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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난 이런데, 쟨 왜?

<너는 나처럼 살지 마>

by 권도연

일부러 찾아봤던 것은 아니었다.

최근 결혼을 앞둔 친구의 소식을 듣고 웨딩 스냅이 공유된 인스타그램을 보다 우연히 발견했을 뿐이었다.


그녀는 나의 단짝이었다. 서로 1,2등을 다투던 사이였고 반장, 부반장으로도 어울렸으며 지금 내 인생에 영향을 가장 많이 준 영화를 몰래 본 것도 그녀의 집이었다. 그러다 내가 외고를 지원해 가게 되고 그녀가 일반 고등학교를 가면서 연락이 뜸해졌는데, 서로 소원해진 정확한 계기는 여전히 모른다. 나는 외고에서 경쟁과 압박감에 자퇴를 결심할 정도로 심한 방황을 하면서 그녀를 자주 떠올렸었다.

보고 싶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녀를 섭섭하게 했나, 아니면 말실수를 했나 싶어 과거를 반추하고 자책도 해봤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그 후 각종 동창회와 친구들의 연락이 있었지만 그녀의 소식은 어디에서도 듣지 못했다. 그러다 그녀의 사진을 우연히 보았으니 반가운 마음과 설렘, 호기심이 일러 한참을 들여다봤더랬다.


참 잘 살고 있었다. 좋은 집에, 좋은 차에, 좋은 직업. 나는 그저 평범하다 못해 평균 이하의 집에, 차에, 직업을 가지고 있는데. 결국 점점 굳어지는 얼굴을 숨기지 못하고 폰을 닫았다.


“엄마, 나는 예지보다 줄넘기도 못하고 그림도 못 그려.”


라라가 밥을 먹다 한숨을 쉬며 말을 던졌다. 밥 먹기 전에는 점심을 싹싹 긁어먹었고 선생님이 자신을 채소왕이라고 칭찬했다며 들떠 있더니 지금은 세상 다 잃은 표정이다.


“그래도 넌 채소를 잘 먹잖아.”

“그러면 뭐 해. 예지보다 줄넘기도 못하고 그림도 못 그리는데. 나 이제 채소 안 먹을 거야. 다 소용없어.”


말문이 막혔다. 채소를 안 먹겠다는 아이의 말 때문이 아니라 나 때문이다.

나, 방금도 내년 사업 계획을 짜다가 이게 무슨 소용이냐며 누구는 피부과 의사하면서 일주일에 두 번이나 마음대로 쉬고 벤틀리를 몰고 비행기는 1등석에 목에는 다이아 목걸이를 칭칭 감고 있는데. 방금도 알아보니 강남 피부과 의사는 한 달에 몇 천을 번다는데. 열심히 살면 뭐 하나. 누구는 가만히 있어도 강남 집 값이 1년에 5억 이상이 뛰는데, 열심히 일하고 발품 팔고 땀 흘려봤자 강남 집 없는 난 1억 도 손에 쥐기 힘든데. 다 소용없어.라고 했단 말이지.


그렇다고 아이한테 ‘그래, 인생 별 거 없더라. 하고 싶은 거 먹고 싶은 거만 해도 부족한 게 인생이다. 다 너 마음대로 하거라’ 할 순 없지 않은가.




<난 이런데, 왜 쟨?>



성장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사회심리학자 레온 페스팅어(Festinger)는 이미 1950년대에 사회적 비교 이론(social comparison theory)을 제시해 인간은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 자신을 이해하고 자신의 위치를 확인한다고 쓴 바 있다.


특히 초등학교 저학년 무렵은 자기 개념(self-concept)이 빠르게 확장되는 시기다. 이전까지는 단순히 “나는 누구인가”라는 정체성의 틀에서 머물렀다면, 이제는 “나는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못하는가”를 조금씩 인식하기 시작한다.


이 시기에 아이들은 운동회 달리기, 미술 시간 그림, 음악 시간 노래처럼 눈으로 확인 가능한 능력을 기준으로 자신을 가늠한다. 그리고 친구와 자신을 저울질한다.


“나는 친구보다 줄넘기를 잘 못해.”

“나는 그림을 못 그려.”


