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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꿍꿍이 많은 직장인 Oct 03. 2020

#22. 제사와 일, 시키는 사람 하는 사람 따로 있나

누군가의 희생은 감사해야 할 일이다

"이제 제사를 이렇게 성묘 와서 지내면 어떨까요. 추석, 설날, 기일날 3번만'


즐거운 추석 아침, 큰어머니께서 던진 말 한마디에 분위기는 순식간에 싸해졌다.


이번 추석에는 코로나로 인해 차례를 지내지 않고 간단하게 떡과 과일만 챙겨서 성묘를 왔다. 성묘를 마치고 음식을 나눠 먹으며 얘기하는 도중에 큰어머니께서 얘기를 꺼낸 것이다. 조용히 계시던 큰아버지께선 대답하셨다.


"그건, 아닌 것 같아요. 내 눈에 흙이 들어오기 전까지는 해야 됩니다. 요즘에 아무리 세상이 변한다지만 내가 살아 있는 한은 안됩니다."


"제사를 없애자는 게 아니라 이렇게 성묘 와서 조상님도 뵙고, 간단하게 차려서 이런 식으로 하면 좋은 것 같다는 얘기죠."


"그게 제사를 없애자는 말이지 뭡니까."


그 뒤에도 큰아버지와 큰어머니는 격론을 벌이셨고, 큰어머니는 그냥 이렇게 할 거다고 선언하셨다. 큰아버지께서 얘기하려는 찰나 아버지께서 나중에 차분히 좀 더 얘기해보자고 중재를 하시며 얘기는 마무리가 됐다.


사실 제사를 줄이자는 말은 예전부터 나왔었고, 긴 타협 기간을 거쳐 추석, 설날 포함해서 1년에 4번으로 줄였다. 큰아버지께선 그렇게 제사를 줄인 것만으로도 많이 양보한 건데 더 간소화하자고 하니 화가 나신 것이고, 큰어머니께서는 더 이상 제사에 신경을 쓰고 싶지 않으신 마음이셨던 것 같다.




회사일을 하며 듣는 말 중, 가장 짜증 나는 말을 꼽자면 이런 말이다.


"바쁜 거 있나? 이것 좀 해줄래? 이렇게 작성해서 이렇게 하기만 하면 돼. 그렇게 어려운 건 아니야."


"요즘 크게 바쁜 거 없지? 이것 좀 빨리 하자. 임원 보고 해야 되는데 아직 진척된 게 없냐"

   

요는, 안 그래도 바빠 죽겠는데 자기 일을 떠넘긴다거나 자기 보고를 위해서 빨리 하라고 볶을 때다.


추석에 있었던 일련의 사건들이 아마 이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나는 대의를 가지고 말하는 것이니 당신은 꼭 해야만 한다. 사실 내가 그런 일을 할 사람은 아니고, 당신이 좀 해줬으면 좋겠다. 혹은 당연히 당신이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조상을 모셔야 한다는 대의는 큰아버지께 있지만, 큰어머니 입장에서는 그 조상은 당신의 조상이지 나의 조상은 아니다. 하지만 준비는 우리 어머니와 큰어머니들이 해야 하고, 제사를 지냈다는 공은 아버지와 큰아버지들이 가져간다.


임원 보고를 해야 한다는 대의는 팀장님께 있지만 사실 임원은 나와 직접적으로 일하는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준비는 나와 과장님이 해야 하고, 공은 팀장님이 가져간다. 보고를 잘하면 팀장님은 칭찬받을지 모르지만 내가 그 보고서 열심히 썼다고 고과를 잘 받은 적은 없으니 아마도 내게 그리 득 되는 일은 아닌 것 같다.




말 한마디가 참 중요하다.


큰어머니의 불만에 '내 눈에 흙이 들어오기 전까지는 안된다'는 말 대신 '그동안 제사 준비한다고 고생 많았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먼저 건네었다면 그렇게 까지 얼굴 붉히며 얘기를 했을까 싶다.


팀장님이 습관적으로 하는 '바쁜 거 없지?'라는 말은 미안해서 하는 말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 말을 '많이 바쁘지? 정말 미안한데.'라고만 바꿔도 그렇게 까지 기분이 나쁠 것 같진 않다.


우리는 많은 가치들이 빠르게 변하는 격변의 시기에 살고 있다. 그에 따라 비효율적인 관습의 간소화와 조직의 수평화를 외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런 변화의 과정에서 기존의 가치를 지키고자 하는 사람이 있고, 바꾸려 하는 사람이 생기는 것은 필연적인 현상이다. 사실 이런 문제는 지금 당장 누구의 말이 100% 맞고, 누구의 말이 100% 틀렸다고 판단하기는 어렵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시대에 맞는 모습이 되어 있을 것이다.


다만,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기존의 관습 속에 살아가며 희생하는 역할을 한 사람이 있고, 그 희생을 통해 득을 본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그 희생을 '당연한'것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관습의 무서움이 이런 점이 아닐까 싶다. 계속 희생해 온 사람이 당연히 계속 희생해야 한다는 논리다.


무엇이 맞고 틀리고 따지기 전에 희생해온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감사의 말을 건네는 것이 먼저가 아닌가 싶다.


누군가의 희생은 당연한 것이 아니다. 감사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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