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힘들어하는 이 시기에, 운이 좋게도 우리 회사는 코로나 특수로 사상 최대 실적을 올리게 되었다. 작년은 공장 가동률이 100%를 넘었고, 그 많던 재고는 온대 간데 없이 사라지고 없어 못 판다고 할 정도로 불티나게 팔렸다. 멈추지 않고 공장 가동을 하느라 고생했던 구성원들은 창사 이래 최대 실적이라는 결과에 흥분했고, 올해 첫 월급에 많은 기대를 하고 있었다.
21년 1월 25일
통장에 찍힌 월급을 확인한 사람들은 한결같이 헛웃음을 지었다. 연봉 인상률이 1.5% 전/후였던 것이다. 그 충성심 높은 팀장님들도 너무한 것 아니냐는 말을 하고 다닐 정도였으니 회사 분위기가 어땠는지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회사 사정으로 1% 전/후의 연봉 인상률을 감내했던 역사는 내가 확인한 것만 최소 6년 이상이다. 내가 올해 7년 차이기 때문이다. 이 인고의 역사는 아마 그보다 훨씬 오래됐을 것이다. 그 시간을 버텨내고 맞이한 코로나 특수에 많은 사람이 달콤한 과실을 기대했겠만 그런 건 없었다.
개인적으로 평가를 하자면, CEO는 매우 현명한 선택을 한 것이다. 지속적으로 줄어드는 실적에 코로나는 말 그대로 '깜짝 이벤트'였고 회사는 변한 것이 없다. 원재료 값이 내려가고, 단기적인 수요 폭발로 영업이익이 크게 개선된 것이지 회사의 Business Model이 바뀌거나 경쟁력이 혁신적으로 좋아진 것이 아니다.
깜짝 실적으로 인한 이익은 성과급으로 지급하고, 장기적으로는 고정비가 될 인건비 상승률은 최소한으로 막은 것이다. 오히려 구조조정이 필요했던 시기였는데 코로나 덕분에 2년 정도 연장된 것일 수도 있다.
'모든 사업은 시작할 때부터 벌 수 있는 돈의 Max치가 정해져 있다'
전공은 아니지만 경영에 관심이 많아 대학생 때부터 이래저래 본 책들이 꽤나 된다. 불현듯 생각나는 저 문장이 지금 아마도 우리가 처한 상황을 잘 설명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예를 들자면 이렇다.
우리가 만약 카페를 차린다고 해보자.
1. 20평/50평/100평 규모에 따라서 수용할 수 있는 손님의 수가 달라진다.
2. 커피만 파느냐, 디저트류를 함께 파느냐에 따라서 이익률이 달라진다.
3. 운영 방식에 따라서도 이익률이 달라진다. (직원수/무인 주문 기계 설치 여부 등)
이 모든 것은 가게를 시작하기 전에 고려되며, 이런 요소들로 인해 그 사업은 벌 수 있는 금액의 한계가 정해진 다는 것이다. 이 예시를 우리 공장에 대입을 해보면 이렇다.
1. 공장 규모에 따라서 최대로 수용할 수 있는 물량의 한계가 정해져 있다.
2. 다양한 플라스틱 제품군을 생산하고 있지만, 이미 많은 경쟁업체가 있고 시장이 포화된 상태다. 그래서 어떤 제품을 생산하던지 잘 팔리기도 어렵고, 이익률이 높기도 어렵다.
3. 인건비 등 고정비가 많이 들어가는 구조이다. 그래서 이익률이 높기 어렵다.
그래서 돈을 잘 벌기가 어려운 구조다.
반대 예시로 삼성전자 반도체 같은 경우에는 1. Capa가 압도적으로 크고 2. 매우 잘 팔리는 제품을 생산하고 있고, 이익률 또한 압도적으로 높다.
또 다른 예시로 애플 같은 경우 1. 고객 수용 규모가 무한대이고(인터넷은 부지가 필요 없다), 2. 제품 이익률이 압도적으로 높으며, 3. 플랫폼 기반이기 때문에 고정비가 적다.
그래서 이 관점으로 보자면 두 기업 모두 돈을 잘 벌 수 밖에는 없는 구조이다.
위에서 했던 얘기를 다시 한번 정리하자면 이렇다.
1. 먹을 수 있는 파이에 한계가 있고
2. 제품 경쟁력이 낮고
3. 운영 효율성도 낮다
여기서 1번이야 어쩔 수 없다 하더라고 2번은 전적으로 경영진의 탓이다. 하지만 이 구조가 재밌는 점은 경영진의 잘못으로 2번이 야기되었지만, 노동자가 책임지며 3번을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사업이 잘 안되면 잘리는 건 직장인이라는 것이다.
경영자 분들께서 좋아하시는 결과론적인 얘기를 하자면, 같은 직종의 화학 회사라도 수년 전부터 Business Model 변화를 추구해 성공적으로 진화한 기업은 얼마든지 있다. (그러니 환경이 어떻고 국제 정세가 어떻고 하는 변명은 하지 말자)
이런 구조 탓에 회사는 '갑'이 될 수밖에 없고 직장인은 '을'이 될 수 밖에는 없다. '구조'가 가지는 비효율성을 '개인' 탓으로 돌리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이 구조는 혁명이 일어나서 체제가 바뀌지 않는 한 유지될 것이다. 혁명이 일어나서 노동자 우위 체제가 될 것이냐, 더 심화되어 노동자는 더 '을'이 될 것이냐 묻는다면 아마 99.99999% 확률로 후자이지 싶다.
그러므로 사양 사업에 종사하고 있는 직장인이 낮은 연봉 인상률에 화가 난다면, 그 분노의 원인은 기대를 한 개인에게서 찾아야 한다. 좋아질 수 없는 환경에 있으면서 좋아지기를 기대하는 것은 개인의 '바램'일뿐이다.
우리는 삶을 영위하기 위해 돈을 벌고, 돈을 벌기 위해 회사생활을 한다. 직장을 가지고 있고, 덕분에 삶을 영위할 수 있다는 것은 참 감사한 일이다. 하지만 월급으로 삶을 영위하는 것과돈을 '잘'버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나도 똑같은 입장이면서 뭐가 잘났다고 이런 냉소적인 글을 썼나 싶기도 하다. 하지만 한 가지 명확한 것은, 이런 구조 탓에 자신이 돈을 '잘'벌기 어려운 환경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다면 결국 불행해지는 것은 자신이라는 것이다. 돈을 '잘'벌기 위한 방법은 회사 밖에서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