 특히 가정사, 연애사, 병력 등은 절대 피할 것.

13. 회사에 장점이 하나라도 있다면 사직서는 접어두자. 생각보다 밖은 지옥이다.

14. 언젠가 다시 만날 사람이라면 마주 보고 얼굴 붉힐 일은 만들지 말자. 나중이 피곤하다.



한 무리의 교복입은 학생들이 우루루 쏟아져 나온다. 밤 열시가 넘은 시간. 아이들은 하루 종일 무엇을 생각하고 견뎠을까.



... 너는 자라 내가 되겠지.... 겨우 내가 되겠지.


하필.

떠오르는 문장이라는 게

이것뿐이구나.



미안해.

너희에게

그리고 나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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