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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꿍꿍이 많은 직장인 Jan 10. 2021

#29. '퇴사'를 생각해본다는 것

아마 대학생 시절 철학 수업을 들으며 들은 말인 것 같다


'삶이 아름다운 이유는 죽음이 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크게 와 닿지 않았던 이 말이. 몇 년 전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후부터는 좀 더 크게 다가왔다.


누구에게나 죽음이 있고 마지막이 있다. 내가 사랑하는 우리 가족, 나의 와이프, 나의 친구들... 너무 사랑하지만 언젠가는 모두 헤어져야만 한다. 누군가는 먼저 간다는 말도 없이 내 곁을 떠날 수도 있다. 기약은 없지만 정해져 있는 '죽음'이라는 미래를 생각해 보면 지금 내가 그들에게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좀 더 선명해진다.


끝을 염두에 두고 내린 결론은 좀 더 따뜻하고 끈끈한 관계가 될 수도 있고, 차가운 단절이 될 수도 있다. 내게 사랑을 준 사람들은 살아생전에 은혜를 갚아야겠다는 생각이 들겠고, 나의 에너지만 빨아먹는 누군가가 있다면 빨리 단절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그렇게 누군가와의 관계의 끝을 생각해 보고 지금을 살아가는 것은 나의 삶을 좀 더 아름답게 만들어 줄 수 있다.  




같은 맥락으로 내 인생에서 회사생활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인지, 마지막은 어떻게 되어야 할지에 대해서 많이 생각해 보았다. 그 생각의 끝내 내가 내린 결론은 '지금의 회사생활이 내 직장의 마지막이 될 수는 없다'였다.   


끝이 너무 자명했다. 나의 직종에서 기대할 수 있는 최고직은 '팀장'이었고, 나는 회사 '팀장'이라는 분들의 마지막이 아름다웠던 것을 본 적이 없다. 퇴사하신 대부분의 팀장님들은 인사철에 임원실을 들리고 쫓겨나듯 회사를 나갔다. 그래서 50대 중반이 넘어간 팀장님들은 인사철만 되면 안색이 좋아지지 않는 것이 느껴진다.


그렇다면 이런 안타까운 모습을 좀 더 아름답게 하기 위해 회사는 우리에게 좀 더 관대한 정책을 펼쳐줄까?? 절대 그럴리는 없다. 우리 회사 '21년 새로운 인사방침으로 팀장급도 계약직 형태로 변경되는 안이 나오는 것을 보고 나는 직장 생활을 길게 하는 것은 갈수록 어려워지겠다는 생각에 좀 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회사 입장에서는 충성심에 대한 의리를 지킬 의무도 없거니와 좀 더 나은 패가 있다면 교체를 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건 직장인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회사에 충성을 바칠 필요도 없거니와 좀 더 나은 패가 있다면 교체를 하는 편이 낫다. 다 먹고살려고 하는 짓이다. 회사든 직장인이든 좀 더 좋은 것을 먹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그 길을 택하는 편이 낫다.


이렇게 서로의 끝이 아름답기가 어렵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우리의 삶을 좀 더 아름답게 만드는 방법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시작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사실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진짜 문제는 '나라는 사람이 누군가가 가지고 싶어 할 만큼 섹시하지 않다는 점'이다. 내가 누구나 탐낼 만큼 섹시한 인간이라면 회사에서 잘릴 일도, 직업이 단절될 두려움도 없다. 나를 원하는 누군가가 항상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공장 다니는 김대리'라는 글 자체가 어떻게 섹시한 인간이 될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찰로 시작한 글이 그 과정에 대한 얘기는 앞으로도 장황하게 할 예정이니 여기서는 생략하는 게 좋겠다. 장황함을 뒤로

하고 하고 싶은 얘기는 이거다.  


1. 생산적인 무언가에 몰입해 있는 사람은 섹시하다.

2. 계속 섹시함을 유지하려면 계속해서 몰입할 수 있는 '즐거운 일'을 찾아야 한다.

3. 그와 함께  '어느 길을 가든 그 길이 항상 즐겁지 만은 않다는 것'또한 인정해야 한다.

4. 즐거운 일이 섹시함으로 표출되려면(밥 벌어먹고 살려면) 일정 이상의 내공이 쌓여야 한다.

5. 내공은 어떤 임계점을 넘어섰을 때만 자신의 자산으로 쌓인다.


여기서 1,2번은 회사 내에서 찾을 수도 있고, 회사 밖에서 찾을 수도 있다. 하지만 보통 회사 밖에 있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3,4,5번은 내가 무슨 일을 하든 겪어야 하는 것들이다. 3,4,5번은 겪을 수밖에 없고, 지금 당장 내가 회사를 그만두기는 어렵다면, 회사를 기회의 장으로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


아마도 나는 회사에 계속 머물러 있거나, 이직을 하거나, 새로운 직업을 가질 것 같다. 하지만 무슨 길로 가던지 3,4,5번의 과정은 겪을 것이고, 무슨 일을 하던지 나는 '밥벌이 가능한 실력을 쌓을 때까지 인내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회사에서 살아남거나 이직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건 내가 실력을 갖추었을 때 가능한 일이다. 새로운 무언가를 시도하는 것 역시 회사 일을 정상적으로 처리해 놓았을 때 집중이 가능하다. 무슨 일을 하던지 나는 지금 나의 능력에서 깊이를 가지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야만 한다. 이런 노력을 의식적으로 계속할 수 있는 것은 태도의 문제이다.


결국 내가 무슨 길로 가던지 지금 다니는 회사생활을 내 인생 목적지 중 하나의 과정으로 생각하고 나의 모습을 다듬는 기회로 생각하는 편이 여러 가지로 이롭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회사일이 진짜 나의 일이 되고, 절대 대충 할 수가 없다. 순간순간이 내 모습을 변화시킬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요는, 누가 시킨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인생을 살아가면서 내가 맡은 일은 책임감 있게 처리하는 모습을 가지겠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일에 대한 주관을 타인에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지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ex 1) 했던 일이나 결과를 기록으로 남겨두는 것 : 매우 귀찮다. 하지만 다른 회사를 간다고 하면 이런 일을 하지 않을까?? 반대로 내가 회사를 운영하는 입장이라면 직원에게 이런 일을 요구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나는 기록을 효과적으로 남기는 방법을 고민하는 게 좋을까, 대충 처리하는 태도를 가지는 것이 좋을까??


ex 2) 직원 간의 갈등, 인력 관리의 어려움 : 인생에서 가장 쓸데없는 시간은 아마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을 이해시키려 애쓰는 것일 것이다. 하지만 다른 회사를 간다고 하면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내가 회사를 운영한다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그렇다면 나는 이런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는 게 좋을까, 그냥 두는 것이 좋을까??


이런 관점으로 일을 하는 것이 피곤해 보일 수도 있지만 결국은 이 방법이 가장 빠르고, 가장 효과적이게 일을 처리하는 방법이고, 무엇보다도 스스로의 발전에 좋다.


다 쓰고 나니 '포기하지 말고 지금 일을 열심히 하면서 한편으로는 다른 기회를 찾아보자'라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꼰대 같은 글로 마무리가 된 것 같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안정성을 가지고 싶지만 도전적인 무언가도 해보고 싶어'라는 나의 욕심을 충족시키는 방법이 이것 말고는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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