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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eVet Feb 01. 2019

'살인마 잭'네 집들이 준비하기

<살인마 잭의 집>을 보기 전에 읽어둔다면.

지난 상영 때 뽑은 티켓과 포토카드, 그리고 받은 굿즈들

지난 1월 29일, 아트나인에서 열린 'GET9 기획전 - 엣나인필름 기획전'을 통해 <살인마 잭의 집>을 먼저 만나 볼 수 있었다. 또 2월 20일에 있었던 정성일 평론가님의 라이브러리톡을 통해 한 번 더 잭의 집을 방문했다.

▲<살인마 잭의 집> 스틸컷 ⓒ(주)앳나인필름

Prologue. 이 글의 목적은 '추천'이다. 개인적으로 만점을 준 영화이며, 아직 1월이지만 올해 베스트에 올라도 무리가 없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올해 베스트 5 밖으로 나가지 않을 것이란 확신을 가지며 글을 시작한다.


▲<살인마 잭의 집> 스틸컷 ⓒ(주)앳나인필름

1. 이 영화의 등급은 '청소년 관람불가'이다. 그냥 조금 잔인하고 선정적이어서 청소년 관람불가 판정을 받은 것이 아니다. 이 영화는 금기를 깨부수고 관객들의 가치관을 공격하는 영화이다.


▲<살인마 잭의 집> 스틸컷 ⓒ(주)앳나인필름

2. 이 영화의 뼈대는 두 사람의 대화이다. 주인공이자 살인마인 '잭', 그리고 의문의 노인 '버지'. 대화는 잭의 주장과 노인의 반문으로 이어진다. 잭은 계속해서 자신의 (괴상한) 가치관을 드러낸다. 버지는 잭에게 반문을 하는 존재다. 마냥 반박을 하는 것은 아니고 호기심에 질문을 하기도, 잭을 자극하기도 한다. 버지의 정체는 후에 드러나는데 사실 버지의 이름 속에 '숨어'있다(중반부 대사와 결말부의 장면을 통해서 버지의 정체가 정확하게 드러난다).


▲<살인마 잭의 집> 스틸컷 ⓒ(주)앳나인필름

3. 잭의 주장은 '자기변명'을 뼈대로 한다. 사이코패스의 자기변명, 즉 앞서 말한 '주장'은 궤변이고 억지란 뜻이다. 이 영화를 즐길 수 있는지의 여부는 이 대목에서 갈린다. 잭은 그만의 확고한 신념을 기반으로 일관성 있는 논리를 통해 그의 예술관을 버지에게, 나아가 관객에게 들려준다. 이 예술관에 동의하고 말고는 크게 중요치 않다(정상인이라면 동의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 예술관이 흥미로운지 아니면 역겹고 끔찍하게 다가오는지가 이 영화의 호불호를 결정할 것이다. 필자의 감상이 전자였기 때문일까, 영화를 보는 내내 굉장히 신선한 기분으로 영화를 즐겼다.


▲<살인마 잭의 집> 스틸컷 ⓒ(주)앳나인필름

4. '잭'이라는 인물은 단순 허구의 인물은 아니다. 잭은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분신 혹은 감독의 비뚤어진 자아이다. 감독은 잭의 입을 통해 자신이 하고 싶었던, 혹은 장난스럽게 던지고 싶은 이야기들을 마음껏 배설한다. 영화 속 잭의 자기변명은 감독의 자기변명이기도 한 것이다. 동시에 감독은 잭과 대립하며 버지의 위치에 서서 관객에게 '너희는 잭에게 어디까지 이입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 위험하고 복잡한 담론에 관객들을

끌어들이는 감독의 솜씨가 대단하다. 어디까지가 감독의 생각이고 허구가 내뱉는 이야기인지 고민하면서 보는 재미가 있는 영화이다. 특히 영화 내에 감독의 자조적 시선, 언어유희 등등 다양한 코미디가 풍부해 예상치 못한 재미를 선사한다(극 중 강박증과 관련된 시퀀스는 상당히 코미디 반응이 좋기도 했다).


