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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리스 Aug 05. 2018

참을 수 없는 베스트셀러의 가벼움

표지가 예뻤다. 다이어리만한 크기에 활자도 별로 없고, 단락마다 등장하는 일러스트는 잔잔하게 흘렀다. 책의 작가는 인스타에서, 블로그에서 수십만 개의 좋아요를 받은, 인플루언서라고 적혀있었다.


베스트셀러 판매대에 꽂힌 책 몇 권을 꺼내다 자리에 앉았다.


...???


10분도 채 채우지 못하고 일어났다. 활자들이 뿜어내는 에세이 특유의 뽀송거림과 번들거림이 읽는 내내 몸 구석구석을 간지럽혔기 때문이다.


언젠가부터 서점가를 지배하는 책들은 힐링, 위로, 처세 등 몇 단어로 요약 가능해졌다. 사람들은 책을 정보와 지식의 도구라기보다 수집품이나 장식품의 용도로 구매한다. 이에 발 맞춰 출판업계는 SNS 인플루언서들의 작가를 발굴해 비슷비슷한 에세이들을 찍어내느라 분주하다. 푸우의 얼굴을 표지에 담고, 빨간머리 앤의 삽화를 빌려서 파스텔 톤으로 선물 포장한 책들은 액세서리처럼 팔린다.  



 “古之學者爲己, 今之學者爲人.”
 
“옛날에 공부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수양을 위해 했는데, 오늘날 공부하는 사람들은 남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한다.”


수 천년전 공자의 말씀은 여전히 유효하다. 아니, 오늘날은 공부조차 하지 않으니 수정해야 한다.


“오늘날 공부하는 사람들은.  없다.’


주변을 둘러보니 독서가보다는 독폰(phone)가가 다수다. 책을 읽다가도 무언가를 검색하느라, 책의 표지를, 특정 문구를 사진 찍고 어디엔가 옮기느라 바쁘다.   


#베스트셀러, #주말일상, #독서.


보정한 사진들에는 해시태그가 달린다. 올린 사람도, 좋아요를 누른 사람도 책 한권 읽은 뿌듯함을 공유할 것이었다.



누구를 비난하거나 건방지게 비꼬자는 게 아니다. 책 표지와 문구 사진이 가득한 인스타그램을 보면서 갑갑증을 느껴서다. 수 백, 수 천개의 사진들이 너도나도 아우성을 치는 것 같아서 귀를 막고 싶은

심정에 적고 있다.


“나는 이렇게 잘 살고 있다.”

“나는 베스트셀러를 읽었다.”

“나는 이렇게 똑똑하다.”


x세대, y세대. 이제는 인증세대다.


찍어서, 올려서, 좋아요를 눌러 얻은 그 만족감이 진심으로 갈구하고자하는 심리적, 감정적 지원은 아닐 것이다. 좋아요 수가 늘어날 수록 기분이 들뜨고 충만해진 느낌이 들었겠지만 그것은 분명 착각이다. 거짓 행복은 시간이 지나면 열등감과 박탈감으로 남는다. 그리고 이놈의 부정적인 감정들은 결국 나를 갉아먹고 소모시킨다.


하지만 사회는 그런 우리들을 더한 구석으로 몰아세운다. 자신에 대한 성찰이나 진지한 고민을

어렵게 하는 피로사회가 새로운 세계에 대한 호기심마저 거세시키고 있는 것이다.


쉬운 것이 좋은 것이 되어버렸다. 비판적 지성은 고리타분한 이상주의로 전락했다. 그렇게 사유의 종말이 시작되고 있다.

인증의 시대.

남에게 인정받기 위해 읽은 책에서 무엇을 느끼고 얻을 수 있을까.


읽지 않는 사람들 틈에서

책이, 독서가

그럴 듯해 보이고, 있어보이는 듯한 과장된 수다를 기록하는 수단으로 전락해 버릴까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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