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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꿍꿍이 많은 직장인 May 03. 2020

#17 떠나야 할 때를 고민해 본다는 것

오랫동안 고여있으면서 썩지 않기란 참 어려운 것 같다.

한 부서에 오랫동안 있으면서 가지는 기득권은 꽤나 많다.


예를 들어 업무 이해도, 상사 눈치, 동료들의 특징 숙지, 융통성 등이 있겠다. 회사생활을 좀 더 윤택하게 할 수 있게 하는 자산이 늘어나는 것이다. 이런 가치들은 선/악의 개념이 아니다. 다만, 누군가는 이러한 기득권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에게 어떻게 나누어 줄지 고민하고, 누군가는 어떡하면 이런 것들을 이용하여 편안한 생활을 누릴 수 있을지만 고민한다.


전자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은 팀은 전체 자산이 늘어나게 된다. 나누어 줌으로써 부족한 사람의 능력이 빠르게 상승하고, 가진 사람들도 자극을 받으며 함께 성장하게 된다. 그런 선순환에 의해 팀 전체 능력이 올라가는 것이다. 반면 후자의 경우 팀 자산은 유지되거나 줄어들게 된다. 부족한 사람은 박탈감을 느끼며 굳이 잘해야 할 이유를 느끼지 못하게 되고, 가진 사람들도 굳이 더 나아지려 애쓰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환경의 팀은 정채 되거나 혹은 악순환으로 빠지게 된다.


우리는 전자의 환경 안에서 합리적임을 느끼고, 후자의 환경에서 불합리함을 느낀다.


오랫동안 고여있으며 썩지 않기란 참 어려운 것 같다


정체된 부서에 오래 머물러 있던 사람들은 그들만의 꼬장함이 있다.


물론 모든 사람이 다 그런 것은 아니다. 고여 있는 곳에서도 스스로를 돌아보며 내적으로 성장하는 사람은 분명 있다. 하지만 그런 집단에 오랜 시간 속해 있다는 것만으로도 대부분 자기도 모르게 좋지 않은 모습으로 변해갈 확률이 높다.  


'내가 낸데', '궂은일은 네가 해라', '굳이 그걸 내가 해야 하냐'


'나 또한 불합리한 환경을 버티며 가지게 된 기득권이기에 지켜야만 하고, 나누어 줄 수 없다'


그들은 알고 있다. 꽤나 오랫동안 타성에 젖어 있었던 자신은 낯선 환경에서 살아남기 힘들 것이라는 것을. 그래서 점점 더 변화를 두려워하게 되고, 혹여나 변할까 경계한다. 이들의 주된 관심사는 오직 '밥그릇 챙기기'이다. 이 곳만이 내 세상이기에 절대로 뺏길 수도 나누어 줄 수도 없는 것이다.


5년 동안 머물렀던 부서는 이런 보이지 않는 밥그릇 싸움이 꽤나 만연해 있었다. 그 속에서 가지지 못한 자로 있던 내가 느낀 불합리함은 아무리 발버둥 쳐 본들 바뀌지 않았다. 나는 그 사실에 꽤나 절망했고 더 이상 함께 하기 힘들다는 것을 느꼈다. 팀장님께 부서이동을 요청드렸고, 마침 회사 분위기가 부서이동을 적극 권장하던 터라 생각보다 쉽게 이동할 수 있었다.


불합리함이 만연해 있는 집단에서 불합리함은 보편성을 가지게 되고, 그래서 합리성을 가지게 된다. 그래서 그 집단 안에서 합리적인 의견을 피력하면 모난 돌이 될 확률이 높다. 합리적인 의견이 반대로 불합리한 주장이 되는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는 합리적으로 일 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불합리함에 좀 더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법을 배우게 된다. 불합리함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방법은 불합리함이 가지는 모양에 스스로를 잘라서 맞추는 수 밖에는 없다. 나는 스스로 잘라서 맞추는 행위가 일이 되어버린 전 부서에서 더는 버틸 수 없다고 느낀 것이다.


자신이 떠나야 할 시기를 고민해 본다는 것


자신이 떠나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자신의 모습 그리고 자신이 속해있던 환경을 한 발자국 떨어져서 마주 볼 수 있게 된다. 한 발자국 떨어져서 자신을 바라보는 것은 속해있던 환경 속에서 바라보는 자신의 모습과는 꽤나 큰 차이가 있다. 부서이동 전, 한 발자국 떨어져서 바라본 나의 모습은 꽤나 부끄러웠다.


고백하건대 나 역시 나름의 기득권을 만들어 가고 있었고, 어느 시점부터는 회사생활이 조금씩 편해지고 있었다. 어느 정도 업무를 이해하고, 적당히 상사 눈치를 보며, 동료들의 특징을 파악해서 맞춰주는 등 대충 배려하고 대충 타협하는 법을 배워갔다. '배려'와 '타협'이라는 것은 사회생활에 있어 중요한 덕목이며, 배워야 하는 가치이다. 다만 문제는 이런 배려와 타협을 '대충'함으로써 스스로 편해지고자 애쓰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 과정을 통해 꽤나 타성에 젖어가고 있었고, 아무것도 발전하고 있지 않았다.


자신을 객관적으로 돌아봄으로써 나의 능력과 나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부끄러움을 느꼈고 반성했다. 그리고 같은 행동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어떻게 살아갈지 진지하게 고민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새로운 Mindset이 생겼으며, 그 전과 지금의 나의 모습은 확실히 다름을 느낀다.


나는 무한도전 애청자였다.


 무한도전의 전부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유재석 씨가 그 프로그램 안에서 가지는 의미는 상당히 컸었다. 당시 유재석 씨의 인기는 정점이었고 그 누구도 대체 불가한 사람이었다. 그러던 그가 언제부턴가 동료들에게 이런 말을 자주 하는 것을 보았다.


'무한도전이 영원할 수는 없어. 우리는 그 이후를 생각해 봐야 해' (이 말을 한 게 아니라 이런 뉘앙스의 말을 자주 했다)


유재석 씨가 한결같은 모습, 철저하게 자신을 관리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던 이유가 이것이 아니었나 싶다. 그는 이미 끝을 생각하고 있었고, 그 끝에 서서 지금의 자신을 계속해서 마주 보고 있었을 것 같다. 그래서 항상 겸손할 수 있었고, 한결같은 삶의 태도를 유지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떠나야 할 때를 생각해 본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부서이동을 생각해 보거나, 퇴사를 생각해 보는 것, 나아가 은퇴 후 나의 삶을 생각해 보고 더 나아가선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은 그 자체로 큰 의미가 있다. 왜냐하면 그 시기별 자신의 모습을 통해 지금의 자신 마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자신의 모습을 객관화 함으로써 현재의 위치를 냉정하게 판단하고, 남은 인생을 어떤 태도로 살아갈지 고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 반성하고 남은 인생을 어떤 태도로 살아갈지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다면, 자신은 이내 바뀔 것이고 계속해서 발전해 나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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