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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늦으면 어떡해? 혼나면 어떡해?

<너는 나처럼 살지 마>

by 권도연

올해 2월, 라라의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엄마가 내게 물었다.

“한 달이라도 휴직 못 내니?”
“왜?”
“애 학교 적응할 때까지 곁에서 좀 지켜보는 게 어떨까 해서.”
“그렇게까지?”
“난생처음 학교란 델 가는 건데. 엄마가 집에 있으면 정서적으로 좀 안정되지 않겠어?”
“라라는 괜찮아.”
“글쎄. 너도 잘 알겠지만 라라는 너랑 굉장히 비슷해. 기억 안 나? 너 1학년 때 어땠는지?”

엄마의 말 한마디에 잊고 있던 기억들이 떠올랐다.
그때의 불안, 두려움, 긴장감까지.
새로운 교실, 새로운 친구, 새로운 규칙. 생각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입 안이 바짝 말랐다. 나는 입학을 앞두고 근 두 달간 이상 증세를 겪었다. 화장실을 다녀와도 계속 소변이 마려운 느낌. 방광염 같은 염증이 아닌, 완벽한 심리적 문제였다. 그때는 지금처럼 소아 정신과라든가 아이의 기질이나 스트레스 내성에 관해 다들 무지했던 때였기 때문에 동네 내과만 들락날락했다.

1시간에 적어도 10번 꼴로 화장실에 가야 하는 빈뇨 증상은 생애 첫 봄소풍날까지도 계속되었다. 엄마는 평소 내가 사달라고 졸랐던, 하지만 사주지 못했던 각종 과자와 초콜릿 등을 가방에 챙겨 넣으며 내 눈치를 봤다. 혹여 내가 가지 않겠다고 울며불며 떼를 쓸까 봐. 하지만 나는 칭얼댈 지언 정 드러눕고 안 가겠다고 떼쓰는 성정은 아니었다. 걱정도 많고 겁도 많은 아이였다. 나에게 학교란, 절대 지각해서도 빼먹어서도 안 되는 곳이어서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져도 꼭 가야 하는 곳이었다.

하지만 나는 결국, 운동장에 세워진 전세버스에 올랐다가 출발 직전 선생님을 불러 울먹였다.

“저 화장실에 가도 돼요?”

담임 선생님은 어린아이들을 엄마처럼 세심히 살펴주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나에게 교실에서도 뒷문의 가장 가까운 곳에 자리를 배정해 주고 손을 들지 않아도 자유롭게 화장실을 갈 수 있게 해 줬다. 그런 스승이었으니 소풍날까지도 기어이 자신의 마음을 어쩌지 못하는 어린 학생에게 귓속말로 속삭일 뿐, 화를 내거나 당황스러운 티조차 내지 않았다. 괜찮아, 친구들한테는 집에 키우는 강아지가 아파서 가봐야 한다고 얘기해 둘게. 하얀 거짓말이 섞인 배려였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운동장 끝에서 기다리고 섰던 엄마가 뛰어왔다. 드넓은 운동장에 숨이 막히도록 날 안아주는 엄마와 나만 남았다.

“김밥은 집에 가서 엄마랑 까먹자. 과자도 우리끼리 다 까먹자!”

귀에 대고 속삭이던 엄마의 목소리를 기억한다. 동시에 엄마의 어깨너머로 차창 너머로 손 흔드는 친구들의 얼굴도. 내 마음에는 제어할 수 없는 증상에 대한 억울함과 대열에서 이탈해 버렸다는 스스로에 대한 실망감과 열패감이 깊게 남았다.








결국 나는 남아 있던 육아휴직 9개월 중 한 달을 아이 입학이 시작되는 3월에 쓰기로 했다. 말이 휴직이지, 실제로는 일할 때보다 더 바쁘고 정신없는 한 달이었다.

아이의 등교, 돌봄, 방과 후, 학원 시간표를 확인하고 등록하며 짜는 것은 생각보다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시간표의 최종 목표는 나의 퇴근 시간과 라라의 하원 시간을 딱 맞추는 것. 문제는 학원이란 게 시간이 맞다고 무작정 등록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고, 아이가 좋아해야 하고 학원비도 예산에 맞아야 했으며, 무엇보다 그 시간 대에 등록이 가능해야 했다. 워킹맘들의 처지는 대부분이 비슷해서 원하는 시간대가 거의 같았다. 그래서 맘카페에서 평이 좋거나 엄마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난 학원은 대기를 해야 하거나 등록 자체가 불가했다. 그래서 결국 울며 겨자 먹기로 ‘비싸고 사실은 필요 없는, 이런 걸 학원에서 배워야 해? 싶은’ 독서 학원, 줄넘기 학원을 등록했다. 이후에는 아이의 이동 시간, 아이의 동선을 계산해 걸리는 시간을 끼워 맞춰 테트리스 하듯 월화수목금요일의 시간표를 완성했다.

