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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꿍꿍이 많은 직장인 Jan 17. 2021

#30. '노동조합'에 관한 고찰

노동조합 : 노동자가 주체가 되어 자주적으로 단결하여 근로조건의 유지, 개선 기타 노동자의 경제적, 사회적 지위의 향상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조직하는 단체. 노조 (출처 : 다음 어학사전)


최규석 작가의 만화 '송곳'을 보면 인간대접을 받기 위한 평범한 노동자들의 사투가 잘 묘사되어 있다. 부당한 해고에 반하는 집단활동에 대한 얘기가 주인데, 해고하려는 자와 해고당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사투, 그 사투 속에서의 인간적인 모습과 감정이 아주 표현되어 있다.


그중 기억나는 한 장면을 설명하자면 이렇다.


어느 회사의 근무자들은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숫자의 화장실을 사용해야 한다. 그러면 사람이 몰리게 되는데, 오랜 시간 생리현상을 참아온 사람들은 너도 나도 죽을 판이다. 문제는 화장실이 수요에 비해 부족하다는 구조적인 문제이고 필요한 만큼 더 지으면 될 문제이다. 하지만 문제는 높은 분들이 이런 저런 헛소리를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마렵니?? 나도 마렵다'

'많이 급하면 끼어들거나 지리는 방법이 있습니다'

'빨리 싸는 사람들의 비밀을 가르쳐 드립니다'


요는, 화장실이 부족한 구조적인 문제를 개인 책임으로 씌운다는 것인데 이런 구조 속에서 개인은 아무리 노력해봤자 먼저 싸는 사람의 순서만 바뀌지 고통받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이렇게 개개인의 힘으로는 바꿀 수 없는 구조적인 문제, 근로자가 가져야 할 기본 권익을 지키기 위해 집단활동은 필수적이라는 점에서 '노조'라는 존재의 필요성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하지만 회사에서 봐온 노조의 모습은 내가 생각하던 노조의 모습과는 많이 달랐다. 


무엇보다 그들은 권리가 부족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이 좋은 화장실을 더 좋게 하기 위해 싸우는 모습은 보았어도 화장실이 부족한 사람들을 위해 싸우는 모습을 보지는 못했다. 화장실이 부족한 사람들은 더 이상 그들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화장실이라는 예시가 나에게 더 와 닿았던 이유는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를 포함한 회사 정직원들은 건물 안에 정상적인 화장실을 사용한다. 하지만 사무실 밖에서 근무하고 있는 협력업체 직원들과 일용근로자들은 밖에 따로 설치되어 있는 임시 화장실을 사용한다. 하지만 그 누구도 이런 상황에 대해 언급하지 않으며 모두들 당연히 그렇게 살아가야 한다는 듯이 살아가고 있다.


재밌는 건, 이들을 위해 정상적인 화장실을 만들어 주자는 노조원은 본 적이 없으며, 반대로 이들의 사무실 내 화장실 사용을 막아달라는 것은 심심찮게 들을 수 있었다. 하긴, 일용직 노동자들 또한 그들이 속해 있는 또 다른 노조를 통해 그들의 권익을 지키고 있으니 약자라고 하기 어렵겠다.




나는 노조원도 아니고, 인권이나 법률에 대해 아는 것도 없다. 그리고 나의 얕은 식견에 비추어 모든 노동조합이 어째야 한다느니 그런 말을 하고 싶은 생각도 없다. 다만, 아무것도 모르는 제삼자의 눈으로, 우리 회사 안에서 이루어지는 모습만을 국한해서 얘기하려고 한다. 많은 노동조합의 모습 중 하나의 표본 정도 밖에는 되지 않는 별거 아닌 이야기다.


사람으로서 마땅히 가져야 할 인권을 위해 투쟁해온 노조의 시작을 보자면 분명 고귀한 '투쟁'에 가까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은 공동체를 위한 고귀한 '투쟁'을 하는 집단이라기보다는 일종의 '멤버십'에 가까운 형태가 아닌가 싶다. 그들이 하는 많은 행동들을 '멤버십'관리 활동으로 보면 이해하기 쉽다.


사업장 내 대다수의 인원이 노동조합 공동체 소속이므로 자연스럽게 그 장소에서 그 조합에 속한 사람들만을 위한 활동이 주가 된다. 노동자라는 공동체보다는 조합원의 이익이 우선시되며, 이런 상황에서는 오히려 차별이 정당화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인원이 지속적으로 유입되어 조합의 규모를 유지하거나 키워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노사협의 역시 비슷한 관점으로 이해가 된다. 경조사비 10만 원 추가, 복지포인트 10만 원 추가, 대신 임금 인상률은 1% 로 한다. 나는 노사협의가 통신사 할인 혜택 변경 같은 수준의 협의 외 어떤 노동자의 권리에 대한 협의가 이루어진 것은 잘 보지 못한 것 같다. 물론 인권에 대한 인식 자체가 상향 평준화되었고 많이 개선되었기에 부족한 부분이 없을 수도 있겠다. 어찌 됐건 이러한 혜택은 모두 멤버십 회원들에게만 돌아간다.


협력업체 직원 중 누군가가 임금체불을 당하고 있던, 불합리한 해고를 당하건 그건 노조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궂은일을 하는 사람들은 따로 있지만 그들은 이익을 함께 나누지 못한다. 노사협의에서 그들의 권익은 협의 대상이 아니다. 가장 큰 이유는 하나다. 그들은 멤버십 고객이 아니기 때문이다.


누구도 탓할 수는 없다. 노조는 그리 될 수 밖에는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고, 노동자 중 누군가가 어려운  상황에 있는 이유가 노조 탓은 아니다. 다만, 항상 어려운 시기에는 어려운 사람들이 더 어려워지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2020년, 코로나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어려워하고 있다. 올해도 마찬가지로 계속 어려울 전망이다. 주변을 보자면 힘들어서 넘어져 있는 사람이 정말 많다.  


누군가는 도전을 했고, 누군가는 힘들지만 열심히 버티며 살고 있었다. 하지만 코로나로 인해 그 모든 것이 무너져 버린 사람들이 많이 있다. 남 이야기가 아니다. 내 친구 이야기이고, 내 가족들 이야기이다. 삶의 기로에서 한 번만 다른 길을 택했다면 나 역시 같은 모습으로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어려운 시기에, 노동조합을 포함해 조금 더 힘이 있는 집단이 조금 더 어려운 상황에 있는 사람들까지 생각해 줄 수 있다면, 세상이 조금은 더 아름다워질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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