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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숲강 Aug 12. 2020

창고의 곰돌이

펀슈머에서 펀에듀를 꿈꾸다

"창고에 곰돌이가 나타났어요!"


교감선생님의 말에 2학년 안 선생님은 페인트가 묻은 흰 티셔츠를 입고 안절부절이다. 안 선생과 아이들은 작년에 학교숲에 빗물저금통을 만들어 예쁘게 색칠했다. 1년이 지난 요즘 색이 바래진 것을 발견하고 다시 색칠하고 오다가 그만 창고 바닥에 페인트통을 떨어뜨렸다. 쏟아진 페인트를 아무리 닦아도 흔적이 남아 궁여지책으로 곰인형 얼굴을 그려놓았단다. 혼자 일 저질러 놓고 얼마나 당황했을지 생각하니 안타까우면서도 큰 웃음이 나왔다. 짧은 시간에 기지를 발휘해 곰돌이를 귀엽게 그려놓는 센스 좀 보소!

어떤 곰돌이인지 궁금하다 했더니 찍어놓은 사진을 보여주는데 고 녀석 마치 창고가 제 집인 양 자연스럽다. 나의 꼼지락 근성이 발동해서 아크릴 물감을 들고 나서고 싶었지만 참았다. 대신 제안했다.

"내친김에 아이들과 창고 바닥을 도화지 삼아 더 그려보는 건 어때요? 몸을 그려도 좋고 주변에 꽃을 그려도 좋고…."

며칠 뒤 학교를 돌아보다가 창고에 들렀더니 바닥에서 곰돌이가 필승하며 인사하고 있었다. 그 사이 아이들과 재미있는 활동을 했나 보다. 창고의 곰돌이를 재미있게 그리고 있는 아이들 모습을 상상하니 나 또한 즐거워졌다.

요즘 떠오르는 단어에 펀슈머라는 말이 있다. 즐거움의 펀(fun)과 소비자의 컨슈머(consumer)를 합성해서 나온 말이다. 라면을 대표상품으로 하는 기업이 젊은 사람 취향에 맞게 굿즈로 만들어 한정 판매 함으로써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멜론 하면 떠오르는 아이스크림 모양을 음료병으로 개발한 회사, 꽃게 모양을 모티브로 해서 원피스까지 만들며 젊은이들을 끌어들이는 기발한 아이디어도 재미있다. 수십 년 동안 형성되어 있는 고정된 사고의 틀을 깨고 새로운 조합, 다른 영역과의 융합 또는 사고의 확장을 통해 재미를 더해주니 매출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는 사례들이다.

기업은 펀슈머, 학교는

 "펀에듀" 오호~ 이거다.

교육도 재미있어야 한다. 작은 아이디어를 더하거나 시간, 공간을 확장, 재해석해 더욱더 즐거운 활동을 만들면 아이들이 그 속에서 얼마나 즐거울까? 모든 것이 안전과 위생에 갇혀 아무것도 못하는 요즘 더더욱 필요한 말이다.

학교는 지금 밖으로 나가는 체험활동도 외부강사가 들어오는 활동도 어렵다. 시내 큰 학교에서는 지금까지도 1주일에 한두 번이나 격주로 등교하고 나머지 시간은 원격수업을 하는데 비해 우리는 전체 등교 수업은 물론 방과후학교 활동까지 하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하면서도 아이들이 기대하던 체험활동을 취소할 때마다 정말 속상했다. 제한된 여건이지만 아이들에게 더 재미있고 많은 경험을 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고민하게 된다.



1학기 마지막 샌드아트 공연 여부를 결정해야 할 때 담당 선생님은 이것만큼은 지켜내고 싶다고 했다. 교무회의를 열었다. 위험하다고 모든 것을 멈춘 상태로만 있을 것이 아니라 방역수칙을 지키면서도 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보자 했다. 결론은 전교생은 위험하니 저학년만이라도 방역수칙을 지키고 충분한 거리를 두고 관람하기로 했다.

우리의 고민을 들은 공연기획팀은 고맙게도 같은 금액으로 세 번으로 나누어 공연해주겠다 제안했다. 내용도 학년 수준에 따라 다르게 구성하여 전교생이 다 관람할 수 있었다. 수준 높은 샌드아트 공연에 오랜만에 아이들도 선생님들도 활짝 웃었다.

실수를 재미있는 교육활동으로 엮어 창고의 곰돌이를 만들어내고, 포기해야 하는 순간에 머리 맞대어 기획을 살려내는 우리 선생님들은 이미 펀에듀 실천가들이었다.

샌드아트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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