아니, 완성은 기어이 못했다. 아무리 맞춰봐도 안 되는 시간대가 있었다. 결국 상가 학원이 아닌 아이의 숙제를 봐주는 공부방을 등록했다. 문제는 이동이었다. 상가에서 공부방까지 라라의 걸음으로 약 7분. 그 사이에 차가 다니는 도로가 두 번 나타난다는 것이 나를 긴장하게 했다.


시간이 날 때마다 라라와 길 건너는 연습을 했다.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라 손을 들어 재 빨리 건너는 방법이 유일했다. 라라는 차가 지나가지 않는 타이밍을 잡는 순간을 어려워했다. 어린이 보호 구역이라 차들은 30킬로 이내로 서행했지만 라라는 무서워했다. 보도블록에서 다리 하나를 내려놓다가 올렸다가를 수십 번. 5분을 넘게 지체하고서는 결국 내게 SOS를 쳤다.

복직을 일주일 앞둔 날 밤, 라라는 종일 내게 매달려 물음표 괴물이 됐다. “엄마 언제 회사 가?”, “나 언제부터 혼자 가야 해?”를 연발하더니, 결국 출근 전날 배가 아프다며 데굴데굴 구르기까지 했다.

“엄마, 나 걸어가다가 차에 부딪히면 어떡하지?”
“공부방 엘리베이터에 사람 많아서 못 내리면?”
“늦으면 선생님이 뭐라고 하겠지?”

배가 아프다면서 묻고 또 물었다. 나는 아이를 달래다 라라의 손가락을 보게 됐다. 열 손가락 모두 손톱 주변의 살들이 뭉개져있었다. 물어뜯고 또 물어뜯은 자리에는 피가 고여 있었다.

이런 것까지 닮으면 어떡하니 너.


라라의 나이에 내가 겪은 건 빈뇨 증상만이 아니었다. 두통과 어지럼증, 속 울렁거림으로 반년 넘게 병원을 들락거렸다. 거금을 들여 MRI까지 찍었지만 뭐가 나올 리 있나. 자포자기한 마음으로 들른 동네 병원 의사가 나의 병명을 찾아냈다. 그는 볼펜을 톡톡 돌리는 버릇이 있는 의사였는데 그는 내게 청진기를 몇 번 대더니 방긋 웃으며 말했다. 너, 내 딸이랑 증상이 똑같다야. 이제 아저씨 보러 오지 마. 넌 아픈 게 아니야. 약 안 먹어도 돼.

의사는 엄마에게 과도한 긴장과 스트레스, ‘스스로를 지킬 수 없다’는 신호가 가져온 마음의 병이라고 했다. 심리학을 공부하면서 알게 된 병명(이라고는 할 수 없는)은 ‘신체화(somatization)’ 증상이다.

‘만약 ~하면 어떡하지?’ 생각의 특징은 계속 반복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생각은 처음에는 자신을 통제하려는 시도로 시작되지만, 반복하면 할수록 불안을 키우는 독약이 된다.

독약으로까지 독해 지지 않는 방법은 그 감정 그대로를 읽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가르쳐 주는 것이다.

요즘 유행하는 수용전념치료(ACT) 법이다.

'긴장하지 말자, 불안해하지 말자.' 하면서 감정을 벗어나려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긴장을 하고 있네! 불안해하고 있네!'식으로 감정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 감정이 일어났다가 자연스럽게 지나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거다. 감정 그 자체에 매몰되지 않고 자신의 마음을 관찰하게 하는 것이 최선이다. (사실 이건 어른들도 하기 힘들다.)




<불안과 걱정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그려보기>




복귀 이틀 전, 나는 라라에게 혼자 공부방까지 가는 길을 말로 이야기해 보자고 했다.

“자, 피아노 학원 문을 열고 나왔어. 그다음엔?”

모호한 상상은 불안을 더욱 키운다. 그래서 나는 라라의 걱정을 구체적인 상황으로 그려내고, 그에 대한 해결 방법을 함께 상상해 보기로 했다.

“라라가 길을 건너는데 차가 막 달려오면 어떻게 할 거야?”
“기다려야지. 근데 차가 계속 오면 어떻게 해?”
“사람들이 많을 때 같이 건너면 돼. 엄마랑 여러 번 해봤잖아. 기억나지?”
“길을 건넜는데 갑자기 화장실 가고 싶으면? 그래서 늦으면 선생님한테 혼나겠지?”
“가는 길에 피트니스센터 화장실 있잖아. 가방 안에 엄마가 늘 휴지 넣어 놓잖아. 그거 꺼내 써. 늦어도 돼. 공부방은 지각해도 돼. 엄마가 선생님한테 미리 말해 놨어.”



