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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리스 May 01. 2019

심장이 딱딱해졌으면 좋겠어

유리멘탈 직장인

삼순이는 삼식이 때문이었지만

나는 아니었다.


붉어지는 얼굴색을

두근거리는 이 심장을

저승사자에게라도 팔아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인간관계가 이토록 어렵고 까다로운 문제인 줄 알았다면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내내 이 공부만 했을 거였다. 근데 왜!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은 것일까. 세상엔 내 편보다 네 편이 많고, 그 네 편들은 곳곳에 숨어서 언제든 너를 위협할 수 있다는 것을. 그들은 지뢰와도 같아서 지금 내가 딛고 있는 발밑에 포진해 있다가 발을 떼는 순간 화들짝. 펑. 사망하셨습니다... 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간에게 데인 상처는 역시 잘 낫질 않았다.


애초에 잘 모르는 사람이었으니 툭 하고 먼지 털듯 털어내면 될 일이었다. 그런데


잘 안된다.


어차피 내 인생에 단 한 톨의 영향력도 끼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몇 번이나 되뇌었지만 이놈의 약해빠진 심장은 좀처럼 무뎌지지가 않는다. Jenjang.


으으윽


2019년 4월.

나는 지금 무례한 사람을 견뎌내는 중이다.


나는 그저 좋게좋게 하고 싶었다.

좋은게 좋은거라고 라는 말을 제일 좋아했으니

늘 그래왔다.

그런데 돌아오는 건 무례함이었다.

쉬워보이고 만만해보이니

쉽게 휘둘리고 쉽게 코너로 몰렸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던 연약한 욕망이 철저하게 이용당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사회생활은 일을 해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견디는 일이라는 말은 진리였다.


일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사람이 어려운 것이라는 말만큼 맞는 말은 없다.


낯선 사람들과 하얗게 불태운 아침과 점심, 오후가 지나 혼자 견디고 버텨야 하는 시간이 남으면

그제서야 하루종일 묻어뒀던 감정들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억울함, 답답함, 분노, 실망감 등의  열감이 번갈아가며 가슴을 치다보면 이미 시계는 자정을 넘어가고 있었다.


자야한다.


의무감에 누워서 눈을 감았다. 그러나 예상하다시피

잠은 오지 않는다. 그러니 마지막에 남는 건 ‘나’와 나를 괴롭히는 감정뿐이다.

이 마지막 감정이란 건 안으로 파고드는 성질이 있다. 책임과 원인의 화살이 쏘는건 결국 나. 나뿐이다.


내가 못나서 그래.

그러니 견뎌.


영민하게 굴어야 했다. 최대한 냉정하게 감정은 배제하고.


그런데 돌아보면 또

또.

또 덫에 빠지고 만다.


이리휘청 저리휘청  

사냥꾼의 덫에 걸려 엉켜버리고

그의 페이스에 말려 휘청대느라

온몸이 너덜너덜해졌다.

머릿속이 헝클어져버렸다.


“내가 그렇게 우스워.”


맥주 한 캔을 톡 따 놓고, 이미 꼬인 진미채를 손으로 꼬다가 번뜩. 그를 이해해 보기로 했다. 그러면 좀 위로가 되지 않을까 하면서.



자신의 결핍과 공허를 채우기 위해 한국인이 가장 많이 취하는 방법 중 하나는 다른 사람을 모멸하는 것이라고 한다. 위계를 만들어 누군가를 무시함으로써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는 것이다 -<모멸감>-



그래 그는. 고작 자기의 존재감을 확인하고 싶어서였던 거야. 그래 위로가 된다. 그래 조금 아주 조금 마음이 편해진다.




심장이 딱딱해졌음 좋겠다.

돌처럼 굳어버린 몸으로 무겁게 잠이나 자게.


휴...........

...

...

....


??







두근두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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