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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리스 Nov 05. 2019

스트레스는 나를 잠식한다.

나도 모르게.

물 속에 잠겨 있는 상태.


즘 나를 가장 크게 지배하는 느낌이다.

365일이 분주한 월요일 아침처럼 움직이는 직장에서

눈도 뜰 수 없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물 속에 잠겨있는 기분이라니.

끔찍한 일이었다.

하루종일 몸은 무겁고 마음은 공허했다.

괜찮을 거야. 심리학에서 배운대로 스스로를 다독이고 어루만져도 그때 뿐. 효과는 그리 길지 않았다.

멍하니 정말 멍하니 넋을 놓다가 퇴근길 내려야 할 정거장을 지나치고 말았다.

괜찮은 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괜찮지 않았다.


무엇보다.

조금씩 몸에서 반응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1. 더 이상 거품이 나질 않는다.


처음엔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문득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샴푸질을 하는데  거품이 나질 않았다.

샴푸도 그대로고, 씻는 방식도, 쓰는 물 온도까지 바뀐 게 없었는데도 그랬다.

 갑자기다 정말 갑자기.

짓말처럼 거품이 나지 않았다.


네**에 물어봤더니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한 두피 변화란다. 호르몬 변화로 정수리 부분에 머릿기름이 끼기 시작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아, 그래서. 어쩐지. 오후 2시쯤 찐득거리던 머리카락이 이해가 갔다.

괜찮다는 건 착각이었을까.

보이지 않는 마음을 묻어두는 동안

보이는 몸은 변해가고 있었다.




2. 더 이상 텔레비전이 보기 싫다.


좋아했다. 불륜 드라마. 하이틴 드라마. 시시껄렁한 농담이 반복되는 예능 프로 먹방까지.

하루 종일 고되었던 날은 멍하니 텔레비전을 틀어놨다.

 아무 생각 없이 볼 수 있는 텔레비전이 좋았다.

웃는 연예인을 보고 웃지 않아도 되고 우는 배우를 보고 웃어도 되는. 내 생각대로 내 기분대로 웃고 우는 나만의 시간.


그런데 이제는 싫다. 혼자 떠드는 텔레비전 소리가 소음처럼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 그래서 어제는 난생처음 텔레비전을 켜지 않았다. 아무 소리도 없는 적막함을 견디지 못했던 내가 바뀌었다. 사람 목소리도 음악소리도 싫었다. 나 혼자 우물에 갇혀 울고 있는데  밖에서는 축제가 벌어지는  상황극에 빠진 느낌이었다.

아, 생각해보니 오늘 퇴근 길에도 이어폰을 꽂지 않았었다!

처음이다.

귀에. 울리는 모든 소리가 싫어졌다.



3. 꿈이 많아졌다.


어제는 놀이터에서 미끄럼을 탔다.

그제는 아주 어렸을 적 놀던 공터에서 친구와 그네를 탔다. 퇴행이다.

시험을 앞두었을 때, 직장 상사와 언쟁이 있던 때 그때의 꿈은 늘 한 결같았다. 지각이었다. 학교에 늦고 회사에 늦는 꿈. 나에게 가장 공포인 순간이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행복했던 순간이 반복된다.

아무 두려움이 없었던 그때로 장면만 바뀌며 돌아간다.

꿈에서 깨니 뒷맛은 썼다.

꿈 속에서 연락이 끊긴 대학 친구와 여행간 날은

하루종일 온 몸이 쑤셔댔다.



4. 잠이 많아졌다.


불면증을 앓던 사람이었다. 우울하고 예민해서 그런 거라고 의사가 말하며 처방해 준 약도 있었다. 그런데 이제 잠이 쏟아진다.

눕고만 싶었다. 아무도 없는 방 안에 혼자 있고 싶었다.

저녁 11시가 넘도록 잠을 자지 않는 아이를 붙잡고 하소연했다.

"엄마가 잠을 좀 자고 싶어...."

갓 돌 지난 딸내미는 말을 알아들었는지 못했는지

더욱더 가슴에 파고들었다.

 최후의 수단을 쓸 수밖에.

아이를 거실에다 두고 안방 문을 잠가버렸다. 아이는 집이 떠나가라 운다. 서럽게 목이 터져라 문을 치며 울었다. 이불을 뒤집어썼다. 잦아드는 아이 목소리를 애써 무시하며 잠을 청했다.


아이는 아빠랑 밤새 흙장난을 하다 들어왔다고 했다.

출근길 아침. 잠이 덜 깬 아이의 코에서 콧물이 주르륵하고 흐르는 것을 보았다. 그래 놓고 지하철 탄 40여분 내내 꾸벅꾸벅 졸았다.

피곤한 신체가 미안하고 아픈 마음을 뒤덮은 날이었다.






걸음 쳐 달려온 길을 돌아볼 때가 된 것 같다.

왜 나는 다른 사람의 안부는 그리 잘 물으면서

정작 나에게는 잘 있느냐고 괜찮으냐고 묻질 않았던 걸까.



잠시 숨을 돌리는 화장실에서

 한 편이

눈에 들어왔다.



화장실에서.


증상 하나 더 추가.


툭하면

눈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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