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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리스 Aug 06. 2018

닥치고 정치? 닥치고 반성!



김어준의 블랙하우스가 종영했다.  


방송 내내 편파 방송이란 시비가 일었고, 정봉주 전 의원을 옹호하다가 중징계를 받기도 했지만 당사자인 그는 변명조차 하지 않았다. 신기한 것은 아무도 그에게 그걸 강요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묻지 않으니 당연히 그는 하고 싶은 말만 했다. 목요일 밤마다 문을 열던 검은집은 닫았지만 매일 아침 그가 여는 공장은 힘차게 돌아갈 것이다. 그의 거친 입담과 아니면 말고식의 공중전, 음모와 사실을 교묘히 줄타기 하는 수법을 자양분 삼아. 아주 격렬하게.


처음에, 공중파 방송에서 그것도 그의 이름이 걸린 시사 프로그램이 생겼다는 것에 나는 큰 충격을 받았었다. 주진우 기자의 등장과 방송인 김제동의 신파 방송 2탄은 2연타.


정권이 바뀌긴 했구나. 라며 바뀐 세상에 씁쓸했더랬다. 그래서 모니터링도 열심히 했다.



역시 소문난 잔칫상엔 먹을 것이 많았다. 방송은 감각적이고 오락적이었다. 같은 편끼리의 공감대와 연대의식도 강했다. 시청자가 듣고 싶어하고, 보고 싶어하는 이야기를 기자, 교수, 연구원이라는 이름을 빌려 쉽게 썰을 풀었다. 보수, 진보 한 마디씩 하게 하는 썰전의 기계적 중립도 따르지 않았다. 그저 질문을 던지고, 되물었다. 너도 같은 생각이지? 아니야? 그럼 이건 어때? 맞지? 그렇다면 닥치고 go go.


하지만 김어준에게도 예외는 있었다. 그는 막말, 조폭 논란에 휩싸인 이재명 경기도지사에 대해서는 입을 굳게 닫았다. 나는 이러한 성향을 운동권 출신 민주당 의원들에게서 발견하곤 했다. 우리편이라면 목숨을 걸고서라도 지켜주는 사나이의 의리(?)랄까.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사실이냐 아니냐가 아니었다. 믿느냐 믿지 않느냐가 전부다. 만약 의심한다면? 바로 퇴출이다. 의심은 조직을 깨는 적이자 악이다.


블랙하우스에 등장한 개그맨의 인터뷰는 그가 몇 년동안 유행어로 줄기차게 밀어 온 ‘다스는 누구꺼’를 대국민화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아닌 밤중에 대법원장의 집까지 찾아가 벨을 누르고 국회에 들어가 '몇명을 꽂아줬냐'며 따라다닌 것은 도가 지나쳤다. 표현의 자유는 중요하지만 그 전에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거나 해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원칙은 지켜져야 했다.


물론 권력 없는 사람들이 권력에 대항할 수 있는 수단으로서 조롱과 풍자를 활용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방송인 김어준은 이미 권력자다. 공중파

방송에서 자신의 이름을 건 시사 프로그램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특권이다. 그러니 조심했어야 했다.  마이크를 쥔 자신이 던지는 돌직구와 일명 '쿨'한 행동은 바로 정의로 연결되지 않는다. 이미 그놈의 ‘쿨’한 정의감은 여러 번 심판대에 올려졌다. 미투 운동을 공작설로, 혜화역 시위를 이상한 모임으로 비웃고 희롱한 그에게서 사람들은 물음표를 찍기 시작한 것이다.



제 2의 김어준은 또 나올 것이다



모든 것이 예능화가 된 시대다. 좀 더 쉽게, 좀 더 재미있게 세상을 이해하고 싶은 사람들은 유명인의 입을 통해 듣고 보고 배우고 있다. 유명인은 그 유명세를 이용해 사실을 노골적으로 부정하면서 외친다. 나를 지지하는가? 그럼 나를 믿어라. 나는 완전체다! (응?)


추종자들은 그 피리부는 사나이를 따라 가면서 주위을 둘러보려 하지 않는다. 바로 옆에 명백한 증거가 있고 증인이 있어도 줄 맨 앞에 선 그 분이 그럴 리가 없다고 맹신한다. 한번 쯤은 뭐, 그럴수도 있지. 라며


정치는 쇼나 비즈니스가 아니다. 차별적 발언과 무례함이 재미와 솔직함으로 포장되는 한 정치와 상식의 자리에는 회의와 냉소, 환멸만 남을 뿐이다. 그리고 그 피해는 오롯이 우리에게 전가될 것이다.


그가 그랬다, 닥치고 정치.

그에게 말하고 싶다, 닥치고 반성하세요.



#메인 이미지: 네이버 이말년 웹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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