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티페미 진영에서 자주 사용하는 말 중의 하나가 바로 “페미는 돈이 된다”이다. ‘돈이 되기에 페미니스트 짓을 한다’라는 것이 그들의 스탠스인데, 우습게도 이런 말은 페미니즘 진영에서 먼저 내건 슬로건이다. 커뮤니티 메갈리아에 “페미니즘이 돈이 된 다는 것을 알리자”라며 페미니즘 미디어와 콘텐츠 소비를 도모하는 차원에서 시작된 말이기 때문이다. 어떤 콘텐츠의 수요가 많아져야 그만큼 공급이 늘어나는 선순환이 시작된다. 이렇기 때문에 무언가를 소비하는 것은 그 대상에 대한 관심의 표현이고, 나아가 그에 대한 지지와 연대의 선언이다. 이 지점에서 <우먼 인 할리우드>는 우리가 왜 여성의 목소리에 더 귀 기울여야 하는지에 대한 당위성을 논리적으로 제시한다.
<우먼 인 할리우드>의 원제인 'This Changes Everything'.
현재 청년 세대는 웃지 못할 우스갯소리로 ‘경력직을 요구하는데, 경력을 주지 않으면 어떡하라는 말이냐’라 말한다. <우먼 인 할리우드>는 여성 영화인들이 겪고 있는 경력 단절의 악순환을 수치와 증언들로 보여준다. 사실 여성 영화 혹은 소수자 영화들이 더 주목받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올 때마다, 반대편에서는 ‘실력이 있어야 주목받는다’는 말로 반박하곤 한다. 하지만 그런 반박은 틀렸다는 것을, 이들이 주목받지 못하는 것은 오랜 시간에 걸쳐 구조적 차별이 누적된 결과라는 사실을 정확한 통계와 현장의 증언으로 증명한다. 관객으로서 둔감했던 부분들을 명징하게 드러내며 할리우드 산업계의 병폐를 들춘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영화인들이 본인의 유년기를 회상할 때였다. 여성이 주목받는, 소수자가 주목받는 영화에 어릴 적 자신이 용기를 얻었다는 이야기를 통해, 다음 세대에게 건설적인 가치관이 전달되야 함을 역설한다.
선한 영향력과 혐오가 공존하는 공간, SNS.
이런 영화들이 필요한 이유를, 잠깐 내 얘기를 통해서 해보려고 한다. 나는 한때 안티페미니스트로 스스로를 규정했었다(기억이 맞는다면 고3 즈음부터 대학교 1학년 즈음까지). 내 논리의 한계에서 페미니즘 진영은 역차별의 온상이었으며, 내게 그들은 ‘남성혐오자’였고, ‘피해자 코스프레’로 무장한 적이었다. 사실 돌아보면 이 모든 것이 무지에서 비롯됐다. 나는 나와 내 주변에 만연했던 여성혐오를 ‘혐오’라 인식하지 못했고, 또 주변에 그런 여성혐오적 표현을 일삼는 사람이 비교적 적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주장하는 잠정적 가해자 혹은 여성혐오자는 내가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친구들이 아닌, 상상 속의 괴물 같은 존재였다(사실 주변 친구들이 정치나 사회적 이슈에 둔감한 이유도 있었다). 동시에 그들이 폭로하는 여러 성추행과 성폭행도 영화 속 히어로의 시련만큼이나 먼 얘기였다.
페미니즘 시위의 모습.
그랬던 나도 많은 영화를 보면서, 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변화를 겪기 시작했다. 진보적인 가치를 이야기하는 영화들의 호소가, 내 주변 사람들(특히 여성들)의 피해에 대한 증언들이 나를 바꾸기 시작했다(사실 요즘 고민 중인 문제인데 ‘여자’라는 표현과 ‘여성’이라는 표현 중 어떤 표현이 더 성평등적인 용어인지에 대한 고민이다. 단어 자체의 어감만 보면 ‘여성’이 ‘여자’보다는 훨씬 존중이 담긴 듯하지만 다르게 보면 ‘성’이라는 단어 자체가 젠더 프레임을 씌우는 게 아닐까 싶기 때문이다). 내가 너무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 속에 은근하게 자리 잡았던 여성 혐오를 보게 됐고, 생판 모르는 남 얘기같았던 피해자들의 목소리 중에 내 친구들의 목소리가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내가 오해했던, 나 혼자 옳고 그름을 재단했던 페미니즘이 아니라 페미니즘이 진짜로 지키려 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조금은 바로 보게 됐다. 내가 부정적으로 바라본 면모들이 본질이 아님을 알게 됐다. 내가 겪은 변화의 과정을 스스로 알기에, 페미니즘적 가치를 이야기하는 영화들의 가치를 믿는다.
<우먼 인 할리우드> 스틸컷. ⓒ마노엔터테인먼트
영화에서 메릴 스트립이 남성들을 향해 여성과 함께하는 ‘21세기 기사도 정신’을 이야기할 때 옳다구나 싶었다. 기득권을 가진 남성의 협력이 필요하단 뜻으로 볼 수도 있지만, 결국 한쪽만의 변화는 온전한 변화를 끌어낼 수 없다고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남성들이 당장은 기존의 이권이 뺏긴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결국 이 모든 발전은 모두를 위한 것이다. 당신이 나중에 딸을 낳았을 때, 무기력하게 성적으로 소비되는 세상에서 키우고 싶진 않을 테니까. 영화가 세상을 바꾼다는 이야기는 이럴 때 다시금 떠오른다. 예술과 미디어가 가진 힘은, 사람들의 무의식을 변화시킨다는 점에서 흘러나온다. 잘 만든, 좋은 영화들은 이 무의식을 긍정적이고, 건설적인 방향으로 바꿔나간다. 나아가 그런 긍정적인 변화가 다음 세대까지 이어지며 아이들에게 더 다채로운 꿈과 용기를 불어넣는다. 더 많은 여성 영화가, 소수자 영화가 나와야만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더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더 다채롭게 문화생활을 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페미니즘이 돈이 돼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혼자 사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