복귀를 하루 앞두고서는 라라 몰래 뒤를 밟았다.
피아노 학원을 마친 라라가 작은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걸어가는 게 보였다. 하교하는 아이들, 엄마 손을 잡고 깔깔대는 친구들 사이를 혼자서 가는 아이 뒷모습에 그만 코끝이 시큰해졌다. 돈 몇 푼 벌자고 저렇게 어린 걸 놔두고 일하러 가야 하나 싶어 자괴감이 들었다.

찻길에서 라라가 멈칫할 때, 나도 같이 멈칫했다. 라라는 역시나 보도블록을 내려오지 못하고 서성이기만 했다. 1분, 2분이 지체되자 내 마음이 더 급해졌다. 에라 모르겠다. 아이에게 뛰어가려는데 아들과 길을 건너던 아빠가 라라에게 손짓했다. 얘, 같이 가자.

라라가 뛰자 아이 키만 한 가방이 등에서 위아래로 세차게 흔들렸다. 아이가 이렇게 작았나 싶어 또 한 번 시큰.
라라는 그렇게 무사히 공부방에 도착했다. 라라가 눈앞에서 사라지고 나서야 식은땀으로 축축한 손이 느껴졌다.






“오늘 어땠어? 할 만했지?”

공부방에서 나오는 라라를 꼭 안아주며 물었지만 라라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별것 아니었다고, 괜찮았다고 말해주길 기대했지만 아이는 그저 눈만 깜박였다. 나는 기다렸다.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싶을 때 하길 바랐다. 잠자리에 누워서야 라라는 입을 열었다.

“나는 엄마, 늦는 게 제일 무서워.”
“늦어도 괜찮아. 공부방 선생님한테 라라 늦을 수도 있다고 얘기해 뒀어.”
“그래도 싫어.”
"음, 근데 엄마도 진짜 싫어."

진심이다.

난 지각이 싫다. 그리고 무섭다.

“엄마 초등학교 때 별명이 뭐였는 줄 알아? 주번! 주번이 뭐냐면 1주일에 한 번씩 돌아가면서 아침에 일찍 등교해서 자물쇠로 문도 따고, 칠판지우개도 털고, 수업 준비도 하는 사람인데, 엄만 1학년 때 내내 주번보다 먼저 등교해서 다들 나보고 권주번이라고 했어. 웃기지.”
크크크. 웃겨. 근데 엄마 지금도 아침에 엄청 일찍 일어나잖아.”
“맞아. 엄마 비밀도 하나 알려줄게. 엄마한테 가장 무서운 꿈은 지각하는 꿈이다? 지금도 가끔 회사 지각하는 꿈, 학교 지각하는 꿈 꿔.”
“정말?”

라라는 소리 내 깔깔 웃어댔다. 그래, 네가 행복하다면야.

근데 라라야.

싫어하는 건 안 하는 게 맞아. 근데 그게 날 너무 힘들 게 하면 그때는 그냥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는 것도 괜찮아. 왜냐하면 세상엔 너보다 중요한 게 없거든. '지각 안 하는 루루'보다 엄마는 '지각하는 라라'가 더 소중해. 왜냐면 넌 이 세상에 하나뿐인 내 딸이니까.

며칠 후, 라라는 내게 깡충깡충 뛰며 말했다.

“엄마, 오늘은 조금 더 빨리 걸었더니 공부방 선생님이 일찍 왔다고 선물 줬어.”

드디어 아이의 마음에 똬리를 틀고 있는 불안과 걱정의 불씨들이 사그라들고 있다. 이제 그 자리를 작은 성취감들 차곡차곡 채울 차례다. 나는, 아이를 위해 또 어떤 시간표를 짜줄 수 있을까.



<엄마의 마음, 에필로그처럼>


라라야, 엄마는 네가 혼자 하교하던 날의 마음을 알아. 얼마나 긴장되고 두렵고 혼란스러웠을지. 그리고 지금까지 해낸 네가 얼마나 큰 용기를 낸 건지. 아주 많이 칭찬해.


이제 앞으로 혼자 겪어야 할 일이 많을 거야. 틀릴 수도 있고 헤맬 수도 있고 늦을 수도 있어. 뭐든 상관없어.
늦는다고 세상이 무너지진 않아. 완벽하지 않아도 네가 최선을 다했다면 그걸로 충분해. 세상은 생각보다 크고 넓거든. 그러니 하나씩 하나하나 천천히 익혀가면 되는 거야.

엄마가 곁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네가 올 때까지, 네가 세상에 익숙해질 때까지 엄마가 너의 뒤에 늘 있을게. 그러니까 불안해하지도, 걱정하지도 마.


까짓것, 해보면 다 별거 아니야.

지각도 해보니까 별 거 없더라고.


파이팅, 우리 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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