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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eVet Jan 08. 2020

무엇이 은총인가, <신의 은총으로>

비극, 그 단면을 '영화'로 어떻게 들여다봐야 하는가.

▲ <신의 은총으로> 예고편 ⓒ찬란


 누군가가 기도를 읊는 소리가 들린다. 카메라는 고위 성직자로 보이는 사람의 등을 비춘다. 그는 십자가를 들고 예식에 맞는 복장을 한 채, 앞으로 걸어 나가며 기도문을 읊는다. 이윽고 교회의 테라스에 다다르며 그는 테라스 앞에 펼쳐진 도시를 바라본다. 변함없이 그의 뒤를 비추던 카메라는 롱 쇼트로 측면에서 테라스를 비추고 제목 <신의 은총으로>가 나타나며 영화는 시작된다.


▲ <신의 은총으로> 스틸컷 ⓒ찬란


 영화를 인물의 입장에서 바라본다면 크게 3부의 구성을 띄고 있다. 알렉상드르에서 프랑수아로, 프랑수아에서 에마뉘엘로 시점을 바꾸며 극을 이어나간다. 카메라가 가장 먼저 바라보는 인물은 ‘알렉상드르’, 가정을 꾸려 평범한 삶을 살던 남성이다. 그는 어느 날, 유년 시절에 자신을 성폭행했던 신부 ‘프레나’가 아이들을 지도하는 일에 복직했다는 소식을 듣고 문제에 맞설 결심을 하게 된다. 처음에는 파면을 요구하며 교회 내 관련 인물들, 특히 프레나 신부의 상관이자 교회 내 아동 추행 문제를 강력히 규탄해왔던 추기경 ‘바르바랭’을 찾아가 이 문제를 꺼낸다. 하지만 생각보다 바르바랭의 태도는 미지근하고 알렉상드르는 문제가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을 직감한다.


▲ <신의 은총으로> 스틸컷 ⓒ찬란


 알렉상드르는 피해자를 수소문하며 증거를 찾아내고, 그를 토대로 경찰에 찾아가 기소한다. 경찰이 사건을 수사하기 시작하면서 더 많은 피해자, 특히 공소시효가 아직 남은 피해자를 찾게 되고 여기서 또다른 피해자 ‘프랑수아’로 연결된다. 프랑수아도 알렉상드르와 같은 처지에 있는 남성이지만 그는 좀 더 적극적으로 행동한다. 알렉상드르가 증언할 용기가 있는 사람이라면 프랑수아는 행동할 용기가 있는 사람이다. 그는 언론에 이 문제를 공론화하면서 좀 더 적극적으로 피해자를 모으고, 모인 사람들과 함께 ‘라 파롤 리베레(해방된 목소리)’라는 조직을 만들어 연대를 시작한다. 점차 더 많은 사람들이 이들을 주목한다.


▲ <신의 은총으로> 스틸컷 ⓒ찬란


 신문에 ‘라 파롤 리베레’의 이야기가 실리고 이를 다른 피해자 ‘에마뉘엘’이 보게 된다. 기사를 보고 갑자기 발작을 일으키는 그는 트라우마로 인해 심한 고통을 앓고 있다. 에마뉘엘은 가정환경이 불우하다는 이유로 프레나 신부에게 더 심하게 강간당했고, 그 트라우마로 인해 신체에 변형이 일어날 정도로 극심한 고통을 앓아왔다. 이 인물이 인상적이었던 것은 가장 종잡을 수 없어 영화 후반부의 긴장을 끌어낸다는 점도 있지만, 피해자들의 트라우마가 단순히 ‘성폭행’ 하나로만 정의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보통의 경우, 영화는 ‘사건의 피해자’라는 평면적 인물을 단순하게 전시하여 감정을 게으르게 끌어낸다. 하지만 <신의 은총으로>는 에마뉘엘에게 불우한 가정사가 있음을 보여주며 그런 단순화를 막고, 대상을 다층적으로 바라보며 영화 속 인물을 ‘사람'으로서 존중함을 보여준다.


▲ <신의 은총으로> 스틸컷 ⓒ찬란


 영화의 태도가 훌륭하다고 느낀 또다른 지점은 카메라가 피해자-가해자를 담는 방식에 있다. 보통의 영화들 가해자가 가하는 폭력의 극적 묘사를 스펙터클로 삼아 감상자의 분노를 끌어내는 것과 달리, 이 영화는 이야기상 가해자를 마주해야만 했던 시퀀스들을 제외하면 그들을 결코 전시하지 않는다. 특히 트라우마처럼 불쑥 인서트되는 피해자들의 회상 장면에서도 맥락만을 보여줄 뿐 결코 범죄 행위를 카메라가 비추지 않는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대면하는 그 순간에도 영화는 교차편집을 통해 둘을 쇼트 내에서 공존하지 못하게 하며 최대한 이런 폭력에서 피해자를 보호한다. 영화는 선정적인 묘사를 최대한 덜어내는 대신, 치밀하게 피해자들의 서사를 재봉선 없이 바느질한다. <신의 은총으로>에는 기교가 없다. 다만 증언이 있을 뿐이다.


▲ <신의 은총으로> 스틸컷 ⓒ찬란


 영화의 카메라는 흥분하지 않고 스스로 잠잠하게 분노한다. 다큐멘터리 인터뷰의 화법으로 피해자를 한 명 한 명 비추고, 증언을 이어나간다. 알렉상드르 한 명의 용기는 프랑수아라는 다른 용기를 끌어냈고, 프랑수아의 행동은 피해자들의 연대로 이어졌다. 이처럼 <신의 은총으로>가 경이로웠던 것은 차분한 분위기를 유지하면서도 이야기를 이끄는 추동력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추동력이, 가해자에 신경을 쏟는 것보다 피해자들의 연대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배경음악을 절제하고 인물들의 다층적인 모습을 바라보며 연대 과정에서 긴장감을 유지하지만, 결국 모두의 목표와 마음은 같다는 것을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단순히 분노하게 만드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연대의 희망을 심어주는 이 영화는 극장 밖에서도 관객 안에 살아 숨쉬는 생명력이 있고, 영화 고유의 물성이 있다.


▲ <신의 은총으로> 스틸컷 ⓒ찬란


 영화는 세 명의 피해자를 교차편집으로 보여주다가 에마뉘엘을 마지막으로 비춘다. 밤에 강둑을 따라 걷던 에마뉘엘은 문득 무엇이 생각난 듯,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돌려 어느 곳을 향해 올려다본다. 그리고 그곳에는 영화의 시작에 등장했던 교회가 있다. 결국, 영화는 시작과 끝이 대구를 이루며 막을 내린다. 모든 것이 환해 보였던 낮에서 교회만이 보이는 밤으로, 모든 것을 내려다보던 교회에서 멀찍이 교회를 올려다보는 곳으로, 가해자를 바라보던 카메라의 시선에서 피해자와 함께하는 카메라의 시선으로.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 마태복음 6장 13절 -





- CineV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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