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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꿍꿍이 많은 직장인 Jan 09. 2021

#28. '꼰대'중 대장은 '젊은 꼰대'

Q : 누군가 '꼰대'란 무엇일까요?라고 묻는다면?


A :회사생활을 하며 내가 내린 '꼰대'의 정의는 '대화가 통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오래된 제조업 공장에 인생을 바친 많은 선배들. 그들 대부분은 그들만의 꼬장꼬장함을 가지고 있었고, 말이 통하지 않는 그 꼬장꼬장함은 한 때 큰 장벽으로 느껴졌다. 왜 그들은 쓸데없는데 그렇게 고집을 부릴까. 왜 그들은 불합리함을 알면서도 고칠 생각을 하지 않을까. 왜 그들은 술을 마시지 않으면 진실된 얘기를 할 수 없다고 생각할까. 대체 그들은 왜 그럴까?? 나의 초기 회사 환경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꼰대 지옥'이었다.


관리자인 나는 매일 그들의 고집과 싸우는데 힘을 빼야 했고, 불합리함을 개선하고자 하면 반발했으며, 그렇게 서로 쌓인 불만을 잘 먹지도 못하는 술을 통해 풀어야만 했다. 말이 좋아서 술자리지 사실 청문회에 가까웠다. 내게 있어 회식이란 그들의 불만, 꼬장꼬장함을 쓰디쓴 술을 통해 몸속으로 삼켜야만 하는 지옥 같은 자리였다. 많이 힘들었지만 그래도 이해하려 많이 노력했었다.


그렇게 1년, 2년이 지나갔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어느새부터는 불협화음 없이 잘 지내게 되었다. 가장 많이 싸우던 현장 반장님은 가장 든든한 아군이 되었고, 꼬장꼬장했던 그들은 어느샌가 유들유들하게 나의 의견을 수용해 주었다. 서로가 노려보며 싸우던 과거는 술자리 안주거리가 되어 있었다.


어떤 시기에, 어떤 계기로 그렇게 변하게 된 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나는 계속해서 그들을 이해하려 노력했고, 또 뒤돌서 스스로 반성했다. 그 과정을 통해 그들을 이해하게 되었고 '그들 역시 나와 똑같은 사람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요컨대 이런 것이다. 내가 그들이 고집이 세다고 느낀 만큼 그들도 내가 고집이 세다고 느꼈을 것이고, 그들이 해왔던 방식을 불합리함이라 말하니 반발을 한 것이고, 술을 잘 마시지 못하더도 함께 어울려주기를 바랐던 것이다. 내가 이해받기 원한만큼 그들도 이해해주기를 원했고, 내가 인정받고 싶은 만큼 그들도 인정받기를 원했던 것이다. 그뿐이다.


그렇게 서로를 이해하니 편해졌고, 편해지니 서로가 서로에게 강요하지 않고 타협점을 좀 더 쉽게 찾게 되었다.

 



오래된 꼬장꼬장함에는 단단함이 있다. 단단하기 때문에 자신만의 철칙이 있고, 단단하기 때문에 건드리면 강하게 반발한다. 오래된 경험에서 나오는 자신만의 철칙은 비효율적인 것 같으면서도 사실은 효율적인 것들이 많다.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비효율성과 효율성 사이 어딘가에서 나름의 노하우가 생긴 것이다. 그들이 가진 노하우란 어쩔 수 없이 발생되는 비효율을 포용하면서도 효율성은 극대화하는 것들이. 그런 노하우는 기술적인 측면은 물론이고, 삶의 지혜로도 배워야 할 것들이 많다.


잘못된 형태로 굳어버린 그들의 모난 부분을 때려 부수어 고치려 하면 나도 함께 다친다. 단단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 부분을 함께 살펴보고 다듬어 보자고 제안을 하면 쉽게 다듬어지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꼰대라 생각하는 사람들과 대화를 하며 이해하다 보면 의외로 배울 점이 많고 쉽게 말이 통하는 사람도 많다.




오히려 내가 생각하는 꼰대의 최고봉은 '젊은 꼰대'이다.


그들은 실은 물렁하면서 단단한 척하려 애쓴다. 충분히 경험하지 못했지만 노하우라 믿는 그들의 생각은 사실 지나치게 비효율적이거나 지나치게 효율적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효율만을 얘기하다가 비효율이 가진 안정성을 놓치거나 비효율만을 얘기하다가 효율성이 주는 기회를 생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생각이 극으로 치우치는 경향이 많은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자신이 보지 못하는 맹점에 대해 누군가 얘기를 해주면 크게 반발한다는 것이다. 속은 물렁하면서 겉만 딱딱해진 그들은 외부 충격에 크게 출렁거리면서 또 깨지지는 않는다. 그래서 누구도 그와 편하게 얘기하기가 어렵다. 말해봤자 반발만 사고 서로 다치기만 하기 때문이다.    

 

사실 20~30대 중 '혈기'없는 사람, '성격'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싶다. 혈기가 있으니 도전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것이고, 성격이 있으니 반대 의견에 크게 반발할 수도 있다. 그런 시행착오를 겪으며 성장하는 것이다. 다만, 그 과정에서 자신의 생각과 모습을 돌아보며 발전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잘했던 것은 계속 잘하려 노력하면 되고, 실패했던 경험은 원인을 찾고 반복하지 않도록 노력하면 된다. 친절했던 것은 언젠간 보상받을 것이고 무례했던 것은 사과하면 된다. 알았던 것은 더 깊게 파고들면 되고, 몰랐던 것은 배우면 된다. 그러면 계속해서 발전해 나갈 수 있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겸손을 배우게 되고, 상대에 대한 존중을 알게 된다.  


상대에 대한 이해와 존중 없이 누군가의 단편적인 모습으로 꼰대라 쉽게 평하는 이는 오히려 꼰대가 될 가능성이 높다. 상대에 대한 존중과 이해 없이 쉽게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런 모습이 반복된다면 세상은 선/악으로만 나뉘게 되고, 자신에게 반하는 사람은 악이므로 계속해서 세상에 선을 긋게 된다. 그렇게 선을 그은 세상에는 혼자만 남게 되고, 혼자만 옳다고 생각하는 꼰대가 되는 것이다. 혼자만 옳기에 대화가 될 리 만무하다.


그래서 누군가를 꼰대라 욕하기 전에 나 자신이 꼰대가 되어가고 있지는 않은지를 먼저 생각해 보아야 한다.

 

물론,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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