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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리스 Apr 28. 2020

가장 쉬우면서도 어려운 것.

'정리'를 시작했다.

끝났다.

기어이. 어쨌거나.


기어이라는 말을 쓰는 건 10년 동안의 직장생활 중에 가장 고되고 더뎠던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라는 건 끝나긴 끝났으나 끝의 결과가 좋지 않아 개운치가 않다는 뜻이다.


105일의 시간이었다. 사실 준비 기간까지 합하면 265일 정도 될 것이다.

그 날의 이벤트를 위해 쓴 글만 153장이다(한글 파일, 10포인트 기준. 장평 자간은 기본 세팅)

글자 수로 따지면

총 19만 8천9백(153 X 1,300) 개의 단어다.

숫자로 마주하니 안 그래도 시큰했던 손목이 아려오는 느낌이었다.



'고생했어. 넌 최선을 다했어.'


아무도 해주지 않길래 스스로 해 주었다. 양 팔로 몸을 감싸 토닥토닥하는 셀프 위로. 누가 보면 괴이하고 이상하게 생각하겠지만  진짜 이상한 것은 단순한 행동이 정말로 위로가 된다는 것이다. (인간의 뇌는 이토록 복잡하다가도 단순하다.)


눈을 감으니 오만 감정이 다 떠올랐다.

왜 그렇게까지밖에 하지 못했나 하는 자책부터

이렇게 저렇게 할 걸 하는 후회,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순간들을 기억에서 지워버리는 부정도 생겨났다.


결과가 좋았다면 없었을 일이다.


그래, 어쩌면 잘 된 거지도 몰라.


신이 인간에게 선물했다던 자기 합리화다. 정신 승리다. 이래야 괴로운 것들을 견뎌내고 버틸 수 있는 것이다.


덤덤히 견디자고 마음먹었다.

이벤트는 실패했지만 나는 성장했을지 모르니까.

목표만 갖고 방법도 모른 채 쉼 없이 달려야만 했던 시간들이었다.

2020년의 그 날, 

4월 15일 

나의 직장은 대패, 참패했다.




쉬기로 했다.

오랜만에 사우나를 찾았고, 오랜만에 소설책도 펴 들었다.

하지만 영 개운하지 않았다.

일은 없었지만 손끝에 남아있는 열감은 그대로였고, 활자 가득한 신문을 누구도 보라고 강요하지 않았지만, 볼 필요도 없었지만 보고 싶었다.

예상은 했지만 아팠다. 비난과 비판, 비웃음과 책망이 가득한 사설과 칼럼을 읽다가 덮어버렸다.

마음을 비우고 싶었다. 나를 좀 쉬게 해주고 싶어 졌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힘들었고 내색하지 않았지만 괴로웠다.


일이란 건 다 그래. 월급쟁이의 운명 같은 거지.


월급쟁이라는 말이 싫었다. 그렇다고 영혼을 갈아 넣어 충성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내가 속한 조직이었다. 오징어처럼 씹히고 비하되니 나까지 비참해지는 느낌이었다.


꽉 채워졌던 시간이 텅 비어버렸다.

하루 종일 헛헛함이 계속됐다.


무언갈 해야만 해.


하지 않으면 그간 채움 없이 파내려 갔던 블랙홀 같았던 가슴 한 구석이 그대로, 비어버린 채로 살아야만 할 것 같았다.


하지만 동시에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게으르고 싶었지만 늘어지고 싶진 않은 

바쁘지만 바쁘진 않고 싶은 아이러니한 마음이 계속됐다.




 


시작은 어려웠다.


시간은 많아졌는데 할 일은 더 늘었다. 시간을 좀먹는, 바퀴벌레 같은 일상이 의미 없이 반복됐다.

핸드폰만 있으면 24시간은 24초 같았다.

누구의 안부를 물어야 했고, 수다도 떨어야 했고, 갑자기 사야 할 것이 생각나  쇼핑도 했다.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재미있었다.  누구와 누가 연애를 한다더라, 누구의 폰이 털렸다더라 등 포털 사이트에 뜬 연예인의 소식, 드라마 얘기에 푹 빠졌더니 어느덧 점심이고 퇴근이었다.


그러니 변할 수가 없었다.

그러 조금씩 찾아왔다.


어지러웠던 시간, 어질러졌던 물건만큼이나 지저분하게 엉겨 붙었던 감정들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분노, 짜증, 혐오, 절망에 이어 가장 마음속 깊이 박혀있는 우울도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철학적 질문부터

이불 킥 하고 싶은 순간들이 떠오르면서 숨이 막혔다. 나를 갉아먹는 있는 실체 없는 감정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이럴 때 만성 우울증 환자라는 사실이 도움이 됐다.