이런 말은 단순한 사실 진술이 아니다. 아이는 이 비교 속에서 자신의 가치를 재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여기서 위험한 사고로 빠질 수 있다는 점이다. 만약 아이가 ‘고정형 사고(fixed mindset)’에 갇히게 된다면, ‘나는 원래 못하는 아이야’라는 결론을 내리고 더 이상 시도하지 않으려 할 수 있다. 이는 자존감을 갉아먹고, 도전 자체를 포기하는 태도로 이어질 수 있다. 반대로 이 과정을 잘 이끌어주면 ‘아직은 못하지만 더 나아질 수 있다’는 믿음을 키우게 된다. 부모의 개입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많은 부모들이 이런 상황에서 즉각적으로 해줄 수 있는 말은 크게 두 가지일 것이다.


1. 부정하기 – “아니야, 너도 잘해.”

2. 다른 장점 제시하기 – “괜찮아, 그래도 넌 공부를 잘하잖아.”


이 반응들은 순간적으로는 아이를 위로할 수 있다. 그러나 심리학적으로 보면 몇 가지 한계를 가진다.


첫째, 비교의 틀을 유지한 채 다른 비교 대상으로 넘어간다는 점이다. “너도 잘해”라는 말은 여전히 잘해야 한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다른 걸 잘하잖아”라는 말 역시 줄넘기와 그림 대신 공부라는 또 다른 경쟁 영역을 들이밀 뿐이다. 결국 아이는 ‘어디선가는 잘해야 한다’는 압박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둘째, 이런 위로는 아이가 느끼는 감정을 제대로 인정하지 않는다. 아이가 실제로 느끼는 좌절이나 슬픔은 ‘네가 더 잘하니까 괜찮아’라는 말속에서 덮여버린다. 감정은 사라지지 않고, 단지 눌러 담긴다.

그래서 이 말이 반복될 경우 아이는 부모의 위로를 공허한 말로 여기게 된다. 엄마는 ‘내 마음을 모르고 그냥 나 기분 좋으라고 하는 말을 할 뿐이다’라는 인식이 자리 잡으면 오히려 아이와 부모 사이의 신뢰가 약해질 수 있다.


따라서 부모의 즉각적 위로보다 중요한 것은, 아이가 비교에서 벗어나 자기 성장의 관점으로 이동하도록 돕는 것이어야 한다.




<줄넘기를 엄마랑 한 번 해볼까?>



이 지점에서 심리학자 캐럴 드웩(Carol Dweck)의 성장 마인드셋(growth mindset) 개념이 유용하다. 드웩은 아이들이 실패를 해석하는 방식이 장기적인 학습과 성취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보았다.


고정형 사고(fixed mindset): “나는 원래 못하는 아이야.”

성장형 사고(growth mindset): “나는 아직 못하지만, 노력하면 나아질 수 있어.”


부모가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이 ‘아직(not yet)’의 관점을 심어주는 것이다. 줄넘기를 못한다고 말하는 아이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지금은 줄넘기가 어려울 수 있어. 하지만 연습하다 보면 조금씩 늘 거야. 네 몸이 배우고 있는 중이야.”


이런 대답은 아이가 자신의 현재 상태를 인정하면서도 그것을 고정된 한계가 아닌 발전의 가능성으로 보도록 만든다.


앨버트 반두라(Albert Bandura)의 자기 효능감(self-efficacy) 개념 역시 생각해 볼 수 있다. 자기 효능감은 ‘나는 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이 믿음은 단순히 말로 생기지 않는다. 작은 성취 경험이 쌓일 때 강화된다.

예컨대 줄넘기를 한 번도 못하던 아이가 세 번, 다섯 번, 열 번으로 점점 늘려가는 과정을 경험하면 줄넘기를 잘하는 것보다 더 큰 의미를 얻게 된다. ‘나는 못하는 아이’가 아니라 ‘나는 배우는 아이’라는 자기 인식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결국, 나는 라라를 데리고 공터에 가서 20년 만에 줄넘기를 해야 했고, 몇 번이고 걸려 넘어지는 몸개그를 선보이다 동네 주민들에게 큰 웃음을 주었다.

출퇴근 길 걷는 것 외에 운동을 전혀 하지 않던 근육을 오랜만에 태우고 나니 머리가 맑아지는 것은 덤, 라라와 기분 좋게 깔깔대며 땀을 흘리는 동안 친구의 화려한 사진을 떠올리지 않은 것도 덤이라면 덤이었다.




