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꿍꿍이 많은 직장인 Apr 11. 2020

#15. 인간관계에는 약간의 불편함이 필요하다.

바보가 되지 않으려면 그렇게 해야 한다.

어머니께 쓴소리를 좀 했다.


마음에 걸리던 어머니의 어떤 습관적인 말투가 있었는데, 진지하게 그 부분에 대해 말씀드렸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날이라 그런지 그 말투가 계속 귀에 꽂히듯이 들렸고, 그래서 참지 못하고 말해 버렸다. 나름 돌려 말했지만 꽤나 상처셨나 보다. 나중에 보니 아버지와 동생에게도 내가 말한 것에 대해 말씀하셨던 것 같다. 그런데 둘 다 내 편을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어머니가 좀 의기소침해지셨고 날 대하기 좀 불편해하시는 게 눈에 보인다. 맞는 말을 했다고 한들 자식 입장에서 그리 편한 상황은 아니다.


인간관계에는 약간의 불편함이 있어야 한다. 이건 가족이건, 친구이건, 회사 팀원이건, 모든 인간관계에 적용된다. 그 약간의 불편함이란 다르게 말하면 '타인에 대한 존중'이다. 타인에 대한 존중을 의식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관계의 무게가 어떤 형태로든 조금씩 기울게 된다. 그리고 그 불균형은 대체로 '무시'나 '갑/을'의 형태로 나타난다. 기울어진 관계를 애써 무시하거나, 무시할 수 없는 관계에는 한쪽이 일방적으로 당하는 을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갑의 위치에 있는 사람은 의식적으로 일정 이상 무게가 상대방에게 기울지 않게 배려해줘야 한다. 하지만 갑의 위치에 있으면서 배려심까지 겸비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듯하다. 그래서 을의 위치에 있는 사람은 갑이 일정 선을 넘었을 때는 자신은 존중받아야 하는 존재임을 한 번씩 관철시켜줄 필요가 있다. 한쪽으로 과하게 쏠린 관계는 건전하게 유지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반항해야 한다. 바보가 되지 않기 위해


하루하루가 지옥 같던 2년 차, 아직 앞가림도 못할 무렵이었건만 과장급도 소화하기 쉽지 않은 만큼 일이 많았다. 그땐 일이 너무 많아서 또는 익숙지가 않아서, 현장일을 많이 챙기지 못해 현장 반장님과의 마찰이 잦았다. 그 시기를 이겨내고 4~5년 차가 되었을 땐 누구보다도 친한 사이가 되었지만 당시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싸웠다. 사실 싸웠다기보다는 일방적으로 맞았다는 게 좀 더 맞는 표현이다. 특히 아침 조회 땐 협박성 언행이 난무했다.


나름 챙긴다고 챙겼는데 반장님 성에는 차지 않는 것이고, 나는 사람들 앞에서 그런 협박/모욕/비난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들었다. 문제는 하루에 12시간 이상 일을 해도 일은 쌓여만 갔다는 것이다. 내 상황이 어떤지는 그 사람에겐 별로 중요한 게 아니기에 내가 챙기지 못한 부분에 대한 그 사람의 불만은 커져만 간다. 힘이 있는 사람의 불만이 밖으로 세어 나감과 동시에 주변 사람들도 비난에 동참하게 된다. 그럼 비난받는 사람은 더 고립되게 되는데 이 쯤되면 나타나는 증상이 하나가 있다. 그 비난받는 사람은 점점 더 '바보'가 되어 버린다는 것이다.


그 사람이 싫어 죽겠지만 그 사람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고, 그 사람은 그 상황을 이용해서 모욕 주는 언행을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은 맞은 사람을 위로하기보다는 강자 편에 서서 함께 때리는 것을 더 즐긴다. 약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며, 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고, 이 상황이 악화되면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으며,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이렇게 자존이 떨어지는 과정에서 지능도 함께 떨어지는 듯한 느낌을 함께 받게 된다.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데 하라는 일은 많다. 이 상황까지 오면 누구의 말 한마디, 전화 한 통, 메일 하나에도 민감해지며 극강의 스트레스를 경험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이제 회사가 지옥이 되는 것이다. 더 맞으면 정말 죽을 것 같아서 하루는 강하게 반항을 해 봤다.


'니는 현장 일 챙기는 게 없다. 계속 그래 봐라.'


'.... 제가 뭘 안 챙겼는데요??'


'뭐??'


'아니 계속 안 했다 안 챙겼다 하시는데 뭘 안했냐고요.'


'니 지금 개기는 거가?? 뭐 하는 거로??'


'개기는 게 아니라, 계속 안 했다 하시는데 대체 제가 뭘 안 했는지 모르겠으니깐 가르쳐 달라는 거죠. 대체 제가 뭘 안 했는데요 예? 대체 뭘 안 했는데요??'


심장은 엄청 쿵쾅쿵쾅 거리고, 살얼음판을 걷는 느낌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온몸으로 느꼈다. 쿵쾅거리는 심장소리가 들리지만 애써 무시하며 머리로는 다음엔 무슨 말을 하지 하며 시나리오를 써 내려갔다. 하지만 결과는 의외로 싱겁게 났다. 반장님은 그 자리에서 그냥 조회를 끝내고 마무리한 것이다.   


인간관계에는 약간의 불편함이 필요하다.


무례한 행동을 그만두라고 명확하게 관철시켜주어야 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스스로 멍청해지기 전에, 상황이 극으로 치닿기 그 악순환의 흐름을 끊어야 하는 것이다. 가능한 선까지 참아보고, 스스로 잘못한 것은 없는지 뒤돌아 보고, 모든 상황을 감안했음에도 상대방의 언행이 과하다면 잘못되었음을 단호하게 얘기해 주어야 한다. 그럼 그 사람은 의외로 별 말을 하지 못하게 된다. 스스로 자신의 행동이 과했음을, 그 부끄러움을 아는 것이다.


상대에게 단호하게 무언가를 말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다. 그 말을 함으로써 생기는 어색함 역시 감수해야 할 몫이다. 특히나 갑의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 그런 말을 한다는 것을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나친 무례에는 멈추라고 용기 내서 말해주어야 한다. 그런 단호함 없이는 무례한 말은 멈추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14. 부서이동 후 알게 된 것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