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ineVet Jan 04. 2019

수학 시간에 영화를 튼다면?

통계학의 힘을 보여주는 명작, <머니볼>

 난 은유적인 것을 좋아한다. 직관적이고 깔끔한 것이 더 나을 때도 있지만, 은유는 고유한 아름다움을 가진 표현 수단이다. 그래서 문장을 읽더라도, 감정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것보다는 상황 설명만으로 감정이 와 닿는 그런 문장이 더 훌륭하다고 생각하다. 다음 두 설명이 있다. "심폐소생술을 5분씩이나 했지만 아직도 의식이 돌아오지 않아 불안하다. 구조대의 연락도 없어 초조하다. 주위에는 아무 불빛도 보이지 않고, 인기척이 전혀 없이 절망적이다." 이 문장과 "심폐소생술을 5분 동안 했지만 구조대의 연락은 없다. 그의 코와 입에서 증기는 보이지 않는다. 주위를 둘러보아도 불빛은 보이지 않으며, 누군가의 발걸음 소리 대신 간간히 부엉이의 울음소리가 들릴 뿐이다." 이 문장. 글쓴이의 경우, 뒷 문장이 더 '아름답다'라고 하고 싶다. (참고로 두 문장 모두 글쓴이가 즉흥으로 쓴 문장이다. 어느 소설인지 찾는 수고는 하지 말자.)


 갑자기 은유 이야기는 왜 나오는가. 학창 시절, 수학 시간에 종종 영화를 틀어준다. 시험이 끝나서 여유가 있을 때나, 방학 직전에는 보통 수업 시간에 영화를 틀어준다. 그럴 때 보면 영화들이 한정적이다. <페르마의 밀실>, <굿 윌 헌팅>, <뷰티풀 마인드> 등등. 대부분 '수학'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영화들이다. 다시 한번 영화들을 살펴보자. <페르마의 밀실>은 '수학자'들이 '수학 문제'를 풀어 미스터리를 해결하는 '스릴러' 영화이다. 결국 영화의 재미는 수학에서 오는 재미가 아니라, 스릴러 형식에서 오는 재미인 것이다. <굿 윌 헌팅>은 수학 천재 주인공이 등장하긴 하지만, 주인공은 다른 학문도 잘하는, '그냥 천재'다. 심지어 이 영화의 주 포인트는 수학이 아닌, 주인공의 상처 극복이다. <뷰티풀 마인드>도 '수학자'의 얘기이긴 하지만, 영화의 재미 포인트가 '수학' 자체에 있지 않다. 결국 이런 선택은 '아름답지' 않다.

▲ <페르마의 밀실> 국내 포스터. ⓒ(주)소나무픽쳐스

 

 '아름답지' 않은 선택은 취향의 문제인 만큼 차치해두자. 수학 시간에 왜 영화를 틀어주는가? 솔직하게 말해서 시간 때우기 용이라고 하지만, 엄연히 '교육'의 목적으로 틀어주는 것이다. 그럼 "수학 시간에 저 영화를 보여주는 것이 '수학에 대한 흥미'를 키우는데 도움이 되는가?"라고 누군가가 질문한다면 내 대답은 "전혀"라고 말하겠다. 저 영화들이 결코 '나쁘'거나, '못 만든' 영화라는 이야기는 전혀 아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저 영화들은 순수하게 '수학'의 재미를 가르쳐주는 영화들이 아니다. 그냥 수학을 소재로 한 재밌는, 혹은 잘 만든 작품들일뿐이다. 대신 나의 추천은 <머니볼>이다.

▲ <머니볼> 스틸컷. ⓒ소니픽쳐스코리아(주)


 <머니볼>은 야구를 소재로 하는 영화이다. 좀 더 자세히 보면 야구만큼이나 중요한 소재가 있다. 통계학이다. 영화의 제목인 '머니볼'은 미국의 야구팀 '오클랜드 애슬래틱스'의 경영방침 이름이다. 극 중 브래드 피트가 연기한 실존인물 '빌리 빈'이 주장한 개념으로, 세이버매트릭스(수학적, 통계학적 방법론을 도입해 야구를 객관적 수치로 분석하는 방식 - 출처: 시사상식사전)를 이용한 저비용 고효율 경영방침이다. 극 중 빌리 빈은 침체기를 겪고 있는 오클랜드 애슬래틱스의 단장이다. 영화는 팀이 패배하고, 팀의 에이스들이 팀에서 빠져나가며 시작한다.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팀은 리그 최하위를 기록한다. 이런 상황에서, 빌리 빈은 트레이드를 하기 위해 여러 구단을 다니던 중 '피터 브랜드'란 만난다. 예일대를 졸업한 그는 야구에는 문외한이지만, 경제학을 전공한 사람이다. 세이버매트릭스를 이용해 수치로 모든 선택을 결정하는 그가 눈에 띈 빌리는, 그를 오클랜드 팀으로 영입한다. 그리고 이런 수치 중심적 경영 방식을 가지고 야구단을 개혁하기 시작한다. 이런 이들의 성공 신화를 그려내는 것이 <머니볼>의 주된 이야기이다.

▲ <머니볼> 스틸컷. ⓒ소니픽쳐스코리아(주)


 <머니볼>은 아론 소킨의 뛰어난 각본과 베넷 밀러의 훌륭한 연출이 돋보인다. 인물들의 대사는 허투루 쓰이지 않고, 각 장면은 내용 전개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이런 연출의 가운데에서, 통계학이란 소재가 빛난다. 작중 피터가 컴퓨터 화면을 가리키며 선수들의 출루율 통계를 설명하고, 그걸 토대로 빌리가 구단의 스카우터들과 설전을 벌이는 장면이 있다. 통계 수치들이 난무하는 그 대화가, 전쟁 영화의 총격전보다 흥미진진하다. 카메라가 화면을 이리저리 훑으며, 숫자들이 경쾌하게 움직이는 장면이, 음악 영화보다 흥겹다. 그리고 그런 수치들로 경영한 팀이 성과를 내기 시작할 때, 액션 영화 속 타격감보다 더 짜릿한 성취감이 관객에게 고스란히 전해진다. 이 영화는 야구를 사랑하게 만들지만, 수학도 사랑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 <머니볼> 스틸컷. ⓒ소니픽쳐스코리아(주)


 <머니볼>은 영화적 재미도 굉장하다. 앞서 말했듯이 감독과 각본가 둘 다 역량 있는 고수들이다. 또, 수학 교육 측면에서도 훌륭한 영화이다. 시간을 좀 내서, <머니볼>을 한 번 보는 것을 추천한다. 야구공만큼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는 수치들 속에서, 영화의 리듬을 한 번 느껴보시라.



- CineVet -  

매거진의 이전글 영화로 풍성했던 2018년 돌아보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