<우리 라라는 상상력이 풍부해. (엄만… 뭘 잘하지?)>



하워드 가드너(Howard Gardner)의 다중지능이론(multiple intelligences theory)에 따르면, 인간의 능력은 단일한 지능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언어 지능, 논리-수학 지능, 음악 지능, 신체-운동 지능, 공간 지능, 대인관계 지능, 자기 이해 지능, 자연탐구 지능 등 다양한 형태가 있다.


그걸 알면서도 아이를 키우는 부모 입장에서는 아이가 다른 아이보다 뒤처지거나 부족한 것이 보이면 속상하고 화도 난다. 생각해 보니, 예지의 그림을 보고 '어머 예지 그림 진짜 잘 그린다~!'라고 한 게 나다!

똑같은 사물을 보고서도 예지는 그럴듯하고 비슷하게 흉내를 냈다만 라라는 콜라캔이 아니라 시나모롤 모자 같은 걸을 그려놨길래 깔깔대기까지 했다. 라라가 속이 상했겠다. 엄마는 친구 예지 그림을 보고 감탄까지 하다니. 반성한다.

나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아이들의 그림이 전시된 학원 어플을 열어 라라가 그린 콜라캔 스케치를 들여다봤다.


"음.. 우리 라라 그림을 다시 보니까 우리 라라는 상상력이 정말 풍부해. 진짜 최고야."


만회가 될까.

라라는 뜬금없는 엄마 칭찬에도 활짝 웃는다. 된다, 만회가 되었다.


"진짜? 콜라캔을 보니까 시나모롤 하고 마이멜로디랑 쿠로미가 콜라캔 주변에서 춤추던 유튜브가 생각이 나더라고. 그래서 그렸지!"


콜라캔을 그리란 것이 선생님의 지시였을 텐데. 그래도, 뭐. 변기를 예술 작품이라고 했던 마르셸 뒤샹이 예술엔 정답이 없다고 했으니까.


“생각해 보니까 라라 너는 만들기도 참 잘해. 아까도 종이로 너만의 핸드폰을 만들고 보석 꾸미도 얼마나 잘했니. 그리고 질문도 참 잘해. 독서학원 선생님이 라라보고 호기심이 많아서 더 똑똑해질 거라고 했다며. 엄만 그 칭찬이 정말 좋았어.”


그 외에도 나는 책상 정리 잘하는 라라, 머리카락을 잘 발견하는 라라, 방귀를 잘 뀌는 라라 등을 예로 들며 칭찬했다. 부디 라라가 자신이 가진 다양한 능력을 깨닫길 바라면서.

21세기,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어른들은 너무나 자주 체감하고 있지 않은가.

무엇이든 하나라도 잘하면 성공한다. 스케이트의 김연아, 축구의 손흥민, 인간 모사의 이수지.




<에필로그처럼 쓰는 엄마의 마음>



생각해 보면 라라야 세상엔 엄청 대단한 사람들이 많잖아.

네가 좋아하는 백희나 작가님도, 엄마가 좋아하는 오바마 할아버지도 얼마나 멋있고 훌륭하니.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서 내가 더 낫네, 쟤가 더 낫네 하는 건 시간을 낭비하는 일인 것이 분명하다는 게 엄마 생각이야.

왜냐하면 라라가 예지보다 뛰어나더라도 가령이 보다 뛰어나지 않은 분야도 있을 거고. 가령이는 예지보다 뛰어나더라도 우리 라라보다 뛰어나지 않은 것들도 있을 거니까.

이건 꼭 라라가 싫어하는 미로 같지 않아? 탈출구를 찾기 힘든, 계속 헤매야만 하는. 얼마나 괴롭겠어.

미로에 가지 않더라도 가는 길이 이렇게 많은데 왜 가야 해?

나라면 그냥 미로 속에 들어가지 않고, 잘 보이는 길에서 너랑 같이 손 잡고 쎄쎄쎄도 하면서 걸을래.


엄만 네가 말한 대로 ‘네 이야기를 세상에서 제일 잘 들어주는 세계 최고’ 엄마가 되었어.

라라는 아직 안 해본 게 많으니까 하나하나 해보면서 세계 최고인 걸 찾아보자.

누가 아니, 우리 라라가 세계 최고 질문왕이 될지.


근데 이미 넌 엄마에게 세계 최고야.

세계 최고로 소중하고 예쁜 딸.

그 딸을 가진 엄마도 세계 최고가 되었네!

다 너 덕분이야. 고마워. 라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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