딱! 스위치를 켜듯 딱! 머릿속 버튼을 누르는 것이다.

정신분석학 책에서 읽은 부정적인 생각들을 차단하는.  

플라시보 같은 처방이었다.

 

하지만 이내 힘들어졌다.

이번에는 다른 처방이 필요했다.

최소한의 움직임을 동반한, 즉각 치료여야 했다.

꿈틀거리듯, 소곤거리듯.

아주 작게라도 구석에서라도 할 수 있는 것.





정리하기로 마음먹었다.

청소가 아닌 정리다. 가지런할 정(整), 다스릴 리(理).

마음을 가지런하게 다스리는 것이다.


글이 써지지 않을 때 버릇처럼 입에 넣었던 초콜릿, 사탕, 캐러멜이 담긴 서랍부터 열었다. 오랜 시간 녹아 엉겨 붙고 더러워진 봉지들과 부스러기들을 한 데 모았다.  

문득 그것들의 유통기한이 궁금해졌다.


19.5.8.

...

 이건 뭐 원효대사의 해골물도 아니고. 갑자기 속이 메쓱거렸다.


이미 나의 피와 살이 되었을 , 되돌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꼬질꼬질해진 소음 차단용 귀마개,

색깔별, 크기별 구분 없이 뒤엉킨 포스트잇도 구분해 서랍에 넣었다.

스테이플러와 연필꽂이, 클립 통 위에 앉은 먼지도 털고 닦았다.


책상 위는 그렇게 끝이 났다.

중요한 건 서랍이었다.

귀찮아서, 시간이 없어서, 당장 눈에 보이지 않으면 되니까

온갖 잡동사니를 구겨 넣고 밀어 넣던 서랍이 기다리고 있었다.


드르르륵 큭

무언가 껴있던지 잘 열리지도 않았다.

몇 번이고 끙끙대다 온 힘을 다해 잡아당겼다.

서랍 사이에 있던 비닐 파일이 문제였다.

몇 달 전 씩씩거리며 찾았던 물건이었다.


시작해볼까?

라는 마음보다 후회가 먼저 들었다.

괜히 열었어...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할지 난감했다.

하지만 언젠가 해야 할 일이라면 지금이 적기였다.


마음을 비우듯 무언가를 비워줘야 했다.




일본의 정리 전문가가 알려준 정리의 간단했다.

버릴지, 남길 지를 결정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버렸다.

앞으로 쓰겠지 하는 것은 앞으로도 안 쓴다는 말을 믿고

손도 닿지 않은 것들은 미련 없이 버렸다.


직장 동료에게 받은 여행용 비누,

이미 핸드폰에 저장되어 있는, 아니면 인연의 수명이 다한 사람들의 명함,

화려한 포장으로 유혹하나 결코 매력적이지 않았던  각종 티백들과 믹스커피들.


모으고 버리고 분류하는데

총 9분 14초가 걸렸다.


9분이라니!!!!

10분도 안 되는 시간을 168시간 동안 미뤘던 스스로가 한심했다.



 




시작은 미약했지만 끝은 창대했다.

고작 허리 몇 번 굽히고 손가락 몇 번 놀린 게 전부인데

 바뀌었다. 신기하게도 내가 말이다.

깨끗해졌다 마음이.  단순해졌다 생각이.


뿌옇게 흐렸던 시야가 밝아지니 나를 똑바로 바라볼 용기가 생겼다. 외면했던 문제들, 감정들,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현실을 직면하게 됐다.


해결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책상과 서랍 정리 하나로 내 과거도, 기억도 정리되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제사 밖을 내다볼 수 있게 됐다.

내가 아닌 남과 풍경과 바람과 공기와 나무가 보였다.


벌써 봄이었다. 겨울이라고 웅크리고 있었던 시간들이 아쉽기까지 했다.

이제 내 마음도 봄을 시작할 일만 남았다.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깨끗해진 서랍처럼,

새로운 마음으로 처음처럼.  


할 수 있을까. 할 수 있겠지?

할 수 있을 것이다.


정리도 했으니까.

이제 시작이니까.




자신이 진심으로 설레는 사명을 발견하는 데 정리는 분명 도움이 된다. 그렇게 진짜 인생은 '정리 후'에 시작된다.            -곤도 마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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