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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리스 Dec 18. 2019

사무실의  내 유일한 위로

 오리온 왕꿈틀이

하루에 오천 자 정도의 글을 쓰는 것은

정신노동일까 육체노동일까.


영화 속 '82년생 김지영'이 팔목에 둘둘 감고 있던

팔목 보호대는 전혀 도움이 되질 않고 있었다.


점심시간을 쪼개 오랜만에 찾아 간 정형외과 의사는

너무도 당연해서 말하기조차 귀찮다는 듯 입을 열었다.


"손목을 너무 많이 쓰셔서 그래요. 터널 증후군, 아시죠? 아주 흔한 질병 입죠."


내가 원하는 답은 그게 아니었다.

나는 그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병가는 안될까요?"


의사는 이 말 또한 너무 자주 듣는 말이라는 듯이

기계처럼 감정도 없이 말을 꺼냈다.



"이걸로 병가 내주겠어요? 팔이 부러지신 것도 아닌데."



"....."


그래, 기대하지 않았잖아.  혹시나 한 거지 뭐.

시무룩하게 돌아가는 나에게 의사는.


'그러길래 공부 열심히 해서 나처럼 의사나 하지 그랬니.'


눈으로 말했다. 아니,

속으로  중얼거렸다. 내가.






야합. 결렬. 통탄. 규탄한다!!!!!


일반인이라면 살면서 한 번도 쓰지 않을 단어를 몇 달째 쓰고 있는 중이다. 요즘 핫한 단어는 자중지란이다. 오늘만도 두 번째. 무한반복.


거친 단어가 늘어날수록 머릿속에도 거친 스트레스가 차곡차곡 쌓여갔다. 마치 1000원짜리 과자를 살 때 적립되는 10점만큼,  단어 하나 당 스트레스 지수 1씩.

어제는 5점, 오늘은 3점. 퇴근할 때 즈음엔 아마 6점쯤?


마트에서는 적립금 5,000점 이상이면 현금으로 쓸 수 있다는데 '노동' 적립금은 현금화는 무슨. 쌓이면 쌓일수록 병원비로 시발 비용으로 술술 잘도 빠져나간다.



자, 어서 일을 시작해.


멍 때리고 깜박이는 커서만 바라보기 3분쯤

마음속 노예근성이 나를 채찍질했다.


빨리 끝내버리고 집에나 가자고. 어차피 해야 할 일이잖아.


 속으로 열 내봤자 괴로운 건 나뿐이고, 일은 전래동화 속 물 길어다 주는 두꺼비가 해주는 건  아니니까.

8년 차 월급쟁이가 얻은 능력이라곤 단념뿐이다. 그것도 아주  빠른 단념.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이 유명한 말이  처칠이나 아인슈타인이 한 줄 알았는데 심장 전문의가  말이란다.  의미심장하지 않은가.

피하려고 발버둥 치면서 열내다가는 심장병 걸려 죽으니  살고 싶으면 차라리  즐겁다고 나는 행복하다고 정신 승리하라. 

라는 경고다 분명.


그래 해버리자. 어차피 해야 할 거.

그래 즐기자.

 말 

뭘?




설탕.


C12H22O11. 포도당(α-D-glucopyranose)과 과당(β-D-fructofuranose)이 1→2 글리코시드 결합으로 결합한 이당류.


아니 그냥,

그냥  단 거.



2019년 12월 18일.

오늘의 '단 거'는

꿈틀이다. 왕꿈틀이.

짜라잔~~ 반짝반짝 영롱영롱


가격

600원(국회 매점 가격이니 마트마다 다를 것임)


무게

670그램


구성성분

물엿, 백설탕, D-소비톨, 젤라틴, 배 농축과즙, 캐러멜당 시럽, 블랙 캐롯 농축액, 홍화 레몬 추출물, 유크림..... (합성착향료 잘 모름. 이하 생략)





소재지 

전라북도 익산공장.

(근처에도 가보지 못한 아득한 그곳에는  여의도에서는 결코 나지 않을 캐러멜 향과 오렌지, 망고향이 그득하겠지요...)





오오.


경고문

과량 섭취 시 설사를 유발할 수 있습니다.

소비톨은 많이 먹으면 설사를 유발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67g짜리 네 봉지 한꺼번에 먹어봤지만

설사는 안 납디다 안 나요.


사무실 적합도 

5점 만점에 3.5

씹는 소리 없이 조용히 순삭 가능

(단, 오픈 순간 과일향이 사무실 전체에 확 퍼져 들킬 가능성 농후)


취식법

(초보자) 선입견 없이 손에 집히는 대로 먹어볼 것.

(경험자) 색깔 별, 맛 별로 골라먹는 재미 가능.

 색깔마다 맛은 다르나 그 맛이 복숭아 향인지, 배향인지, 체리향인지 구분할 수 있는 사람 거의 없을 것임.(한국산 젤리의 종특이기도 한데  향이나 풍미가 매우 심히 굉장히 약하다. 미국산 젤리는 입에 넣으면 '아 이것은 극도의 인공적인 체리맛!!!!'이라는 문구가 본능적으로 전두엽에 박히지만 한국산 젤리는 이게 무슨 과일향이더라 하다 보면 그냥 한 봉지 끝이 나고 만다. )


평균이용시간

오픈 16시 32분.

마감 16시 59분.

총 27분.


 경쟁상품

외국인들이 떼로 나와

"나는 딸기맛이 제이일 쪼아! 이렇게 쓔웅 날아서 입으로 쏘옥~." 하는 보는 이로 하여금 웃을 수도 울 수도 없게 만드는 어색한 더빙 cf.


 

게르만인들의 대표 주전부리 하리보 오리지널(골드배렌)과 비교하지 않을 수 없다.


하리보가 딱딱해서 턱이 아플 정도의 강도로 매력 어필한다면,  왕꿈틀이찰떡같은 쫄깃거림과 부담스럽지 않은 '애매모호' 한(좋게 말하면 자극적이지 않은) 매력으로 다가온다. 이것은 성분의 차이이기도 한데 하리보가 녹말의 비율이 높다면 이에 비해 왕꿈틀이는 젤라틴 함유율이 높다는 뜻.

그래서 왕꿈틀이는 어린이나 노인들까지도 가볍게 즐기기 좋은 매우 '한국화 된' 젤리라고 할 수 있다.


 250가지 정도 되는 하리보의 세부 라인에는  왕꿈틀이처럼 쫄깃거리는 종류도 있긴 함.  






심각하고 절절한 글을 쓰다 이렇게 왕꿈틀이로 빠져서는 아주 신이 나는 중이다.


최종결론

왕꿈틀이는 쫄깃하고 부드럽지만 초콜릿처럼 순식간에 녹지 않아 극강 스트레스를 받을 때,  입 안에 장시간 오물오물거리기 알맞은 사무실 맞춤형 주전부리다. 무엇보다 가장 큰 메리트는 지금, 당신이, 욕하고 싶은, 씹고 싶은  사람이 (당연히) 있을 텐데. 그(녀)를 생각하며 씹어버리는 그 맛 또한 훌륭하다는 것.


단, 사무실의 누군가와 (예의 상) 나눠 먹어야 할 때는

주의할 것이 있다. 11개 다 준다고 해도 단 1개뿐인 왕꿈틀이만큼은 뺏기지 말자.




왕이.

제일 맛있다.


 






감미료 없이는 견디기 힘든 하루가

또 이렇게 지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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