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꿍꿍이 많은 직장인 May 30. 2021

#33. 블라인드에 글을 쓰는 이들의 마음

요즘 블라인드가 참 핫하다.


지난 한 주는 블라인드에 누군가가 써놓은 글 하나에 회사 전체가 시끄러웠다. 주요 내용은 공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안전사고와 그에 대한 실효성 없는 실행대책에 대한 불만이었다.


연초에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이 되었는데, 간단하게 설명을 하자면 '안전을 위해 어떤 노력을 했던, 사고가 나면 사업주를 벌금/실형에 처한다'는 것이 내용의 골자다. 법안이 이러니 임원은 두려울 수 밖에는 없고, 그 두려움에서 시작된 안전대책들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요는, 윗선에서 대책이라고 내놓는 방침에 실무자의 업무는 지나치게 가중되는 반면, 그만큼 실효성이 있냐는 것이다. 


또한, 회사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일에 답은 정해져 있고, 대화는 필요 없다.


대화를 목적으로 마련된 자리는 실제로 대화를 위한 자리라기보다 이것이 답안이라는 것을 설득하려는 자리일 때가 많았고, 실무자들은 이미 이런 몇 번의 과정을 통해 '부질없음'을 학습해 버렸다.


이렇게 회사 내에서 장상적이 절차로는 바꿀 수 없는 불합리함에 대한 불만이 블라인드를 통해 나타나고 있는 것 같다.




아이가 가위를 가지고 색종이 놀이를 하고 있다 생각해보자. 이 아이의 안전을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1. 도구를 사용하는 올바른 방법을 가르쳐 준다.

2. 색종이 놀이에 집중하도록 환경을 구성해 준다.

3. 아이 놀이를 돌봐주는 감독자를 늘린다.

4. 아이의 행동에서 나올 수 있는 위험요소를 분석하고 위험 방지 계획을 세운다.

5. 4,5번 진행을 위한 계획서를 작성하고, 얼마나 잘 진행되고 있는지 실적 보고서를 작성한다.


나는 상식적으로 1,2번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회사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대부분의 대책은 3,4,5번에 치중되어 있다. 물론 현장에서 작업자가 하는 행위를 아이의 색종이 놀이와 비교하기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 3,4,5번이 필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다만, 실무자 입장에서 하고 싶은 말은, 대체 무엇이 중요하냐는 것이다.




사람은


서로 도와주고, 알려주고, 배워가는 과정에서 빠르게 성장한다. 상대도 발전하고 나도 발전한다. 그렇게 상호 발전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문화가 생기게 된다.


실적을 위해 실적을 만들어 내고, 관리를 위해 관리비용을 늘리고, 시스템 개선을 위해 시스템을 더 만들어 나가는 방식으로는 비효율만 늘어날 뿐 아무것도 제대로 할 수 없다. 규제가 많아질수록 대충 하거나 포기하게 되는 것은 사람의 본성이다.


구조에 대한 생각이 없이, 사람의 본성에 대한 이해 없이 나오는 대책은 비극을 불러올 가능성이 높다.


블라인드에 글을 쓴 누군가는 아마도, 그 비극이 더 발전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지 않았을까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32. 여기서 못 버티면 다른 데 서도 못 버틴다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