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꿍꿍이 많은 직장인 Sep 19. 2020

#21. 직원은 리더를 닮아간다

보고 배운다는 것의 의미

전 부서에 있었을 때 일이다.


전 부서에는 팀장님 1명과 과장님 3명이 있었다. 5년 동안 있으면서 욕을 참 많이 먹었었는데, 뒤돌아보면 수긍이 되는 것들도 있지만 아직까지도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꽤 있다. 이해되지 않는 에피소드 중 하나를 얘기해 보자면 이렇다.


'X월 X일 휴가를 쓸 예정이오니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필요한 것이 있으신 분은 메일을 남겨 주시고, 급하신 일은 연락 주세요~!'


이 두줄의 메일을 보냈다가 과장님들에게 돌아가며 열심히 욕먹었던 적이 있다.


'휴가 쓴다고 메일 쓰는 건 팀장님 정도 되는 사람이 밑에 직원한테 하는 행동이지 어딜 니가 감히 그런 메일을 쓰고 있노'


주변 동료들과 직속과장님께는 휴가 계획을 미리 얘기했었고, 다른 사람들은 참조하라는 취지로 메일을 보냈었다. 하지만 '대리급이 감히 휴가 계획을 메일로 전달한 것'은 엄청난 잘못이라는 것이다. 난 아직도 이게 그렇게 까지 욕먹을 일이었는지 의문이다. 그렇게 전 부서에서는 휴가 쓸 때도 눈치 야 했고, 휴가 가서도 전화 늦게 받으면 왜 전화 안 받냐고 욕을 먹곤 했다.


직원은 리더를 닮아간다


전 부서의 팀장님은 상상할 수 있는 '꼰대'의 이미지를 모두 가지고 계셨는데, 과장님들 말로는 내가 신입으로 들어오기 불과 2~3년 전까지는 저녁식사 후 회의 시작, 퇴근 시간에 업무 관련 물어보기, 휴가 눈치 주기 등이 일상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 거 없는 시기에 입사한 넌 그나마 행복한 편이라는 '라떼'이야기를 꽤나 많이 듣곤 했다.


과장님들은 팀장님을 무척이나 싫어했었고 팀장님 험담을 꽤 하곤 했었다. 고백하건대 나는 동기들과 모이면 팀장님 보다 과장님 험담을 주로 했다. 내 눈에는 팀장님이나 과장님이나 다 같았고, 그런 것들이 좋지 않은 문화라는 것을 알면서도 바꾸지 않는 과장님들이 오히려 더 좋지 않게 보였다.  




첫 팀장님이 퇴직을 하시고 다음으로 들어온 팀장님은 젠틀하기로 유명하신 분이었다. 소문대로 상대에 대한 배려와 존중이 몸에 배어 있는 분이셨고, 그런 팀장님을 정말 존경했다. 이런 팀장님이 오셨으니 우리 팀 분위기도 많이 바뀌겠다고 믿었지만 부서 이동을 하기 전까지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팀장님은 뭔가 변화해 보려고 하셨던 것도 같지만, 전 팀장님과 10년 이상의 세월을 함께한 3명의 과장님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과장님들도 바뀌려 했지만 내 기준에 차지 않았던 건지, 정말 바뀐 게 없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느낀 바로는 바뀐 게 없었다. 3명의 과장님은 전 팀장님의 모습을 간직한 채 그 자리에 있었다. 새로운 팀장님과의 모습과 대비가 되었던 건지, 오히려 과장님들은 전 팀장님의 모습을 더 닮아가고 있었는 듯했다.


부서이동을 한 후에도 친했던 전 부서 대리님과는 종종 만나서 얘기를 하곤 했는데, 하루는 그런 얘기를 했다.


'대리님. 저는 팀장님 4명 모시고 있는 줄 알았어요. 팀장님 1명에 전 팀장님 3명 모시는 기분이었습니다.'


대리님은 빵 터지며 '맞지, 맞지? 니도 그렇게 느꼈지?' 라 하며 격하게 공감했다.


보고 배운다는 것의 의미

 

고향에서 쓰는 사투리로 '본댓머리 없다'는 표현이 있다.


보고 배운 것이 없다는 의미로 주로 버르장머리 없는 사람을 보고 하는 말이다. 이 본댓머리라는 것, 보고 배운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나이가 들수록 많이 느끼게 된다.  


우리는 인생에서 많은 부분을 보고 따라 하며 배워나간다. 태어나서는 부모님의 말과 행동을 따라 하고, 학교 에서는 어울리는 친구들을 따라 하고, 군대에서는 선임의 행동을 따라 하며, 회사에 와서는 상사의 생각과 행동을 따라 한다. 학교에서 공부했던 지식은 해가 지날수록 잊히지만 보고 배우며 체화된 습관들은 나의 모습으로 남아있다. 그리고 그 모습은 갈수록 더 단단해진다.


보고 배우는 것들은 옳고 그름의 개념보다는 '그렇게 해 왔기 때문에 하는' 일종의 관습이 되곤 한다. 관습은 종종 권위의 근거가 되기 때문에 스스로 그 권위를 내려놓으며 관습을 깨기란 쉽지 않다. 오히려 계승하는 편이 스스로에게는 유리하게 작용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관습을 깨거나 개선하기보다는 관습에 편승하게 된다. 그렇게 관습은 자신의 모습이 된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과장님들이 전 팀 잠님의 모습과 닮아있는 것, 전 팀장님이 퇴직한 후 더 그런 모습이 짙어졌다고 느끼는 것은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런 모습으로 남아있는 것이 자신에게 더 유리하고 좀 더 권위를 내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좋지 않은 관습을 이어가며 권위를 내세우는 것은 결국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가능성이 높다. 좋지 않은 관습은 빠르게 사라지고 있고, 권위를 내세우는 리더는 따르지 않으면 그만이다. 그렇게 퇴화하는 집단은 계속 퇴화하고, 진화하는 집단은 계속 진화하게 된다. 시대가 그렇고, 더 빠른 속도로 그렇게 변해가고 있다. 좋지 않은 관습을 따라한다는 것은 그 집단에 남아있겠다는 것이고, 퇴화하고 있는 집단에 남아 있는 것 자체로 자신 역시 퇴화하게 된다.


보고 배운다는 것. 보고 배울 것이 없으면 보지 말아야 하고, 따를 수밖에 없는 환경이라면 자신 역시 그와 같은 모습이 되고 있지는 않은지, 항상 경계하며 돌아봐야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20. 답 정해놓고 대화하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