▲<살인마 잭의 집> 스틸컷 ⓒ(주)앳나인필름

5. 사실 아무 준비도 없이 가도 재밌는 영화지만, 모종의 준비를 하고 간다면 또 다르게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먼저 감독의 전작들을 한 번 살펴보고 가자. 필자는 이 감독을 <살인마 잭의 집>을 통해 처음 접했는데 악명을 많이 들었음에도 상상 이상이었다. 충격도 충격이지만 감독이 영화를 풀어나가는 방식에 매료됐다. 필자는 이 작품을 본 이후로 <안티크라이스트>, <도그빌>, <님포매니악 Vol.1&2>, <멜랑콜리아>를 찾아봤다. 그러고 나서 <살인마 잭의 집>을 다시 봤다. 감독의 성향이나 예술관을 파악하고 난 후 <살인마 잭의 집>은 더 흥미롭고 파헤칠 것이 많은 영화였다. 책은 단테의 [신곡] 중 '지옥'편을 추천한다. 위의 스틸컷만 봐도 알겠지만 영화 속에 상당한 레퍼런스가 있으니 읽어본다면 도움이 많이 될 것이다.


▲<살인마 잭의 집> 스틸컷 ⓒ(주)앳나인필름

6. 극 중 인물인 잭은 나르시시스트이다. 시작부터 자신을 천재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에 병치시키더니, 자신을 교양 살인마(Mr.Sophistication)라고 지칭하다가 나중에는 자신의 살인이 신사적이라고까지 말하는 지독한 나르시시스트이다. 재밌는 것은 영화의 연출도 상당히 나르시시즘에 도취된 듯하다. 다양하고 독특한 삽입 장면들, 격렬하게 흔들리고 회전하는 카메라, 독특한 타이밍의 편집 지점 등등 과시적인 연출이 종종 눈에 띈다. 필자는 이런 식의 연출을 꽤 좋아한다. 필자의 괴랄한 취향이다. '내가 천재'라고 자부하는 방식의 연출은 상당히 위험하지만(일례로 그 유명한 <리얼>이 있다), 잘만 하면 굉장히 매력적이다. 이런 방식의 연출로 필자를 사로잡았던 영화는 자비에 돌란의 <마미>나, 대런 아로노프스키의 <블랙 스완> 등이 있었다. 연출 스타일도 참고하고 가면 도움이 될 것이다.


▲<살인마 잭의 집> 스틸컷 ⓒ(주)앳나인필름

Epilogue. 사실 이 영화는 한 번 보기엔 너무 아깝다. 벌써 극장에서 두 번씩이나 관람을 했지만 이미 예매를 한 번 더 해놓은 상태이다. 이 영화는 한 번에 소화시키기엔 너무 풍족하고 기름지다. 수많은 되새김질이 필요한데 시간과 재정에 한계가 있다는 사실이 아쉬울 따름이다. 블루레이가 나온다면 무조건 구매할 작품이다(풍부한 코멘터리와 함께 출시되면 좋겠다).


P.S. '상호텍스트성'이란 개념을 고등학교 학창 시절에 배운 적이 있다. 간단히 말해 모든 작품은 독립적으로 창작되는 것이 아니라, 장르와 형식을 막론하고 다른 작품의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개념이다. 요즘 들어 영화를 조금은 깊이 있게 보기 시작하면서 영화를 보는 것뿐 아니라 책도 더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특히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더욱 체감하는 중이다. 문학, 비문학, 영화, 음악, 미술, 그리고 평론까지. 결국 이 모든 것은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서로를 채워준다. 그 무엇과도 동떨어져 존재할 수 있는 예술은 없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그런 인간의 창작물인 예술 또한 사회(다른 예술들)에게서 독립될 수 없다. 예술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눈은 그 지점에서 떠지기 시작한다.



- CineV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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